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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린 May 14. 2023

아바타를 위하여 2

2장

내 쌍둥이 동생이 죽은 건 정확히 십 년 전의 일이다. 그날은 두 학기를 마치자마자 뭔가에 쫓기듯 부랴부랴 입대했던 내가 첫 휴가를 받고 나온 날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입대한 건 아마도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 탓이었을 거다. 나와 몇 분 간격으로 태어난 동생은 장남을 확실히 대우해야 한다는 부친의 굳은 의지 탓에 일 년 후에야 비로소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 덕분에 동생의 취학 통지서는 나보다 일 년 늦게 나왔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내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동생의 얼굴이 어떠했을지 짐작 가능했다. 첫 단추를 잘못 낀 탓이었는지 동생은 고등학교를 나보다 일 년 늦게 졸업하는 걸로 모자라 그 해 지원했던 대학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런 동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이 들어 급히 군대라는 공간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건 정말 어이없는 사고였다. 모처럼 만에 휴가를 나온 나는 노량진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동생에게 제일 먼저 찾아갔다. 그리고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재수학원에서 돌아온 동생을 부추겨 대학 근처의 주점으로 향했다.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이 고달팠던지 동생은 선뜻 따라나섰다. 수많은 취객들이 드나들어 허름해진 주점엔 미리 연락해 두었던 대학 동기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K도 끼어 있었다. 

그날의 술자리는 군대 가기 전에 응모했던 내 시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을 뒤늦게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축하해 주러 모인 동기들은 나보다 내 동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를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를 마냥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쌍둥이는 성격이나 재능도 닮는다고 하던데, 동생도 너처럼 재주가 많냐?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거기다 넌 글재주도 뛰어나잖아. 동생분도 아시는지 모르겠기만 얘가 우리 경제학과의 워킹 딕셔너리거든요. 하-하-하-"


처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동생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동기 녀석들과 잘 어울렸다. 술자리 내내 녀석들의 공통 관심사는 동생과 나 사이에서 차이점을 찾아내는 거였다. 늘 같은 옷을 두 벌씩 사주시는 부모님 때문일까, 아님 일란성 쌍둥이 특유의 기질이 발휘된 걸까. 그날따라 동생과 나는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더 기막힌 사실은 필승을 다짐하던 동생 역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어서, 서로의 까까머리를 가리기 위해 눌러쓴 야구 모자만 아니었다면 도무지 구별할 수 없단 거다. 검은색과 베이지색이 우리 둘을 구별 짓는 유일한 경계선이라고나 할까. 

2차, 3차를 거치면서 동생은 오히려 나보다 더 동기 녀석들과 친밀해졌다. 술자리가 얼큰하게 달아오르면서 내 안에서 장난기가 발동한 건 그 무렵이었다. 그땐 이미 K를 비롯한 동기 녀석들이 동생과 '야자'를 트고 있었다. 화장실로 동생을 불러 낸 나는 역할 바꾸기 게임을 제안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동생도 이내 악동 같은 미소를 짓고는 나와 모자를 바꿔 썼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리는 동기 녀석들을 멋지게 속여 넘겼다. 이미 개개인의 특징을 대략 파악한 동생의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K만 유독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결국엔 우리를 구별해 내는 일에서 손을 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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