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차이 그리고...
Coffee Person & Fruit Lover
Coffee Person 남편
(블랙) 커피를 하루에 한잔이라도 안 마시면 피곤함을 느끼고 세잔 정도는 거뜬히 마시는 남편은 커피가 없으면 안 되고 커피에 대한 맛은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카페인 민감도가 높아 "Coffee Makes Poop."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학원 과제가 있는 날이면 예전에는 졸음을 쫓고 공부 분위기를 만들고자 대부분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 공부하는 패턴이 이제는 용돈도 아낄 겸 집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스타일로 바뀌었지만 공부하러 들어가기 전에 드립 커피를 만들어서 마시는 건 여전하다.
Fruit Lover 아내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과일 귀신이었다. '과일은 살도 덜 찌고 건강에 좋아!'라는 믿음으로 항상 식후에는 디저트로 과일을 먹는 것을 즐겼다. 그런 나를 알기에 엄마는 냉장고를 과일로 채워 넣으셨었다.
지금은 위 건강 때문에 밥도 조금 먹고 위 자체도 작아져서 귤 한 개를 먹고 싶어도 컨디션에 따라먹을 수 있고 없고를 결정할 수 있지만, 예전엔 다이어트 걱정만 없었다면 식후에도 앉은자리에서 포도 한 송이, 귤 5개쯤 해치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안 먹어야 하는 것보다 못 먹는 슬픔이 더 큰 듯.)
서로의 취향을 배우다
커피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지만 그 애정이 지속될 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나에게 커피란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주는 부분이 더 큰 비중이고, 맛은 좀 분별할 줄 알지만 커피 단독으로 즐긴다기보다는 디저트의 맛을 북돋아주는 조연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의 절친(남편)이 좋아한다니 나도 같이 마시게 되었다. 커피에 관심이 좀 더 높아지면서 당근 마켓에서 무료 나눔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입양하고,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전 남자 친구에게 줘버린 로마에서 공수한 모카포트의 존재가 너무 아쉬워져서 결국엔 다시 신박한 새 모카포트를 집에 들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종류든 식후에 입가심을 할 달달한 과일을 먹고 싶었고, 종종 과일을 사두었다. 굳이 권하기 전에 먹지 않던 과일을 함께 즐기기 위해 딸기, 사과, 바나나, 귤 등 취향을 맞춰서 구매하게 되었다. 그러니 남편은 출출할 때 종종 야식으로 과일을 찾곤 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살림 노하우가 돋보이는 다 익은 바나나에 나무젓가락 꽂아 얼리기 신공을 보여줬더니 열광을 하며 이제는 종종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즐긴다.
아직은 신혼이라 함께 한 기간이 길진 않지만 이렇게 다른 취향을 가진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취향을 맞추어가고 있는 중이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다
취향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취향이 당연히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잘하고 있겠지만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을 우리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일례로 나는 게임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게임을 하는 남자에 대해 우호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남편이 모바일 게임이나 FIFA 게임을 적당히 즐겨하는 것을 보고 남편 정도의 자제력이 있는 게이머라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머리를 식히는 것이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도 처음엔 나의 잦은 유튜브 시청에 대에 회의적이었다. 어느 날 "유튜브가 재미있어? 책을 읽는 게 더 낫지 않아?"라는 그의 물음에 난 "정보의 정확성은 보장되지 않지만, 난 책을 잘 안 읽으니까 내가 몰랐던 분야의 다양한 콘텐츠를 보기 때문에 유튜브로 폭넓은 분야를 공부한다고 할 수 있어."라고 응했다. 남편은 그 당시에 나의 대답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평소 깊이 생각지 않았던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내가 유튜브를 시청한 뒤 함께 얘기할 거리를 많이 만들기도 하고 예컨대, 최근에는 미국 이민에 대해 장기적으로 고려중인 상황에서 미국의 의료보험과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비교해볼 수 있는 콘텐츠를 남편과 함께 공유하며 심각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니 난 이제 남편에게 "또 게임해?"라고 말하기보다는 "FIFA 비즈니스(선수 트레이딩과 팀 운영) 잘하고, 게임도 이겨. 파이팅!"이라고 말하고, 남편도 이제는 내가 머리 식히는 겸 오락프로그램 콘텐츠를 보아도 "유튜브 재미있게 보세요"라고 말해준다.
어느 선이 적정한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척도가 다르지만, 내 기준과 남편 기준에서는 우리라는 관계에 해가 되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서로의 취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될까?
사람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각자의 취향을 만들어 간다. 나이가 들어가면 취향이라는 게 고착되고 변하기 쉽지 않은 것 같은데, 타고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20~30대에 경험한 것들이 모여 그 취향이라는 게 형성되는 것 같다.
20대 초반 남편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휘핑이 잔뜩 올라간 달달한 커피만 마셨는데,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의 아메리카를 주로 마시는 것을 계속 보게 되었고 본인도 점점 그렇게 아메리카노를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스무 살 무렵에는 고수의 존재도 모르고 알게 된 시점에도 고수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 된 에피소드를 쓰고 있다.
인생의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는 나와 내 절친이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될지 모르겠다. 다만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더라도 우리의 성향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잘 받아들이는 편이라 생각이 들어 취향의 폭이 넓어지고 '부부는 살아가면서 점점 닮아간다.'는 말이 있듯 우리의 취향도 변형되면서 닮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