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당시에 시어머니는 혼자 셨다
시아버지는 결혼 전에 남편과 연애시절에, 내가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처음 어머니를 뵈었을 때부터 인자한 표정의 인상이 좋으신 반면에 단호하시고 자존심이 세게 생기셨었다
어머니가 어촌 마을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시아버지의 병간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다
시부모님은 3녀 1남을 두셨고 막내 아들이 내 남편이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인품은 네명의 자녀들이 아직도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어떠셨을지 가늠이 간다
시아버지가 안 계신 시골 재산을 정리하고 지방 도시로 올라온 이후 아들은 사업을 시작했고 시어머니는 모든 재산을 아들 밑에 투자한 상태였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라 아들이 원하니까 주시지 않았을까?
몇년 뒤 아들의 사업이 부도 났고 어머니의 험난한 인생도 시작되었다
친척이 운영하던 여인숙을 대신 운영하시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지런하시고 깔끔한 성격인지를 알 수 있었다
매일 락스나 염산을 뿌려 화장실이나 욕실을 냄새하나 나지않도록 깔끔하게 관리하셨다
거기에 3개월짜리 손주를 안고 들어온 며느리까지 건사해야 했으니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시는 어르신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셨을까도 싶기도 하다
음식 솜씨 또한 뛰어나셔서 딸이 운영하는 식당의 참모로도 일하셨다
성격이 대쪽 같으시고 자존심이 강하셔서 거저 얻어먹는 것을 못하시는 분이셨다
아들이 저질러놓은 빚이 하도 많아 친인척들에게 갚아야할 빚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대신 관리해 주던 여인숙을 다시 돌려줘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돈을 벌어 빚도 갚고 본인 생활도 해야하니 앞이 막막하셨을 것이다
지인의 소개로 개인병원 건물을 관리하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3층 건물을 가 보면 계단의 노란색 스테인레스가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을 내 놓으셨다
원장님의 점심을 챙기고 원장님 식구들이 살았었던 집에 어머니 혼자 기거하셨다
음식솜씨도 뛰어나시고 기품있으시고 단아하셨던 어머니는 특별히 며느리에게 잘하셨다
처음에 결혼을 앞두었을 때 남편 친구가 한 말이 있다
"선미씨는 시집살이 좀 하겠는데요. 보통 성격이 아닌 시어머니에 누나들 셋도 만만치 않은데"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이 똑똑하고 야무졌다
나보다 남편을 먼저 알고 지내던 친구의 조언 아닌 조언이다
처음에 같이 살때는 힘들긴 했다
나는 작은 게으름 일색으로 옷도 세탁기에 모아서 빨고 설겆이도 제때 잘 안하고 청소도 대충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반면에 시어머니는 애기 옷이 하나 나오면 바로 주물러 빠셨고 설겆이 하며 청소하며 했다하면 빛을 내는 분이셨으니까
음식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젊어서 부잣집 며느리로서의 고고함이 살아있었다
비루하게 사는 모습을 싫어했고 아무리 없어도 먹는 것은 언제나 풍성했다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으시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인 나에게 참 잘하셨다
아마도 아들이 못한 부분을 본인이 아들의 틈을 메우고 싶어서였을까?
음식해서 싸다 주시고 어릴 때 손주들 학교 보내 주시고 언제나 고맙다 말씀해 주시는 그런 분이셨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일까? 동생의 부족한 부분 때문일까?
결혼 전에 남편 친구를 통해 보통 시어머니가 아니고 보통 시누이들이 아니란 말을 수없이 들었는데 세명의 시누이들조차도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셨다
옷도 보내주시고 용돈을 듬뿍 주실때도 있고 말씀들도 예쁘게 해 주셨다
어릴때부터 한의사 할아버지에 교사셨던 아버지와 풍족하게 살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집안의 고상한 분위기를 모든 시댁 식구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먹는 거나 옷 입는 거나 말투에서 집안의 가풍이 유지되었다
남편과의 사이가 안 좋았을 때마저도 시댁 식구들과는 단단한 관계유지가 지속되었고 시댁 식구들과는 끈끈함이 있었다
아마도 이런 부분이 남편의 부재를 아주 크게 느끼지 못하게 했고 아들과 동생을 위해 애쓰는 분들의 수고를 잊지 못해서 남편의 잘못을 덮어준 것도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6년전에 돌아가셨다
담낭암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하시다가 일년 만에 돌아가셨다
병원에 입원하면 네명의 자식들과 며느리인 내가 매일 돌아가면서 당번을 하고 어머니 옆에서 병간호를 하였다
임종을 앞둔 몇일은 며느리인 내가 병간호를 맡았다
낮에 일하고 밤을 거의 꼬박 샌 어느날 새벽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고 며느리가 임종을 지켰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너의 시아버지 기일날 한날에 죽었으면 한다"
정말 하루 차이로 돌아가셔서 6년동안 한날에 기일을 맞이한다
시부모님의 기일에는 3명의 시누이들과 우리 부부가 집에서 모여 기일을 보내기도 하고 여행을 가서 기일을 맞이하기도 한다
사형제가 모여 시부모님을 추도할 때는 인품이 정말 좋으셨던 부모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신이 난다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와 같은 날에 가시고 싶다고 하신 저의에는 며느리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언제나 살아 계실 때도 며느리 사랑은 대단하셨으니까
어제도 남편의 어린 시절 추억의 고향 거금도를 한바퀴 돌아보고 왔다
좋으셨던 시부모님을 생각하고 남편과 함께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한 해를 마무리하였다
시부모님들은 가셨어도 여전히 시댁 식구들의 끝없는 사랑은 생각만 해도 흐뭇함이 묻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