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22: 이시하라의 이야기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나의 울부짖음은 끝없이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 듯한 암흑 속에서,
나의 존재마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낡은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그 빛을 등지고 한 노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시하라였다.
그는 묵묵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방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싸늘한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듯,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의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졌다.
찾아오는 이는 이시하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장례식장은 차가운 침묵만이 감돌았고,
향로에서 피어 오른 희미한 연기가 쓸쓸하게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며칠 밤낮을 울고 또 울어서 인지,
눈물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이시하라는 묵묵히 모든 절차를 진행했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 칸조의 기일마다 우리 집을 찾아와
조용히 절을 올리고 아버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말없이 사라지곤 하던 남자였다.
그의 존재는 늘 그림자처럼 희미했지만,
그날만큼은 그의 침착함이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었다.
장례가 끝난 후, 이시하라는 나를 자신의 허름한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내가 살던 저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고 낡은 다다미 방이었다.
쿰쿰한 냄새와 함께 눅눅한 습기가 가득했지만,
묘하게도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시하라는 나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내밀었다.
나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음식을 입에 댔다.
그는 내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옥가락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차가운 옥의 감촉이 내 손바닥에 닿았다.
이시하라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허공을 응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묵혀둔 이야기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네 할아버지, 야나기 칸조는 일본의 별 볼 일 없는 부랑자였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삶이었지.
그러다 기회의 땅 조선에서 막일을 하더라도
일본에서 보다는 잘 살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가지고,
이름 모를 밀항선에 몸을 실었어.
그러나 조선에 와서도 딱히 나아지는 것은 없었어.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우연히 나를 만나게 되었지.
나는 그때 이미 이 땅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먹고살고 있었어.
칸조에게 도굴 기술을 가르쳤고,
우리는 함께 조선의 고분들을 파헤치기 시작했지."
이시하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시선은 옥가락지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그 시절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경주 고분은 그야말로 노다지였어.
황금으로 만든 관, 화려한 장신구들, 섬세하게 세공된 도자기들.
파낸 유물들은 비싼 값에 일본인들에게 팔려 나갔어.
도굴의 규모가 커지면서,
칸조는 파낸 유물들을 일본으로 밀수하기 전,
잠시 숨겨둘 안전하고 완벽한 은신처를 찾았지.
경찰의 끈질긴 추적은 물론,
다른 도굴꾼들의 탐욕스러운 눈길로부터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곳.
그는 그런 은밀한 장소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어."
이시하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이 주머니를 더듬더니, 낡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좁은 방안에 퍼져나갔다.
그의 눈빛은 아득한 과거를 응시하는 듯했다.
마치 그 시절의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는 듯했다.
그는 탁한 기침을 몇 번 뱉어냈다.
"그리고 그때, 노도술이라는 작자를 알게 되었지.
노도술은 이 산골짜기 구석구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들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고,
칸조에게는 그런 현지 조력자가 절실했던 거야.
서로의 이해관계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맞물렸어.
칸조는 유물을 파내는 기술을,
노도술은 그 유물을 숨기고 관리할 최적의 장소와 방법을 알았으니까.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어.
둘은 밤마다 몰래 고분을 파헤치고,
유물들을 둘만 찾을 수 있는 곳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지.
네 아버지가 물려받은 그 어마어마한 유산은
아마 대부분 이 시기에 벌어들인 것일 게야."
이시하라는 담배를 비벼 끄고 탁한 공기 속에서 숨을 골랐다.
그의 눈빛은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그날의 광경을 다시 보는 듯, 그의 얼굴에 희미한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1945년,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맞이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어.
해방의 열기가 조선 전역을 뒤덮었고,
일본인들은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지.
네 할아버지 칸조도 마찬가지였어.
그는 파낸 유물들을 챙겨 서둘러 조선을 떠나려 했어.
네 아버지에게는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섰지.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칸조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리고 며칠 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경찰은 일본인에게 앙심을 품은 조선인에 의해 살해된 것 같다고 발표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어.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
우리는 확신했어.
그건 노도술의 짓이라고."
이시하라는 말을 맺으며 옥가락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옥가락지는…
칸조가 경주의 가장 귀한 고분에서 찾아낸 것이었고,
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결혼 예물로 준 것이었지.
네 어머니가 다시 너에게 물려주었으니,
그것은 네 가문의 역사이자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의 눈빛은 옥가락지에 담긴 비밀을 아는 듯 깊었다.
이시하라로부터 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잠들어 있던 나의 심장을 깨우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의 뿌리, 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는 거대한 퍼즐 조각이었다.
그날 밤, 심장이 하도 요동치는 통에 이시하라의 그 좁은 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사명감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