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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린 May 04. 2023

아바타를 위하여 3

3장

그날의 술자리는 끝까지 유쾌했다. 모든 게 마냥 즐겁기만 한 우리였기에 앞으로 닥칠 불의의 사고 따윈 절대로 예측할 수 없었다. 동생과 나는 둘이라는 이유로 휘청거리면서 사라져 가는 동기들을 배웅해 주었다. K를 마지막으로 모두를 떠나보낸 뒤 마침내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평일이고 거의 새벽이 가까워 오는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고 한산했다. 드문드문 다니는 차들로 미루어 택시 잡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몇 대의 택시를 동기 녀석들에게 양보한 끝이라 그런지 한동안 택시는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텅 빈 거리에 맥없이 서 있던 우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우리 둘은 한참이나 배를 잡고 웃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요의를 느낀 동생은 길가에 서 있는 가로등으로 달려갔다. 쌍둥이 사이에도 지킬 예의가 있었던 걸까. 동생이 바지 지퍼를 내리자 나는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저만치 떨어진 등뒤로 동생이 내뿜는 물줄기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는 순간 무겁게 드리워진 밤의 고요를 뚫고 소름 끼치는 굉음이 울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급하게 몸을 돌리다가 나는 그만 발이 엉켜 넘어지고 말았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났을 땐 이미 동생이 빨간 스포츠카 아래 깔린 뒤였다.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끔찍한 폭발음과 함께 차는 화염에 휩싸였다. 동생의 이십 년의 삶은 어스름한 새벽녘에 부주의한 음주운전 차에 치이는 것으로 그렇게 끝났다. 

한창 농사일에 매달려 있던 부모님은 급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 다 키워 놓은 자식을 잃은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일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어머니와는 대조적으로 아버지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실언을 내뱉고 말았다. 


"네가 살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뜨거운 자동차 파편에 덴 손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칭칭 감고 있던 양손의 붕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죄책감, 분노, 슬픔이 뒤엉킨 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런 감정들을 애써 억누르면서 나는 아버지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잊고 있던 사건을 끄집어낸 K에게 나는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K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마룻바닥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는 왜 갑자기 동생 이야길 꺼낸 걸까. K는 또 어떤 의도에서 '마타하리'의 의미 따위를 내게 물어온 걸까. 오 년 만에 만난 사람치고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한 모습도 못마땅했다. 나는 K의 신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게 거의 없는데 말이다. 자신의 피붙이도 아닌 사람의 기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K가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한때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제일 가까이 어울렸었기에 K에 대해서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내 정보는 대개가 대학시절과 연관된 공식적인 정보들뿐이지만. 그나마도 모두 불완전한 기억들이었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는 거다. 그것도 마마보이를 의심케 할 정도로 걸피하면 '엄마'를 찾아 대던 K 덕분이지만. 살이 찌기 전엔 잘 몰랐는데 K는 자신의 어머니를 마치 붕어빵 기계로 찍어 낸 것처럼 똑 닮았다. 물론, 오 년 전의 어머니 모습이지만. K를 찾아갈 때면 자취하는 내가 안쓰러워 늘 따듯한 밥을 지어 주시던 어머니의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여전히 서른이 넘은 아들의 뒤를 봐줘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걸까. 그런 게 모성이라는 건가. 이상한 일은 내가 K의 집에 머문 지 한 주가 지났건만 어쩐 일인지 어머니를 한 번도 뵙지 못했다는 거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는데? 같이 산다고 하지 않았어?"

"음... 요즘 바쁘신가 봐. 나도 못 본 지 꽤 됐어. 뭐 부잣집 영감이라도 하나 꿰차셨나 봐. 집 나가신 지 한참 되었어. 상관없잖아. 생활비는 늘 꼬박꼬박 챙겨서 부쳐주시니까."


K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다시 돌아누웠다. 단지 그의 불어난 몸 탓만은 아니다. 그와의 더부살이가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이상하게도 나는 오히려 그를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애초부터 몰랐던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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