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한별 Dec 11. 2019

2019년 회고

회고이지만 올해 배운 건 안 쓸 거지롱

이런 느낌으로 살고 싶다(잘 안 됨)


회고를 하려고 보니까 2018년은 적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때 사실 의식은 하고 있었는데 자기혐오에 빠져 있을 때여서 쓰기 싫었다. 다행히 올해 사고가 많이 바뀌어서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데이터 보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이것도 영역이 너무 넓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작업과 시장에서의 수요가 얼마나 일치하는가도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은 고민이 무색하게 여전히 나는 데이터를 통해 우아한 제품을 만들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쓰자면 제품팀과 긴밀하게 일하고 싶고 그로 인해 제품과 유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필요하면 데이터로 기능을 만드는 것도 해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강한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그래도 필요하면 할 것이지만). 앞으로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게 뭔지는 훨씬 더 선명해졌다.


올해 초에 퇴사를 하고 70일 간 여행을 갔다. 10일은 가마쿠라, 30일은 도쿄, 30일은 교토에 있었는데 한 40일 놀다보니 가족이 그립고 고양이가 너무 보고싶었지만 매일매일 밖에 나가서 잘 놀았다. 전시회도 많이 봤다. 이상하게도 도쿄나 가마쿠라보다는 교토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른 관광지, 문화유적지도 아닌 가모가와 강변을 저녁에 혼자 걸으면서 누군가 샤미센을 켜는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어둑해진 강둑을 혼자 걸어가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이직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소용 없기도 하고... 그때 생각했다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렇게 지냈고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에 그런 때가 언제 올까 싶다. 분명한 건 빠른 시일 내에 오진 않을 것이다. 당장 처리해야할 급한 일들,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걱정은 뒤로 한 채 그날 아침 뭘 할까 고민하고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날은 그렇게 자주 오지 않을 것 같다.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된 것이 올해 가장 좋았던 순간이다. 정말 자주 많이 '나는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할까?' 라고 나 자신을 비난했다. 그렇다고 더 태울 에너지도 없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속도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성장 속도도 잘 체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기간이 길어지고, 관찰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아져서인지 문득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괄목성장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예전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주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과거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제일 잘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상태에서 어제보다 더 잘하고 싶다. 내가 궁금한 것을 알고 싶을 때 나의 무능력이 발목 잡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불어 100년 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내가 했던 여러가지 고민, 번뇌는 100년 후에는 남아있지 않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고 내가 쓰던 서비스도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왠지 이번 해는 득도를 좀 해버린 듯) 그렇게 생각하면 덧없게 느껴지고, 덧없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만큼 꾸준히 하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어릴 때에는 정말 평면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고 있던 것을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10대는 어떤 의미로는 상상력의 범주가 너무 좁아서 나는 내가 수능을 치고 직장인이 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들으면 대단치 않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10대 때에는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전에 알고 있던 것들을 조합하여 2차원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다. 더 나이가 들면 3차원, 4차원도 가능할까? 인간 개인의 발전 속도는 나이와 정비례 하는 게 아니니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이룬 기술적 발전은 적지 않을 것이다. 가짓수가 늘었다기보다는 이전에 할 수 있던 것들이 좀 더 능숙해진 정도라서. 그것보다는 사모임을 2개 만들었는데 둘 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누가 그런 모임 만들어주면 좋겠다 생각만 했었는데 그럴 바엔 그냥 만드는 게 속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어차피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개설자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나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읽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12월 10일을 기점으로 126권을 읽었는데 그 중 참 좋았고 앞으로도 계속 떠올릴 것 같은 책들을 정리해보았다. 번호는 순위와 상관 없다.


1. 팩트풀니스

팩트풀니스를 순위 안에 올린 이유는 단순히 현실이 우리 예상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의 핵심은 객관적으로 현실을 관측하고, 그 다음 해야 할 행동을 적절히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입견을 바로잡고 행동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순위에 올렸다.


2. 바른 마음

인간인데도 여전히 인간을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려운데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어서 내 기준 이해 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현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적은 독서메모를 보니 '팩트풀니스는 세계관의 정확성을 높여준다면 바른 마음은 인간을 이해하는 프레임워크를 제공해준다. ' 라고 적혀 있다.


3. 평균의 종말

이 책도 사고관을 많이 바꿔줬다. 다른 데이터에 대해서라면 쉽게 별개의 여러 속성을 한 번에 평균내는 일을 하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인간에 관해서는 너무도 쉽게 일차원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줘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4. 마인드 헌터

이전까지 나열한 책이 대부분의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 책은 정말 극단에 치달은 인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무섭고 우울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프로파일러의 사고방식이나 중간 중간에 던지는 메세지도 강렬했다.


5. 불새

불새는 사실 예전에 봤지만 올해도 또 보고 주기적으로 보면서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적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탁월하다고 느낀 만화는 없었다.(;;) 나는 불새를 아직 안 읽은 사람이 부럽고 초반부 읽는 사람은 후반부가 남아 있어서 부럽다.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감명 깊다. 쓰다보니 또 읽고 싶어진다.


전혀 기술 발전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를 많이 썼다. 이 회고를 읽는 분들도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다음 해도 복된 한 해 되시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트업 소개 텍스트로 도메인 분류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