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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 ming Nov 27. 2022

아줄레주와 트램과 야경

2022년 10월 23일


본격적인 여행 첫날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호스텔 리셉션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조식으로 나온 빵과 오렌지 주스를 맛봤는데, 단연코 내가 살면서 먹었던 오렌지 주스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액산 과당 잔뜩 들어간 마트 제품이 아닌 오렌지를 직접 갈아서 그런지 역시, 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빨간색 지붕의 집들이 도우르 강을 낀 채 한 폭의 액자처럼 걸려있었는데 풍경이 예뻐서 음식의 맛이 배로 느껴졌다.


포르투 시내로 넘어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와 그래피티 길


포르투는 10월부터 우기에 들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날씨가 바뀌었다. 이런 우기 시즌에는 관광객이 적기에 특히나 공사가 잦다고 Y가 알려주었다. 시내로 가는 길은 다소 멀었고, 가팔랐다. 아침에 소나기가 내렸기에 챙긴 우산이 짐이 되어 우리를 더 힘들게 하였다.


상 벤투 역


요상한 날씨를 뚫고 상 벤투 역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기차역이라고 불리는 이 기차역은 포르투갈의 건국 역사를 담은 2만여 개의 파란색 타일, 아줄레주로 덮여있다. 기차를 타기 위한 승객보다 관광객이 많은 것 같았다. 그만큼 역사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포르투갈의 특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소이다.


아줄레주


생각보다 섬세하고, 정교해서 놀랐다.

포르투갈의 역사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해올 걸...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 기차역을 뒤로하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바로 옆 맥도날드로 향했다.


맥도날드 임페리얼


이곳 맥도날드는 인테리어가 화려한 지점으로 유명했다. 건물 앞 독수리 모형이 인상적이었는데 입구에서 직원이 진짜 독수리를 팔에 얹고 있어서 놀랐다. 마치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았던!


내부는 외부보다 별 다른 게 없었다. 이곳은 다른 맥도날드보다 비싼 편이라 레모네이드 한 잔을 Y와 나눠먹으며 어제 못다 이야기한 대화를 나눴다.



클레리구스 성당


목을 축인 우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다 성당 하나를 발견했다. 포르투갈은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교라 성당이 5분 거리에 하나씩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난 무교인지라 성당에 큰 미련은 없어서 웅장한 성당의 외관만 구경하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나타


Manteigaria. 포르투에서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 3개 중에 하나라며 Y가 소개해줬다.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어로 나타라고 부르는데 나타는 사실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졌다. 당연히 안 먹어볼 수 없겠지! 하나에 2유로가 조금 넘는 가격이라 부담도 덜하다. 방금 만들었는지 매우 뜨거워 후후 불면서 먹었는데 확실히 달았다. 단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나타 한 개로 족했지만,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유토피아임이 확실하다.



먹다 보니 어느새 갠 하늘. 포르투 글자 하나 찾으러 플로레스 거리를 지나 시청까지 왔는데 마침 날씨가 좋아져서 전경이 참 예뻤다.


포르투 시청과 우는 아기


PORTO 글자는 포르투 메인 관광지들을 랜덤 하게 돌아가며 이동한다. 글자가 포르투 시청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갔더니 멀리서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앞에 줄을 섰던 여자분은 아기와 함께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내 그녀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아기는 사진을 더 찍고 싶다며 주저앉아 울었다. 우는 이유가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만국 공통 아기는 다 귀엽다!


명물 1번 트램


포르투에는 아직까지 운행되고 있는 트램이 몇 개 있다. 그중에서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1번 트램은 포르투 시내에서부터 도우로 강을 따라 Foz do douro라는 해변 마을까지 운행된다. 가격은 편도 7유로, 왕복 14유로인데 대중교통 치고는 많이 비싼 편이다. 그래도 트램의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트램 속에서 보이는 포르투의 전경을 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트램에 타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소 아쉬웠지만, 비가 오는 포르투도 낭만적이었다. 덜컹거리는 트램을 타고 멍하니 액자 속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노곤노곤 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Foz do douro


노트북 잠금화면 같은 풍경.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 듯 갠 날씨 덕에 윤슬은 더 반짝였다. Y와 야자수가 펼쳐진 바다마을을 쭉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비가 내려 차지만, 깨끗한 공기와 한적한 분위기의 거리. 포르투의 외곽에 위치한 바다해변은 짧은 시간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나에게 선사해주었다.


차막


내린 지점에서 시내로 가는 새로운 트램이 운행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운전기사가 무슨 말을 하더니 트램이 멈췄다. 무슨 일이고 하니 자동차 하나가 트램 길에 주차되어 있는 상태. 사실을 알게 된 트램의 승객들은 다 함께 웃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정겨움이었다. 약 10분 정도를 기다리니 운전자가 후진으로 차를 빼기 시작했다. 한국과 달리 경적을 울리지도 않는 운전자, 끝까지 기다려주는 승객들을 보며 느림의 미학이란 이럴 때 쓰는 표현임을 깨달았다.

 

샌드맨 호스텔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묵었던 샌드맨 호스텔은 옛날부터 포르투의 포트와인 3대 와이너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숙소에서 운영하는 와이너리 투어를 하지 못했지만...


바칼라우


나는 바칼라우 음식(생선 대구 요리)이 먹고 싶었다. 포르투의 대표 메뉴이기도 하고,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레스토랑은 꽤 가격이 나가는 곳이었다.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물을 시켰는데 1리터짜리가 나왔다. 메뉴에 찾아보니 0.5리터가 있었건만 직원이 1리터를 가져다준 것이었다. 이에 우리가 직원한테 따졌지만, 돌아오는 건 직원의 실수라 어쩔 수 없다는 답. 음식이라도 맛있었으면 봐줄 만했겠지만, 불행히도 바칼라우가 너무 느끼해서 다 먹을 수 없었다. 대구 자체의 문제보다는 위에 올라간 소스가 잘못된 것 같은데... 콜라로도 해결 못할 느끼함을 뒤로한 채 가게를 나와야 했다.



느끼함을 씻어내기 위해 우리는 근처 시장(mercado)에서 상큼한 모둠 과일을 사 숙소에서 웰컴 드링크와 함께 먹었다. 포르투의 야경이 예뻐서인지 아니면 Y와의 대화가 재미있어서인지 술이 술술 들어갔다.


야경


포르투를 흔히 야경 맛집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확실히 밤의 포르투는 매력적이다.

시내에서 나오는 불빛이 도우루 강에 비치는 모습은 고흐의 그림이 연상될 정도였다.


세라두 필라르 수도원


야경에 취한 우리는 야경을 더 즐기고자 세라두 필라르 수도원 전망대로 올라갔다. 수도원은 아직도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수도원 자체에서 나오는 그 음산함이 조금 무서웠다. 이런 높은 곳에 수도원을 지었던 것은 필히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 루이스 1세 다리


수도원 전망대에서 보는 포르투의 전경은 에펠의 제자가 지은 동 루이스 1세 다리 덕분에 더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진으로는 100% 담지 못할 반짝거리는 건물들과 비가 와서 살짝 습해진 공기, 그리고 이따금씩 다리 위를 지나는 트램까지. 괜스레 센치해진 기분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김민재


다이어리를 쓰려고 숙소 리셉션에 갔는데 마침 tv에서 나폴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새벽이 아닌 밤에 볼 수 있는 해외축구라. 축구를 좋아하는 나에겐 오늘 하루의 마무리로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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