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나에게 연락이 왔다. 항문에 피가 나서 치질이 의심되어 병원에 갔는데 조직 검사를 했고 직장암으로 이야기를 들었단다. 28살 미혼의 여자에게 암이라는 단어는 와닿지 않았을거다. 그녀에겐 대학병원 내시경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사촌 오빠가 유일한 희망이지 않았나 싶다. 울면서 전화를 했었는데 첨부된 진료의뢰서와 내시경 사진을 보았다. AV(anal verge-항문 피부선) 상방 2-3 cm 실시한 조직 검사에서 adenocarcinoma moderately differentiated 가 나왔다. 항문과 너무 가까웠고 모양도 좋지 않아 보였다. ulcerative 한 모습이었고 제대로 된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해야 했다. 교수님께 부탁을 드려서 빨리 외래를 봤고 검사 후에 방사선 치료를 통해 사이즈를 줄여서 수술을 하도록 계획을 잡으셨다. 부위가 부위인 만큼, 항문을 살리는데 최선의 방향을 잡도록 하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엔 장루를 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었고 아직 제대로 된 검사도 받지 않았으니까.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갈지 말지 고민한다고 하는데 전반적인 치료의 방향은 비슷할 터였고 본인의 의지와 선택이기 때문에 존중하기로 했다. 집이 부산이어서 이곳에서 입원과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추천을 했고 박선자 교수님이 봐주시지만 환자의 의지이기 때문에 강요할 수 없었다. 당장 수술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추가적인 진단과 검사는 시간을 두고 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가 중요했다. 언제 병동에 자리가 날지 모르고 검사 및 치료와 수술이 가능할지 모르는데 마냥 서울만 기다린다니. 어느 정도 수술에 대한 기대치는 서울의 유명 병원을 선호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치료의 프로토콜은 부산과 서울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교수님께 설명을 듣고 난 뒤 이모가 우는 모습을 저 멀리 지켜봤다. 수술 후 검사를 받으러 오는 수많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거 같았다. 며칠 전 유방암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하던 젊은 여성분이 항문에 피가 난다며 걱정하며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전이가 되었으면 어쩌냐며 울면서 검사를 받았었다. 내가 보기엔 허열성 대장염이었고 조직 검사 후에 펠로우 선생님도 동일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검사 전에 피임약이나 최근 항생제를 먹었는지, 철분제는 먹는지, 설사는 했는지 등의 질문을 했었는데 마스크를 쓴 채 차가운 표정으로 감정 없이 질문을 했었다. 울먹거리며 대답하는 여성분의 표정이 생각난다. 하지만 사촌동생을 검사해야 하고 설명을 할때 동일하게 할 수 있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과연 그때처럼 직업적으로 증상과 전후 관계를 물을 수 있었을까?
해맑게 웃고 실없는 소리를 하던 사촌동생의 표정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