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노력이란 이름의 배신

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by B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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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며 사는 게 인생의 전부이던 시절

현실을 모르고 살아가던 어린 시절,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하며 살아갔던 날들. 90년대는 그야말로 변화의 붐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인터넷이란 신문물 그리고 일본 만화영화의 유행으로 인해 나의 어린 날들은 기쁨과 희망,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당시에는 비디오로 만화영화를 녹화하여 시간날 때마다 돌려서 봤고 로봇과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사람들을 도와주고 세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꿈과 희망을 주었던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웃어른들의 지지를 받으며 하루를 살아갈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는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순간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학교는 아무래도 학업의 비중을 높이다 보니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현장학습이나 단체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의 비중을 낮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차피 교육의 사이클이 입시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큰 틀이 변하지 않는 이상 교육의 질이나 제도가 쉽게 바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면 자연스럽게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 나뉜다. 사람마다 공부에 대한 역량은 다를 수 있다. 누구나 다 태어나서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공통된 기준, 정해진 기준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학생의 다양한 능력과 재능을 평가한다는 게 쉽지 않다. 어린 시절, 많은 꿈을 꾸면서 상상을 하고 이상적인 것들에 마음을 두고 있던 나의 모습은 어느덧 어른들의 가치관과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가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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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사회 적응의 시작, 하지만 꿈이란 단어는 어느 순간 잊혀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경쟁은 심화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 입시의 초입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어릴 적 꿈꿨던 거창하거나 이상적인 키워드나 목표는 사라지고 학습된 꿈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좋은 학원,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사회에서의 성공과 목표라고 생각하며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고통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절제와 인내를 이어나가고자 노력한다. 꿈에 대한 나의 생각과 마음의 등불은 어두워지고 사회라는 길터에 나서는 발걸음은 차츰차츰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책임과 부담감이란 단어의 뜻을 알게 되고 좌절과 포기가 무엇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결국 유리천장과 한계를 인식하게 되면서 자신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거나 일탈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에 어릴 적 꿈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자기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꿈의 크기, 꿈의 실현. 순수하게 꿈을 꾸며 부모의 지지를 받던 날들은 어느 순간 잊혀진다. 꿈은 어느샌가 돈과 물질로 바뀐 형태가 되어 희망과 노력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내가 지켜오거나 끊임없이 생각하고 바래왔던 꿈은 사라지고 학습된 꿈 또는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꿈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성적과 돈, 그것은 결국 잘먹고 잘살기 위한 하나의 방향일 뿐인데 유일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니 불행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꿈을 꿀 필요는 없는데 시간이 갈수록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 그야말로 꿈의 러시아워가 따로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과도하게 승객이 넘쳐나는 전철의 모습이나 같은 꿈을 꾸며 경쟁하는 모습의 본질은 실상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갔고 상위 몇 퍼센트의 위치까지 올라갔으니 만족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인식된 것이다. 꿈을 꾸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고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현실에 대한 거부감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 대한 스트레스와 일탈만 더 늘어나고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나는 꿈을 향해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현실이 그게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대학을 중퇴하거나 다른 길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릴 적의 꿈은 신기루였을까? 희망이란 단어는 그저 희망고문에 불과했을까? 노력을 얼마나 해야 지금의 불안하고 불확실한 현실을 벗어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희망과 기대감은 사라지고 현실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자연스레 앞서게 되면서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상상을 하기 보다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비중만 더 높아지는 일상이 늘어난다. 뭐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게 정상적인 인생이니까 하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면서 현실 감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아무 생각도 없었던, 그저 순수하게 노는 것이 좋고 세상에 대한 많은 호기심을 가졌던 어린 아이의 꿈과 희망을 어른이 되어서 다시 떠올리고 생각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만큼 희소 가치가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




그런데 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인해 생겨난 꿈과 희망이 나이를 먹으면서 배신을 때린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 역시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날에 했던 행동들이 어른이 되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릴 적 종합장이나 노트에 낙서를 하고, 글을 쓰는 행동들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습득되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최근에 나는 자신이 생각한 꿈이 있거나 아니면 뭔가 어렸을 때 자기가 좋아했던 행동들을 돌이켜 보면 꿈과 희망, 노력이란 단어가 배신을 때리지 않을 수 있는 인생의 루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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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도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지만 노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직장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하면 더더욱 현실에 집중하느라 꿈을 생각할 시간조차 부족해진다. 형편이 더 나아졌으면 좋겠지만 오래도록 잘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꿈이란 단어의 무게는 더 가벼워지고 노력이란 단어의 무게는 갈수록 더 무거워진다. 머리는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차가워진다. 숫자로 보여지는 현실이 야속하고 매정하게만 느껴진다. 어릴 적 꿈을 꾸는 소년과 소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주름살이 생기며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른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7~8년 동안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으며 꿈과 희망을 얘기하고 장밋빛 미래를 바라보던 어린이의 순수한 노력은 학교를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시험을 받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의 방향, 진로가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게 된다. 능동적인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수동적인 고민이 훨씬 많지 않을까? 교육의 파워가 엄청난 이 땅에서 꿈을 이루기 위한 행보는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임을 대학을 다니면서 참 많이 느꼈다. 직장인의 하루, 그것이 정녕 내가 꿈꾸었던 인생이 맞나?




내가 꿈꾸었던 것이 아님에도 직장생활을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계 때문이다. 돈을 벌어야 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럼 이러한 인생은 곧 노력이 배신을 때린 인생일까? 그건 아니다.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입사도 못했을 것이다. 단지 꿈을 접어두고 현실을 수용한 결과일 뿐이다. 의식주가 보장된 꿈을 꾸어야 어른의 인생을 유지할 수 있는 게 현실 아닌가?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는 꿈을 꾼다. 자기가 원하는 꿈이 없다면 정말로 희망은 배신을 때리는 존재로밖에 남을 수 없다. 꿈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난 평범하게 시작한 취미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일기부터 시작해서 몇 줄의 시를 쓰고 필사를 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상황에 관계없이 지금 당장 해보는 것이 어떨까? 꿈, 희망, 노력은 같이 따라간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끌고 간다면 언젠가 터지기 마련인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 세 가지는 반드시 같이 따라가게 된다.


희망과 노력이란 이름의 배신, 그것은 어쩌면 환상일 수도 있다. 스스로 정한 한계와 외부에서 접한 얘기들과 정보로 인해 만들어진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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