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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Jan 01. 2021

그 때, 연애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가를 바라고 그를 사랑했다

다시는 찾지 않을 카페


 올드 타운의 한 카페에서 7시쯤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 6시 30분쯤, 한나네 집에 갈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다시 꺼내 입는다. 이번엔 강을 건너지 않고 강줄기를 따라 움직이는 트램에 오른다. 다시 한 번 구글지도를 키고 대환을 만나기로 한 카페 위치와 트램 번호를 확인한다. 가는 길이 복잡하진 않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라 헤매지 않으려면 지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끔 어떤 '순간들'에 서운함을 느낀다. 흐드러진 버드나무가 바람에 무겁게 나부끼는 순간이라든가, 여행지에서 관광객의 행렬을 빠져나와 도로변에서 친구와 석양을 바라봤던 순간이라든가. 그런 순간에, 내가 이 공간을 떠나도 이곳은 늘 건재하고 아름답겠지ㅡ라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공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책장에 꽂힌 책들처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일텐데, 이 공간의 역사 속에 나라는 존재가 온점만도 못할테니까. 시간과 공간은 그만큼 불공평하다. 떄문에 대환과 보내는 시간을 묶어둘 공간을 찾아야 했다. 대환과 보낸 시간을 언젠가 분명 그리워 할테니까. 대환과 함께 왔던 카페를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찾아놓고,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대환과 앉았던 자리를 힐끗힐끗 돌아볼테니까. 그래서 혼자서는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만한 카페ㅡ올드타운 중심에 있어서 시끌벅적하고 관광객이 많은데다 종업원들이 최소한의 친절함만 베푸는ㅡ카페에서 보자고 대환에게 먼저 제안했다.


건강한 사람의 특권


 대환은 엄마를 떠나보낸 뒤 사귄 첫 남자친구였다. 대환과의 관계는 헤어지고 난 이후가 유독 유난스러웠다. 3개월. 그와 연애를 한 기간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기간만큼 끔찍히 괴로웠다. 그 사람과 보낸 하루를 놓아주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카페에 들어서자, 강가가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대환이 보였다. 길러지는 대로 살짝 다듬기만한 머리칼, 차갑고 어두운 눈빛, 검정코트에 목폴라를 받혀입은 모습이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대환의 모습이 잘못 끼워진 퍼즐조각처럼 이질적이었다. 왠지 들어맞을 것 같아 끼워본 퍼즐조각이, 애매하게 들어는 가지만, 어딘가가 구겨지거나 비어있을 때처럼. 간단하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종업원이 다가왔다. 나는 언제나처럼 핫초콜렛을, 그는 라떼를 주문했다.

"여전히 저녁엔 커피 못 마시는구나."
"응, 커피 늦게 마시면 아직도 밤에 잠이 안와서. 근데 내가 여기 있는거 어떻게 알았어?"
"승민이한테 들었어. 여기로 출장간다고 하니까 얘기해주더라."
"이렇게 직접 연락을 할 줄은 몰랐어."
"얼마 전에 본가가 이사를 했거든. 예전 집 떠나려고 하니까 너 생각이 나더라."


 연인이었을 때 우리 두 사람 모두 취업준비생이었다. 대환은 나보다 좋은 대학, 유리한 전공을 졸업했음에도 취업에 대한 불안감과 욕심이 강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나와 달리 건강했으므로.

 엄마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하반기 취업시장에 뛰어든 나는, 면접 기회를 한 번도 얻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애도기간없이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건 폭탄을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 다리를 질질 끌고 전장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충분히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탓에 뒤늦게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그 시기를 겪고 나니, 솔직히 취업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계속 회사에 지원서를 내고, 기회가 생기면 면접을 보러 나갔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봉합해둔 마음 한 귀퉁이가 덜렁덜렁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모든 걸 팽개치고 집구석으로 기어들어가 갈라진 모서리에 풀칠도 해보고 테이프도 붙여보며 시간을 죽였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했고, 건강한 사람의 특권인 미래를 꿈꾸는 일이 가능했다. 나처럼 생의 끝과 죽음의 시작 따위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산 사람이니 당연했다. 당장의 마음도 어찌하지 못해 쩔쩔매는 나와 달리, 그는 미래를 불안해 할 수 있었고 욕심을 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사랑했고, 한편으로는 질투했다.


대가있는 사랑


 한 번은 대환이 하루종일 잠수를 탄 적이 있었다. 그를 걱정하거나 미워하는, 모든 행위를 포기한 채 잠이 든 내게, 대환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미안해, 연락 못해서."
"지금 만나서 얘기할래? 아니면 다음에 얘기할래?"
"지금 보고 싶다고 하면 이 밤에 나오려고?"
"응, 니가 원하면."
"그럼 지금 집 앞으로 갈게."


 한기가 빵빵하게 들어찬 1월, 자정에 가까워지는 시간, 으스스한 가로등 불빛 아래 술에 잔뜩 쩔은 대환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까맣게 침전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그 날 나는 대환을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의 주량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술기운은 금방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마음이 힘들어보이는 그를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걸어서 15분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집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마주보고 선 대환은 갑자기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양말 안 신고 왔어?"
"어, 지금 알았네.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나봐."

 
 슬리퍼 바람에 양말도 신지 않고 나온 나를 대환은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더니 쪼그려 앉아 내 열 발가락을 자신의 열 손가락으로 꼬옥 감싸안았다.

"냄새나. 만지지마."
"내 양말이라도 벗어줄까?"
"빨리 들어가기나 해. 집까지 얼마 안걸려."
"내 양말 신기 싫어?"
"응. 어차피 사이즈도 안맞아. 너랑 나, 발 크기 차이가 얼만데?"
"미안해."
"미안해야지 당연히. 이 정도로 넘어가는 게 다행인 줄 알아.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 되잖아. 또 이러기만 해. 미워죽겠어."
"난 네가 예뻐 죽겠어."


 그를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새벽, 누군가를 사랑한 나머지 상대의 배려없는 행동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의 잠수를 눈감아 준 것도, 한겨울에 양말도 신지 않고 그를 집 앞까지 바래다준 것도, 언젠가 나 역시 그만큼의 위로와 공감을 받기 위해 했던 행동이었음을 안다. 그만큼 대환에게 이해받고 싶어서, 치대고 싶어서였다는 걸. 일종의 보험처럼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그를 이만큼 이해해줬으니, 언젠가 그만큼은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 그리고 거기서 오는 안도감이 추위를 이겨낼 만큼 포근해서 발가락이 시린지도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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