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엇갈림의 언어로 사랑을 쓰다

by 홍연

나의 사랑은 언제나 엇갈림으로 시작되고, 엇갈림으로 끝나곤 했다.

서로를 향해 걷는 것 같지만 미묘하게 어긋난 발걸음처럼, 닿을 듯 말 듯한 감정이 늘 내 앞을 지나가 버렸다. 첫사랑 역시 그랬다. 같은 복도를 지나고, 같은 수업을 들었지만, 그 사람의 시선은 늘 다른 곳을 향했고, 나는 그 사람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는 그런 마음을, 한동안 품고 살았다. 그래서 더 깊이 새겨졌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못한 마음은 입안에서만 맴돌다가 결국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스스로를 지워냈다.

말하지 못한 사랑은 오래 남는다. 지나간 시간에 묻혀 흐려지기보다는, 끝내 꺼내지 못했던 진심이라서 더 짙게 가슴에 남는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고, 혼자서만 알아냈으며, 스스로 사랑이라 확신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조용히 감정이 부풀었다가 그 사람의 마지막 웃음 하나에 전부 무너져 내렸던 감정이기에.


그 이후로도 나는 자주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좋아했다. 그 마음은 종종 비밀스러웠고, 가끔은 너무 투명해서 들키기 일쑤였다. 간혹 누군가와 이어지기도 했지만, 끝은 길지 않았다. 사랑은 시작보다 끝에서야 비로소 진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시험에 우리는 서로 실패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무의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되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의 나도 사랑을 하고 있었구나, 싶다.




사랑은 참 이상한 감정이다. 시작할 땐 늘 조용하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스며들고, 어느샌가 익숙해져버린 그 감정은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는 사랑인 줄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그 조용한 감정의 시작을 놓치곤 했다. 처음엔 그냥 좋은 마음이었다. 다정하다는 이유만으로, 가끔 나를 먼저 챙겨주는 말투 하나에, 혹은 나와 같은 타이밍에 웃는 표정 하나에 괜히 마음이 가곤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늘 내가 이름 붙이기도 전에 엇갈렸다.


비록 누군가와의 관계로 이어지지 않았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사이로 남았을지언정, 나는 분명 누군가를 좋아했고, 그 마음을 소중히 품었다. 그 모든 조각들이 다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꼭 이어져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고, 꼭 서로가 서로를 같은 온도로 바라봐야만 진심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오래 바라봤다면, 그 사람이 내 하루의 일부가 되었고, 나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바꿔놓았다면, 그건 충분히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완전한 문장이 아니었다 해도.


삶은 어쩌면 사랑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주 외롭고, 자주 실망하고, 자주 흔들리지만 그 모든 틈 사이마다 누군가를 좋아했고, 또 누군가에게 위로받았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 묻혀 있다. 친구와의 대화 한 토막, 길을 걷다 들려온 낯선 웃음소리, 어린 시절 받았던 편지 한 장 속에도 사랑은 존재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몰랐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우리가 짝사랑했던 순간보다, 사실은 더 많은 순간에 서로를 향해 마음을 건네고 있었을 거라고.




이 책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자 했다. 이어지지 못했던 감정들, 애써 무시했던 설렘들, 너무 늦게 깨달은 사랑의 조각들, 혹은 이미 끝났지만 여전히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 그 마음들을 조용히 꺼내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얹어두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사랑이 하나쯤 있었기를 바란다. 비록 말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고, 서로의 이름도 가물가물해졌지만, 그때 느꼈던 떨림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런 짝사랑이 하나쯤. 그 사랑이 아팠더라도,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고, 당신은 그 순간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마음이, 나의 이야기 속에서 조금쯤 위로받기를 바란다. 어쩌면 당신이 잊었다고 생각했던 오래전 감정이, 이 글의 어디쯤에서 조용히 눈을 뜨고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당신 안에서 천천히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짝사랑이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꽤 아름다운 일이었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