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아 Apr 06. 2024

벚꽃 덕에 농땡이 좀

벚꽃은 아주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3월의 마지막 날, 러닝크루에서는 벚꽃 이벤트가 열렸다. 모임 장소는 정기적으로 모이는 광장이 아닌 카이스트 운동장이었고, 모두가 야광팔찌를 손목에 2~3개씩 찼다. 그리고 평상시보다 페이스가 느리도록 조가 짜였고, 중간에 벚꽃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추기도 한다고 했다.


 스트레칭을 모두 마치고, 우리 조는 카이스트 운동장에서 출발해 갑천을 따라 있는 인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인도 옆 나무마다 벚꽃이 잔뜩 펴있었고, 페이스가 느리다 보니 꽃구경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같이 조를 이뤄 달리는 게 조금 걱정이 됐다. 트랙을 돌 때는 뒤쳐져도 상관없었지만, 밖의 코스를 달리는 중에는 뒤쳐지면 벚꽃 이벤트를 잘 즐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평소보다 페이스가 느리도록 말을 맞췄으므로 처음으로 끝까지 같이 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벚꽃 사진을 찍으면서도 조금 쉬어가고, 다시 달리고 하다 보니 어느새 카이스트 운동장 근처로 다시 돌아왔다. 사진도 다 찍고 왔으니, 마지막 러닝 코스로 운동장 트랙을 2바퀴 정도 돌았다. 이 마지막 2바퀴는 굉장히 위기였으나, 팀원 분의 독려로 꾸역꾸역 달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총 4~5km 정도 달린 것 같다. 뿌듯한 마음으로 숨을 몰아내 쉬며 러닝이 끝났다. 각자 정비를 하고, 모여서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니 몸에 열감이 돌면서 살짝 피곤하고 나른해졌다. 가서 쉬어야겠단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나서, 버스를 탔다.


멍...


어느새 학교에 돌아와 씻고 나니 잠이 솔솔 왔다. 스르륵. 쥐 죽은 듯이 잠에 들었다. 3월 말~4월 초는 벚꽃이 피는 시기라, 그 덕분에 힘들 수 있는 러닝을 평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잘 마친 것 같았다. 야광팔찌를 찬 것도 오랜만이고 그런 분위기가 나름 축제 같기도 해서 너무 재밌었다. 운영진 분들이 모두가 잘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준비하신 것 같아 감사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수업 대신 벚꽃 구경을 했다. 한 번은 소수 인원으로 교수님과 20명 정도가 학교 뒷산을 걸어 올라갔다가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에 인체해부학 수업이 끝나고 연이은 수업을 듣기 싫어하던 차였다. 골골대던 차에 교수님의 바깥 수업 제안은 매우 솔깃했다. 이번에는 거의 1학년 전체가 샛길을 통해 한 번 더 뒷산을 걸어 올라갔다 왔다. 교수님이 사주신 메로나를 먹으며 사진도 찍으며 합법적인 농땡이를 피웠다. 아주 좋군.


 그다음 날도 꽃구경 행렬이 이어질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대신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긴 했다. 게다가 이번 주는 오후 늦게 진행하던 응급처치 수업도 없었다. 수업이 눈감았다 뜨니 끝났다. 그리고 기분 좋게 기숙사에 들어와서 가볍게 치즈불닭볶음면과 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동아리 때에도 과자 파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학년끼리 앉지 않았어서 모든 조들이 처음에 꽤 어색해하긴 했다. 허허. 그래도 그 덕에 2, 3학년 선배들한테 시험에 대해서나 실습 혹은 기타 팁들을 좀 많이 얻을 수 있었어서 나름 유익했다. 동아리가 끝나고 난 저녁 시간에는 맥날에서 동기들하고 버거를 먹으며, 쓸데없기도 쓸모 있기도 한 얘기들을 토해냈다. 2차로는 닭발과 마라탕, 김치수제비를 야무지게 먹고 왔다.


 마지막 교양 수업이 끝나고, 벼르고 벼르던 서대전역 근처 텐동 맛집에 방문했다. 친구 C가 대전에 놀러 와서 같이 먹으러 갔는데 정말 맛있긴 했지만 전주에서 먹었던 텐동이 자꾸 생각이 났다. 술을 곁들이고 아니고의 차이인가, 단순히 맛의 차이일까. 그럼에도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 맛집이다.


 텐동을 먹고 나와서 바로 카페를 들어갈까 하다가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벚꽃길을 찾아 골목골목을 쏘다녔는데 아주 괜찮은 장소를 하나 발견했다.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영화에 나올법한 계단 같은. 아니면 너의 이름은 속의 주인공들이 스쳐 지나갔던 계단 같기도 하고.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단순 돌계단에 의미를 부여했다. 친구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고, 또다시 벚꽃길을 찾아 쏘다녔다. 날씨가 너무나도 좋아서 사진 찍을 맛이 났다. 서대전역 공원에 도착하니 뒤편에 벚꽃 길이 있어서 그곳에서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후엔 택시를 타고 테라스 카페로 이동했다. 시내와 떨어진 곳에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냈는데, 시골에 온 것 같이 고즈넉하고 좋았다. 친구도 오랜만에 보고 꽃도 구경한다고 간만에 차려입고 가서 그런지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친구의 일하는 얘기와 나의 학교 얘기, 간간히 연애와 결혼에 대한 얘기도 섞어 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금세 오후 6시가 되었다. 우리들의 대화 주제가 조금씩 현실적인 부분들로 바뀌어간다는 게 잘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오후 8시 반 즈음 친구가 기차를 타야 해서 그전에 간단히 요기하기 위해 이번엔 버스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돌아왔다. LP 바를 가고 싶었는데 충분히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서 이자카야를 찾았다. 금요일 저녁이었는데도 우리가 방문했던 이자카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틀어두신 노래들은 좋아서 맥주는 한 병만 시키고 스키야끼를 시켜 먹었다. 보글보글.


 시간이 다 되어, 친구를 서대전 기차역에 데려다주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번 주는 벚꽃 보고 사진 찍고 사람들과 먹고 마시면서 한 주를 보낸 듯하다. 인체해부학부터 문서작성, 뮤지컬 연습, 교양 리포트 등 쌓여가는 할 일들이 매우 많은데도 노는 게 우선이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비 오는 날, 동기들과 학교 카페에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하긴 했다는 거다.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려준 게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런데, 아무래도 같이 하느라 수다도 떨게 돼서 한 챕터를 겨우 끝냈다. 같이 공부도 좋지만,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공부하게 되므로 이번 주말은 혼자라도 진도를 좀 많이 빼고 싶다. 그리고 사전 투표하러 투표소도 다녀와야 된다. 이번 주는 벚꽃을 놀기 위한 아주 좋은 핑곗거리로 썼으므로 주말엔 파이팅을 좀 해 볼까.



 

이전 10화 잘하지는 못해도 재밌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