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씨! 내가 뭐 천년만년 여기 다닐 것도 아니고."
고작 4시간을 자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택시 안에서라도 잠깐 잘까 싶어 눈을 감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 붕 뜬 듯 한 몸처럼 온갖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다.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고민하고 고민했고 또 고민했다. 아예 이 분야를 모르는 친구에게도 생각을 물어가며 나름대로 만들었다.
처음 피드백을 받을 때만 해도 아 그렇구나 그런 방법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또 열심히 수정했다. 그리고 또 국장에게 혼났다.
"은선아. 나는 니가 5년 전에 이야기한 그 말이 좋았어. 새장에 갇힌 새는 독수리에게 잡히지 않는다는 거. 그거 어차피 광고주한테 안 팔려. 그런데 그런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잖아. 지금은 너무 1차원적이야. 너 이걸로 광고주한테 가서 팔 수 있겠어? 부담 때문인지 자신감을 잃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울컥했다. 그냥 방향이나 표현이 틀리니 다시 쓰라고만 했어도 좋았을 걸. 왜 지난 이야기까지 들먹이고 부담이니 자신감이 없니 하는 이야기까지 한 걸까.
시디는 나를 따로 옥상으로 불러 이야기했다.
"난 국장님이 오늘 좋은 이야기해주신 거 같아. 국장님은 그동안 계속 바빴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스케쥴링 가지고는 뭐라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난 아닌 거 같아. 니가 스케쥴링 잘 못 해서 결국엔 이렇게 주말에 다 출근하게 만들었잖아."
솔직히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다. 어려운 프로젝트고 일정이 급한 다른 프로젝트에 대부분의 인원이 붙어있어 몇 안 되는 사람들로 준비해서 맞춘 건데 스케쥴링도 못 했다고 혼나야 한다니.
"그래도 캠페인 정리는 잘했어. 솔직히 못 했을 줄 알았거든. 그래서 보고 혼내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왔는데 이 정도면 생각보다 괜찮아."
이런 채찍과 당근이라니.
결국엔 또 못나게 울어버렸다.
도대체 왜 울었을까. 나이 먹어 점점 눈물이 많아진 탓도 있지만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온 시간이 모조리 묵살당한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사실 국장이나 시디가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러면서도 나는 그동안 ATL만 했던 사람인데 이런 프로젝트들을 금방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욱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 뭐 어차피 결국엔 그만둘 거니까. 택시가 회사 근처에 도착할 때쯤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상처 받지 말고 속상해하지도 말자 싶었다. 작년에 신점을 보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결국 내 사업을 하게 될 테니까 회사에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던 그 말이 나에게는 일종의 부적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지?라는 불안감은 덤.
어쨌거나 출근했으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시간은 결국 흐르고 월요일도 오고 프로젝트도 끝날 테니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