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을 썩 좋아하지 않음에도 <결혼이야기>는 근래에 유일하게 괜찮게 본 영화다. 요즘의 영화계, 특히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척박하고 지루한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말하려고 한다. 갈증 끝에 만난 즐거운 소품, <결혼이야기>(넷플릭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인물들도 서사의 실패를 반복한다. 생각하자면 처음부터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자신의 생각을 찰리에게 전하는데 서툴렀고,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니콜이 겪은 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둘 사이에도 소통되지 않는다.
찰리의 첫 번째 변호사는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혼이야기를 재구성하지만, 찰리는 그 이야기 앞에서 주저하며 머뭇거린다. 그의 두 번째 변호사는 인간적이지만, 조정 과정에서 찰리의 이야기를 관철시키지 못한다. 니콜과 찰리는 법정에 앉아 그들의 변호사들이 벌이는 이야기의 난장을 지켜본다. 하지만 그 난장판 안에서도 그들의 진정한 '결혼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종종 느닷없이 노래를 부른다. 나는 이 장면들이 꽤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이 장면들은 그들의 상황을 완벽히 대변하지도, 그렇다고 (뮤지컬 영화와 같은) 명징한 쾌감을 선사하지도 않는다. 그 노래들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영화의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다가 흘러가버린다. 마치 이 노래들도 그들을 대변할 수는 없다고 푸념하듯 말이다.
찰리와 니콜의 격렬한 싸움도 일순간 폭발한 후 지나가 버린다. 니콜의 감동적인 글을 읽고 흘리는 찰리의 눈물도 영화에 진한 인장을 남기지 못한다. 다시 무사하고 평온하게 시작되는 일상.
그러니까 <결혼이야기>는 이들의 '결혼'을 하나의 '이야기'로 담을 수 없음을 조용하게 고백하는 영화라고 느껴진다. 운명적 결합, 세속적 계약, 전통, 제도, 생존... 결혼을 둘러싼 수많은 서사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러나 <결혼이야기>를 다 보고 나서도 니콜과 찰리를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으며, 그들의 결혼에 대해 뭐라 설명하기도 어려워진다. 아마도 노아 바움백은 무수한 서사의 실패를 통해서만 '결혼'에 대한 이야기에 닿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결혼을 경험하지 않은 입장에서 그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다시 이 영화를 찾을 것 같다. 문득 어느 한 장면을 바라보며,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조용히 상상해보며. <결혼이야기>는 오랫만에 만난 즐거운 소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