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는 말을 이리도 독특하게 할 수 있을까. 아침 인사를 하며 혹시 만나지도 못할 오후, 저녁, 밤을 위해 미리 하루치 인사를 건넨다. 이 대사는 영화 <트루먼쇼>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많이들 알고 있는 명대사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이 대사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는 영화를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살다 보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지금의 삶이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삶일지, 새롭게 살게 될 삶이 더 좋을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릴지도 모르는 선택 앞에서 혹시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 함께할 영화는 <트루먼쇼>다.
영화 <트루먼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트루먼쇼’의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24시간 내내 생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트루먼(짐 캐리). 다른 여느 방송들과 차이가 있다면 하나, 트루먼쇼는 트루먼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어 24시간 365일 내내 진행되고 있다. 둘,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방송되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셋, 트루먼이 사는 마을은 사실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다.
그런데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을 계기로 트루먼은 자신의 세상이 가짜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 만나는 쌍둥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그를 제품 광고 포스터 앞으로 몰아세우고, 아내는 새로 산 제품의 장점을 광고의 한 장면처럼 설명한다. 갑자기 트루먼의 머리 위에만 비가 내리나 하면, 차량 라디오에 우연히 잡힌 전파에서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중계된다. 자신이 미친 걸까,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걸까, 혼란스러움에 가득한 트루먼은 진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그들이 그녀를 보내버렸지만, 기억까지 지우지는 못했어.”
자신의 삶이 꾸며진 줄 모르는채 살아온 트루먼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의 첫사랑, 실비아가 있었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다른 여배우를 트루먼의 짝으로 정해두었고, 그 때문에 트루먼과 실비아를 억지로 떼어놓는다. 트루먼과 사랑에 빠진 실비아는 떨어지기 전, 트루먼에게 여기서의 삶은 가짜라는 힌트를 주고 사라진다. 실비아의 아버지를 자칭하는 남자의 '피지로 떠날거다'라는 말을 굳게 믿고 지구 반대편의 피지로 가서 실비아를 만날 그날을 꿈꾸는 트루먼. 그녀를 잊지 않고자 잡지에서 비슷한 눈코입을 찾아 실비아의 사진을 만들고, 지하실 창고 한편에는 늘 피지의 지도를 걸어 두었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녀를 찾아 피지로 떠날 수 없었다. 그의 바다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다. 트루먼은 어릴 적 세상을 여행하는 모험가를 꿈꾸었다. 그런 그가 스튜디오 밖으로 나갈 일이 없게끔 만들고자 트루먼쇼 제작자들은 트루먼이 바다 모험 중 아버지를 잃는 사고를 연출한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죄책감과 바다에 대한 공포심으로 트루먼은 바다 위로 이동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트루먼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는 ‘씨헤이븐(Seahaven)’ 섬에 갇히게 된다.
“간단하지 않아. 돈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날 순 없지. 그래도 갈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러나 진정으로 트루먼을 붙잡고 있던 건 바로 그 자신이었다. 바다에 대한 공포심 또한 그를 씨헤이븐 섬마을 안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든 떠날 수 있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라는 제작자의 말처럼 트루먼은 자기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 피지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돈과 계획이 없으니 안 된다’라는 변명 또한 늘 함께했다. 피지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한 여행사는 살면서 처음 방문한 듯했고,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시외버스는 작동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아 처음 탑승을 시도한 듯했다. 두 눈을 찔끔 감고 바다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도 그가 진작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그간 트루먼 스스로가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눈치챌 수 있다.
“보험은 만일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이번 주, 이번 달, 올해일지도 모르죠. (중략) 그러니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죠.”
보험 판매사인 트루먼은 고객에게 보험 판매 전화를 돌리던 중 삶에 대한 진실을 깨닫는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인생을 겁만 내면서, 자신의 꿈과 사랑을 포기한채 살아왔다는 진실을 말이다. 삶에는 거창한 계획 따위 필요 없다. 어차피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 없이 첫발을 내딛는 것을 참으로 두려워한다. 세계를 모험한다는 꿈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지 않다. 지구 정반대 편이 아닌 지금 사는 곳의 옆 마을부터 시작한다면 말이다. 첫사랑을 찾아 피지로 떠난다고 그녀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녀를 찾기 위한 시도는 해본 게 되지 않겠는가. 이를 깨달은 트루먼은 드디어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오랜 시간 자신의 마음속에, 지하실의 보물 상자 속에 꽁꽁 감춰두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꿈과 첫사랑을 찾아,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바다로 나선다.
바다 위 트루먼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그를 붙잡으려는 제작자들로 인해 트루먼은 또 한 번의 폭풍우를 만난다. “날 막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날 죽여!” 죽음을 감수하는 트루먼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제작자 또한 그를 막아기를 포기한다. 그렇게 한차례의 폭풍우로 처참해졌음에도 트루먼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돛을 세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배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의 끝은 바다 너머의 벽이었다. 자신이 통제당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가상의 세계에 갇혔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한 트루먼은 좌절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 분노하고 통곡한다. 벽을 부수려고도 해보았으나, 거대한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끝이 어딘지 모를 벽을 따라 걸어 나가던 트루먼 앞에 드디어 출구가 등장한다.
출구 앞에 선 그에게 제작자는 마지막으로 그를 붙잡고자 말을 건다. “진짜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 네가 두려워할 것은 없어. 두렵지? 그래서 떠날 수 없지.” 제작자는 자신이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을 살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역겨운 현실과 달리 모든 환경이 트루먼을 위해 만들어진 ‘씨헤이븐’은 천국이라며 말이다.
만일 트루먼이 그 스스로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연 배우이고, 자신의 모든 삶이 전 세계로 송출된다는 사실을 알며, 배우로서의 삶을 직접 택했다면 ‘씨헤이븐’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탐험하고팠던 트루먼에게, 가슴 아리게 그리운 이가 있는 트루먼에게 꿈과 사랑을 포기하게 만든 그곳은 천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그는 말한다.
그렇게 벽 안의 세계를 떠나 마주한 바깥의 세계는 트루먼에게 천국이었을까 지옥이었을까? 첫사랑 실비아를 재회한 트루먼은 진정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루먼쇼가 종영되자 너무도 자연스럽게 채널을 돌린 티비 앞 시청자들의 냉담한 반응처럼, 단지 콘텐츠의 소재로 이용된 그는 차가운 현실 속에 힘든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꿈을 찾아, 사랑을 찾아,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 벽 안의 세계를 떠나 벽 밖의 세계로 들어간다.
바다를 넘어 마주한 벽에 좌절하며 울분을 토하더라도, 세상의 끝이라 느껴졌던 그곳에서도 어떻게든 걸어 나가다 보면 새로운 길을 마주하게 되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지더라도 지나온 시간과 쌓아온 경험만큼은 진실임이 틀림없다. 벽 안의 세상이 천국일지, 벽 밖의 세상이 천국일지는 모두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우리를 지금의 세계 속에 붙잡고 있는 존재는 사실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두렵겠지만, 겁이 나고 앞이 캄캄해 보이겠지만, 우리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전부였다고 생각했던 그곳을 떠나 진정한 세계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