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까지 마땅히 정해놓고 운동을 한 적이 없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몸을 움직이는 전부였다.
지금 같으면 꼭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한다든지 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취미도 없었고 주변에서 동기부여도 없었다.
마음이 고달프고 아프면 신체가 그 증상을 나타내므로 본능적으로 뭐라도 붙잡고 살기 위한 몸짓을 하게 된다.
내가 요가를 접하게 된 것은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한 시기 마흔 때였다.
마흔 나이에 새롭게 학업을 시작했다.
3년제 간호과를 나와 직장에 다니던 중 전공심화과정이라는 1년 과정을 이수하면 학사 졸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1기에 접수하여 열성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마찰이 생겼다.
거의 예외 없이 오래 떨어져 살면서 생기는 부부간의 문제가 우리에게도 불거졌다.
나만은 별문제 없이 비껴가겠지 하는 안일함도 있었고 상대방을 철석같이 믿어버린 어리석음도 있었다.
배신감에 처절하게 아파하면서 상대방을 미워도 하고 비난도 했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아 내 인생에서 아예 그 사람을 도려내 버리고 싶어 이혼을 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인 이유로 서류상 이혼을 한 번 했었다.
아이들도 커가면서 아무리 서류상이지만 한 부모 가정을 만드는 것이 옳지 않다 판단하여 다시 합쳤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두 번째 이혼은 마음을 과감히 접어버리는 결단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이혼하자고 했을 때 자신의 잘못 때문에 순순히 따라주는 모습도 보기 싫었고 용서를 빌었지만 모든 것이 흡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든 저러든 아무렇지 않는 모습에 더 속상하고 애가 터지는 사람은 나였다.
밥도 잘 먹히지 않아 체중도 40킬로 이하로 빠지고 수면장애도 생겼으며 정수리에 원형탈모도 생겼다.
정신과를 찾아가 약도 복용해 봤지만 정신적인 문제로 나타난 신체적인 현상을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주변에서 요가를 다닌다는 동료가 있어 관심을 가지며 요가 학원 등록을 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17년 동안 이어온 최애 운동이 되었다.
호흡과 함께 동작하며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보는 그 잔잔한 행위가 명상이었다.
들숨과 날숨 속에 나의 한숨을 실어 정화하였다.
내 몸속 가득한 독성을 뱉어내며 깨끗한 공기를 주입시켰다.
요가를 통해 그동안 허허벌판에 방치된 나를 다시 따뜻한 곳으로 인도하며 나를 보듬고 위로하는 행위가 지속됐다.
요가는 내게로 와서 힐링 요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2025년 5월
요가와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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