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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홀릭 Oct 12. 2023

임신을 하고 내가 느낀 점들 2


3. '모유수유=모성애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사람들은 이상하리 만큼 모유에 집착을 하는 것 같다.



산모가 아닌 가족 구성원들이 모유수유가 아이에게 좋다며 강요(?)하였으나, 결국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게 되어 갈등을 겪는 사례들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아직 나는 가보지 않았지만, 지인들에게 들어보니 심지어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에서도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산모를 약간 모성애가 부족하거나 마치 어딘가 문제 있는 엄마처럼 느끼게 하는(?) 묘한 분위기가 생성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후 조리원에서 유축 때마다 주변 산모들에 비해 모유가 적게 나오는 것으로 스트레스 받는 산모들도 정말 많다고 한다 ㅠㅠ)



근데 나는 이야말로 정말 정서적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아파 약을 투약해서 모유수유를 못할 수도 있고, 모유의 양이 부족할 수도 있고, 엄마가 하기 싫어서 안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아이의 건강을 운운하며 모유수유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내가 모유를 주든 분유를 주든 내 몸 가지고 내가 정하는 것인데 도대체 왜 그렇게 남의 모유수유에 간섭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모성애를 모유수유로 가늠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누구도 아이를 열 달 동안 품고, 죽을 힘을 다해 출산한 엄마보다 아이를 더 사랑하고 신경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아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완모(완전 모유 수유)를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그렇지 못한 산모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걸로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기가 선택해서 아이를 위해 모유수유를 하는데 우월감을 갖고 말고 할게 어디 있는가?



나의 경우, 초유만 먹이고 완분(완전 분유 수유)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기한테는 모유가 좋아! 너무 너 편한 것만 생각하는 거 아냐?" "모유수유를 한 아이가 면역력이 좋고 건강해" 등의 이야기를 한다.



모유수유가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일반적인 대중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항이며, 우리 아기를 세상에서 가장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런데 이런 내가 모유수유가 아닌 분유 수유를 계획한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분유 수유를 계획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골다공증의 위험 때문이다.



나는 결혼 전, 혹시나 병이 있어서 결혼하는 상대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전신 건강 검진을 진행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철두철미한 신부였다. 심지어 뇌 MRI까지 다 찍었음ㅋㅋ)



그 당시에 다른 것은 다 건강했는데 골다공증 위험성이 높다는 판정을 받았다. 골밀도가 이미 많이 저하되어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겠지만 임신을 하면 아무리 보조제를 먹고 관리를 한다고 해도 산모의 골밀도는 상당히 저하된다.



배 안에서 태아의 모든 골조를 온전히 산모의 칼슘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출산 후 대부분의 엄마들은 관절과 뼈건강에 적신호를 겪게 된다.

다들 손목 발목, 골반이 아파서 고생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칼슘은 체내에서 생성도 안되고 오로지 모체의 섭취에 의존하기에,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칼슘 흡수가 부족하면 모체의 뼈에서 빠져나간다. ㅠㅠ)



이미 임신으로 인해 내 골밀도는 저하될 만큼 저하되어 있을 텐데 여기서 모유수유까지 하게 되면........ 진짜 답이 없어진다.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상당량의 칼슘이 몸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육아는 장기전이고 살아갈 날이 어마어마한데 무리해서 모유수유를 하다가 몸 안의 칼슘이 다 모유로 쫙쫙 빠져나가고 골다공증까지 걸리면 육아는커녕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게 뻔하다. 그러면 아기는 누가 보고 안아주는가? ㅠㅠ엄마가 건강해야 행복한 육아를 하지 않겠는가?




둘째로는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함이다.


모유수유는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완모 엄마들이 자부심을 갖는 게 어느 측면에서는 이해가 된다.)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몇 시간마다 젖이 차고 반드시 젖을 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옷까지 다 젖기 때문에 사실상 사회생활과 외출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엄마들이 스스로 젖소가 된 것 같아 현타가 온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출산보다 더 힘들다는 젖몸살로 엄마들은 엄청나게 고생을 하게 된다. 음식도 임신 시기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된다. (쓰거나 매운 음식들, 기름진 것들, 입에는 맛있으나 몸에는 안 좋은 것들 모두 못 먹게 된다.)



목숨 걸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후에도 창살 없는 감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막말로 산후 우울증이 오기 딱 좋은 상황이 펼쳐진다.

(실제로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의 산후 우울증 발생 확률이 분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보다 1.7배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당연히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면 모유수유를 하면 좋겠지만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너무 큰데 모든 자유가 박탈된 채 아이를 위해 희생만을 해야 한다면 삶의 의욕이 다 사라질 것 같다. ㅠㅠ



게다가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집에 있을 때는 아무리 유축을 한다고 해도 '나=아이 밥'의 강한 연관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분유 수유를 하게 되면 누구나 아이에게 밥을 줄 수 있지만, 모유 수유를 하게 되면 엄마가 집안에 있을 경우 오롯이 엄마 혼자서 아이의 밥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 발생된다.

(모유가 나오는 엄마가 옆에 있는데 굳이 유축한 모유를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시키고 데워서 아빠가 먹인다? 그다지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진짜 자신이 없다. ㅠㅠㅠㅠㅠㅠ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분유 수유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긴다.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정한 분유 수유인데, 주변인들이랑 어른들이 자꾸 모유가 면역에 좋다고 모유를 먹여야 한다고 해서 말을 못 하겠다 ㅠㅠ



죄짓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죄책감도 든다.

(근데 솔직히 내 몸에서 나오는 우유보다 분유가 영양학적으로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기에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다. )



진짜 내 소신을 가지고 육아를 하기도 참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신 중에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많은 간섭과 조언들이 있겠는가!

목숨 걸고 아이를 낳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견한 일인데 그냥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다들 말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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