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적이 발표되었다. 어느 곳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지고, 또 다른 곳에서는 눈물과 한숨이 새어 나온다. 학부모와 교사는 분주해진다. 학생의 점수를 분석하고 지원 가능한 대학을 찾아 최적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이 풍경을 바라보며 ‘이 모든 과정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하는 흐름도 있다.
대학 입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에도 ‘암기 교육’과 ‘점수 중심의 서열화’가 교육을 왜곡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30년이 지났지만 비판의 핵심은 그대로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보다 점수를 기준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구조가 변화하지 않았고, 입시는 여전히 같은 논쟁을 반복한다.
물론 그동안의 교육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사실이다. 제조업 중심의 성장 과정에서는 정해진 매뉴얼을 정확히 수행하는 인력이 필요했고, 교육은 이에 성공적으로 부응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산업은 이미 소프트웨어, 창의성,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력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이동했지만, 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 산업을 이끌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정보화를 넘어 인공지능이 세상을 이끄는 시대다. 그런데 입시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어·영어·수학을 모두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도,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도, 음악에 재능 있는 학생도 ‘세 과목의 점수’라는 잣대 앞에서 한 가지 모습만 강요받는다. 수학만 좋아하는 학생은 국어·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결국 적성보다 점수를 맞추기 위해 과외를 받는다. 과연 이것이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방식일까?
신문 기사에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도 수능 시스템이 인류가 가진 다양성이라는 무기를 없애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예상치 못한 유전자 조합을 통해 다양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라며 “똑같은 학생을 뽑는 수능 시스템으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키우고 있는가? 그리고 AI 시대를 이끌 미래 세대에게 지금의 입시 체제가 적절한가?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수능 성적표보다 먼저 등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