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테라피
12살, 첫 번째 단편 소설을 썼고, 문학 공모전에서 낙선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데뷔 무대였던 낙선전 같은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창밖 풍경을 보는 걸 무엇보다 좋아했던 문학 소녀는 이때부터 한번쯤 먼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 드넓은 교정(어렸을 땐 학교가 참 크게 느껴졌다)에서 귀를 먹먹하게 하는 공을 차는 소리와 기합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때였다. 창가자리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며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내 앞으로 그것이 나타났다. 햇빛에 반짝이는 먼지들이 건조한 공기 속을 유영했다. 지저분하다! 손을 휘저어 창밖으로 내보내는 시늉을 했는데 먼지들이 ‘우린 살아있어’라고 필사적으로 반짝거렸다. 인체의 머리카락, 콧잔등, 손가락이 내어놓은 길을 따라 느리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관록의 무림 고수처럼 보여서 어느덧 내 시신경이 느리게 먼지의 움직임을 쫓기 시작했다. 손을 들거나 몸을 틀 때마다 먼지는 발작적으로 허우적거렸다. 보풀처럼 옷에 들러붙는 존재라면 모르지만 가벼워서 공기중에 가뿐히 떠 있을 뿐인 작은 먼지 정도라면 내버려두자고 결론을 내렸다.
밝은 햇빛이 하얀색 먼지가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주는 잠시 동안 먼지는 힘을 내서 반짝거리길 반복했다. 누군가 반드시 자신의 반짝임을 알아주리라는 확신에 찬 몸짓 같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어딘가 잠복해 있을 것만 같은 위험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야말로 여기에 실존하지 않느냐고 항변하며 하얀 몸짓으로 반짝였다. 수년 후, 바깥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나쁨’이었다. 스마트폰에 설정해 놓은 미세먼지 알림이 빨간 색깔로 경고했고, 손은 자연스럽게 흰색 마스크를 집어들었다. 햇빛에 반짝이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하며 덧창을 닫았다.
옛날 옛날에, 먼지잼이 내렸다. 낙서가 가득한 책상 앞에서 아주 가냘픈 소리를 내며 공기 속이 바다인 줄 알고 수영하는 하얀 먼지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공기 속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던 게 잠복해있던 유령이 아니라 하얀 먼지라서 참 다행이었다. 난 햇빛 속에서, 햇빛 속의 먼지처럼 웃었다.
TIP
먼지잼 : ‘먼지 재움’의 줄임말로 비가 겨우 먼지를 재울 정도로 조금 내림.
호림은?
J컬러소통연구소 대표로 색채심리상담사 1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여행이 가진 색깔들로 테라피합니다. <모든 여행이 치유였어1>, <모든 색이 치유였어2>를 썼습니다. 15년간 베테랑 기자로 일을 하면서 300명에 달하는 CEO들을 전문적으로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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