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천재 아니다

어버이날에 할 소리인가!?

by 공존

- 오빠

- 동백이 진짜 똑똑해

- 뽀로로 영상에서 야채삼총사 노래를 보는데, 양파가 나왔어

- 그러니까 거실 주방놀이 가더니, 양파를 가져옴


- 그래

- 그러나

- 우리 딸 천재 아니다


이런 저런 일로 바깥양반이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가서 아이를 볼 때, 일주일에 두번 세번은 나에게 "동백이 똑똑해!"라는 문자나, 전화 연락이 온다. 오늘은 이런 특성을 보였다, 오늘은 또 이런 발달을 보였다 하며.


18개월 이후부터 온다는 "재접근기"가 살짝 왔나 싶더니, 한 5일 정도 심하게 아이가 승질을 부리더니만 그 뒤로 인지발달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래 재접근기 넘기면 아기가 아니라 아이가 된다더니만.


아직 쓸 줄 아는 단어라곤 엄마 아빠 꺼야 이거 응가 맘마 아까(약과). 일곱개가 전부이지만 손짓으로 반짝반짝과 숫자놀이를 표현하며, 대부분은 몸으로 움직여서, 자기가 할 말은 다 하고 산다. 세상 모든 게 재미있고, 세상 모든 게 의심되고, 그래서 파릇파릇 배워나가는 나이. 그런 시기.


그러나 나는 그런 아이의 놀라운 성장세를 볼 때마다, 우리 아이는 천재가 아니다 하는 생각을 두번 세번 되새긴다. 부모의 잘못된 기대로 아이를 웃자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아이의 지적 발달에 대한 과민하고 불필요한 부모의 기대가 이 순간순간의 아이의 예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봐서.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많이 아픈 시기이기도 하다. 3월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콧물이 없었던 시기는 다 합쳐 5일이 되지 않는다. 열감기, 아데노 바이러스, 지난번엔 응급실까지 가도록 만든 열경련.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더니 이제는 자기의 고열 증세에 숨을 새근새근 몰아쉬면서도, 가만히 누워서 자신의 몸을 다스리며 엄마 아빠의 얼굴을 그저 응시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버티기가 힘들어지면 부모의 품에 안겨서 위안을 청하기도 하는 아이. 그런 시기.


아프다 낫다 하는 소아과와 약국의 순환보다도, 아이가 무엇을 깨닫고 한마디 말을 더 하는 인지발달과 기능 성숙보다도, 아이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소중해져가고 있다. 응급실을 두번 다녀오고 나서는 나는 엄마에게 있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아기였을까 생각해보고, 그로부터 얼마 뒤, 엄마의 동생 둘이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떠올렸다.


엄마의 여동생 한분은 새해 명주옷을 입고 아궁이에서 불을 쬐다가 불이 옮겨붙어 화상으로, 그리고 남동생 한분은 열병으로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 눈 앞에서 두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낳아, 키운, 아들과 딸. 누나와 나. 우리 각각을 힘겹게, 또 집착에 가깝게, 키워내시며 엄마는 결국 흰머리가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는 영아사망율이 의미없어진 시대에, 아이의 건강한 발달의 기쁨을 쉽사리 망각하고, 그저 아이가 뒤쳐지지 않을지. 나가서 사고를 치거나 당할지 걱정하는 세대가 되고 있다. 아이의 미소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하며, 나는 오늘도 아이의 밥은, 건강식으로 차리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이의 이런 성장세에 흐뭇하지 않을 아빠는 없다. 다만 스스로 아이의 모습에서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헛된 기대나 강박적 예측을 갖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할 뿐.


아이는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엄마아빠의 침대로 올라와 내 품 속을 파고든다. 그러면 나는 아직 잠이 덜 깨어 아이에게 숫자동요와 색깔놀이 영상을 조금 보여준다. 그렇게 한 20분 있다보면 밥을 차릴 시간이 되어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숫자놀이는 훨씬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시키려고 하는데, 요즘엔 색깔을 구분하는 시기가 되었다. 색깔공들 사이에 어느 색을 가져오라 했더니, 두 손 가득 네개의 같은 색 공을 가져오는 너. 그러나, 막상 빨강 노랑 파랑이라는 어휘와 색을 연결시키진 못해, 아직은 빨강색을 가져오라면 노랑색을 가져오는 단계다. 다만 그럴 때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윙크라고 애교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하다.


우리 딸은 천재가 아마도 아닐 테지만.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는, 반드시 될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내일도, 아빠는 열심히 일하고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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