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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할지언정 닿게 만들고 싶어요."

5월 2일의 제잘제잘

by coldred

제잘제잘은 '제대로 잘 만든 말을 제대로 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뉴스레터입니다. 간판, 광고, 책, 영화는 물론 전단지, 밈, 명언 등 일상 속에서 보고 듣는 모든 문장을 수집하고 그 문장이 건드린 감정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때로는 광고처럼 때로는 일기처럼, 말 많은 시대에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문장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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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도 없이, 이제 나를 뭐라고 소개하지?"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가져다준 영상 하나를 봤습니다. 래퍼 코드 쿤스트가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강연을 하는 장면이었죠. 그는 말했습니다.


"부족할지언정 닿게 만들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지금 제 모습이 딱 그렇거든요. 완벽하진 않지만 닿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까요.


처음으로 신점을 보러 갔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신점 보는 분이 그러시더군요.


“당신은 회사랑은 안 맞아.”


그땐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도요. 그 말을 흘려보냈고 6년을 더 회사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이 퇴사를 해버렸죠.


첫 한 달은 달콤했습니다. 마음대로 자고, 마음대로 먹고,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아서. 그런데 두 번째 달이 되자 조금씩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돈도, 기술도, 그동안 만들어 놓은 파이프라인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뭘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잘하는 걸 계속해보기로 했습니다. 글쓰기요.


퇴사 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퍼블리 작가에 지원했었는데 그 덕분에 첫 번째, 두 번째 콘텐츠를 발행할 수 있었고 세 번째 기획안도 용기 내어 들이밀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매니저에게도 연락이 왔습니다. 시리즈 중 한 꼭지를 맡아볼 수 있겠냐고요. 갑자기 일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고 광고도 돌리다 보니 글을 저장하는 사람이 생기고 팔로워도 조금씩 늘었습니다. (물론 아주 미미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DM이 하나 왔습니다. NFC 기능이 탑재된 카드 도서를 제작하는 출판사 대표였죠. 신기하게도 작가로 함께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 계약서에 싸인했고 그다음 날엔 퍼블리 쪽에서 단건 콘텐츠 판매 제안도 들어왔습니다. 이게 다, 퇴사 이후 3개월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물론 여전히 저는 이직 준비 중입니다. 평생을 '직장형 인간'으로만 살아온 제가 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더라고요. 당장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자영업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기에는 은근 쫄보라 선택을 주저하게 됩니다.


요즘은 알고리즘 때문인지 퇴사한 사람, 프리랜서, 1인 기업가들의 콘텐츠가 자주 보입니다. 그중에는 인스타툰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디자이너들도 있더라고요. 그들이 올리는 그림 하나, 말풍선 하나가 어느새 저에겐 작은 위로가 되곤 해요. 그들은 저를 모르지만 왠지 온라인 동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을 조금은 믿고 싶어 집니다. 아직은 거창한 커리어도, 빛나는 수입도 없지만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일로 닿아보려는 지금의 시도가 결국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줄 거라는 희망. 부족할지언정 닿게 만들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보려는 요즘입니다.


회사에서 빠져나온 뒤, 명함 대신 나를 설명할 말 한 줄이 참 어려웠습니다. 카피라이터로, 디렉터로 17년을 살았지만 이젠 그 말 대신,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사람’이라는 말을 적어보려고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나도 뭔가 해볼까?’ 하는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그걸로 오늘의 시도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내일은 그 마음을 따라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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