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어떤 생각

<걷는 애도>

임흥순

by 이상희

애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걸까.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고 일 년쯤 지났을까. 그때 나는 병원에서 집에 오면 뭐에 홀린 사람처럼 이런저런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리고 있었다. 뭐든 다 군더더기처럼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남편의 옷장 서랍을 정리하던 날 깜짝 놀랐다. 그가 입던 옷들이 죄다 삭아서 못쓰게 돼버린 것이다. 신기한 건, 그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입던 운동복이나 축구 유니폼은 그대로인데, 그가 다치기 전, 그러니까 최근에 입었던 적이 있는 옷들은 하나같이 색이 바랠 대로 바래거나 만지면 부서질 듯 삭아버려서 도저히 둘 수 없을 지경이었다는 것.


그 이상한 감각이 지금도 선명하다. 처음에는 어? 왜 이 옷들만 이렇게 돼버렸지? 하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가, 못쓰게 돼버렸다, 는 판단으로, 나아가 이제 이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더 구체적인 생각으로 이어지던 서늘함. 내가 알던 그가 정말로 사라질 뻔했고, 한편으로는 전혀 새로운 그가 되었구나 생각하다 문득 상실의 감각이 거침없이 몰려들었다. 삭아버린 그의 옷에 둘러싸인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쩌면 그날 그 옷을 마주하면서 나는 ‘내가 알던 그’로부터 떨어져 나왔는지 모른다. 바꿔 말하면 ‘내가 알던 그’를 상실한 것이다. 동시에 ‘내가 알던 그와 함께하던 나’ 역시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무엇을 잃었는지도 몰랐고, 그러니 당연히 아주 긴 애도가 시작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남편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고도 우리는 한동안 ‘우리가 알던 그’를 추억하지도, 그리워하지도, 때로는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아파했다. 눈이 보이던 그를 떠올리는 일만큼 잔인한 일이 없어서, 우리는 마치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낯선 사람처럼 살려고 했다. 그건 어딘가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일이었다. 우리 곁에는 온통 ‘우리가 알던 그’로 가득했으니까. 함께 살던 집, 함께한 시간, 함께한 기억이 우리를 맴돌았다. 당연했다. 그 당연함과 어떻게 이별하나. 이미 이별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흘렀다. 애도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우리는 아주 더디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배우고 있다. 애도는 상실한 그것을 오래 기억하는 일임을. 보이는 그를 없던 일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보이는 그도 여전히 그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일임을. 그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을 것이고. 그것이 어떤 날은 다행이다가, 어떤 날은 아프다가, 어떤 날은 무려 무뎌지기도 하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임을. 상실한 것과 끝내 함께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배운 애도고, 삶임을. 그러니 애도하지 못하게 하려는 모든 시도는 삶과 존재를 향한 억압임을.



<걷는 애도> 전시와 <기억 샤워 바다> 다큐를 보는 내내,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고 낭송해 주시는 시를 듣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나눠 마시는 내내 마음속을 가득 채운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목소리가 없는 것들 - 우리가 무엇을 애도해야 할지조차 몰랐듯이 - 의 목소리를 찾아 끊임없이 애도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감독님의 너른 시선 안에서는 모든 것이 애도의 대상이었다. 흘러가버린 어제의 나도. 며칠 전의 나뭇잎과 파도까지도. 기억하고 보내주고 다시 환대하면서.


“바다는 우리 무의식의 상징 같아요.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는 건 꼭 우리 무의식이 오염되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뭔가를 빌때, 빌고 있는 내가 비는 그 마음과 닮아가는 것 아닐까요.”


#걷는애도 #임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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