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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28. 2022

FAKE

아내는 사람들에겐 기분 나쁘고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아내는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동네 아이의 목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언제나 내 뒤에 서서 그 긴 속눈썹을 자신의 마음인 양 내리깔고 바들바들 떨다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구원의 빛이라도 본 사람처럼 크게 눈을 뜨고 무언가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옆집 아주머니는 종종 음식을 가져다 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내의 안부를 묻곤 했다. 아내와 사는 내가 대단하다는 듯, 요즘 우울증 약도 예전같지 않다던데 병원은 다니고 있는지 묻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소개받은 병원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내는 좋아지고 있다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언젠가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말이 돌아왔다. 이웃으로 지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들과 함께 할 저녁시간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 안과 문밖의 상황은 다르니까.아침 8시.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나 보란 듯이 두 손이 앞으로 묶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어깨를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잡아 똑바로 눕게 하고 튀어나온 손을 이불 속에 넣어 주었다.


모퉁이를 작게 찢은 종이를 현관문 사이에 끼워 넣고 문을 잠갔다. 언젠가 이웃으로부터 아내가 밖으로 나와 어딘가에 다녀오더란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문 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고 아내가 밖으로 나온 흔적이 있는지 살피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외출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거짓말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아직도 아내 곁을 맴돌고 있는 걸까. 아직도 내게서 아내를 훔쳐 갈 생각을 하는가. 아내는 내가 출근하고 나면 울다가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와 함께 있으면 웃음이 나고, 떨어져 있으면 눈물이 나다가 화가 치민다. 사무실 책상 서랍에는 아내가 써준 사랑의 시가 있다. 아내는 글을 잘 썼다. 아프기 전에는 연애편지도 곧잘 써주곤 했는데 이제 나는 문장에 갇힌 사랑을 끄집어내 아내와 내가 가짜가 아님을 뇌에 각인시키고 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 6시 퇴근시간이 되자 남은 서류 작업은 집에 가서 하리라 생각하며 가방을 챙겼다. 집까지 걸어서 15분. 사무실 앞에 좌판을 깔아놓고 장사를 하던 아주머니가 오늘 상추가 좋다며 권하길래 그럼 골고루 담아달라 했더니 먼저 다가온 손님을 놓칠 세라 검은 봉지에 침을 바르는 손이 급했다. 한 손에 가방과 쌈 채소가 가득한 봉지를 들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앞에 다다르자 아이들이 떨어뜨리고 간 아이스크림 봉지를 줍고 있던 경비원이 다가왔다. 경비원은 오늘 아내가 밖으로 나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고 했다. 너무 무섭다고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다며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안사람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 딱해라.’라고 했다. 나는 검은 봉지를 경비원에게 내밀었다. 저쪽에서 호의를 보였으니 내쪽에서도 호의를 보이는 게 맞았다. 아내가 또 나오거든 집에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하니 경비원은 연신 알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다시 빈손이 되었다. 나는 가방을 반대 손으로 고쳐 잡고 집으로 향했다. 출근하면서 문에 꽂아둔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어 돌렸고, 동시에 아내가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컵에 물은 마시다 말았는지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컵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아침에 내가 보았던 모습을 하고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붙잡고 컵을 내밀었다. ‘당신, 오늘 나갔었어?’ 아내는 답이 없었다.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고 내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들고 있던 컵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9시 뉴스입니다. 3일 전 현암동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첫 소식으로 전해 드립니다. 경찰 수사 결과, 피해자는 이 씨의 아내가 아닌 납치, 감금된 여성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씨는 1년 전부터 박씨의 주변을 맴돌며 수차례 만남을 강요해왔는데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폭행을 하여 상해를 입히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다고 합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박씨 혼자 외출을 하기도 하고, 간혹 이씨와 함께 외출한 적도 있어 납치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이씨가 아내가 우울증이 있고 어떤 위험한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하여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이씨가 출근한 사이의 박씨의 행적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씨의 온몸에는 골절이나 타박상 등 학대당한 흔적이 가득했는데, 드러나지 않는 부위에 그 피해가 집중되어 있어 이씨의 잔혹성에 대해 관계자 모두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이씨는 수사 내내 우리는 서로 사랑했고,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씨의 심리 상태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며……,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 범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수사관은 빈 종이를 내밀었다. 입을 닫고 있는 내게 뭐라도 써보겠냐고 하더니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켰다고 했다. 지금 먹는 걱이 중요한가. 나는 아내를 잃었는데, 사랑하는 아내를 내 손으로 떠나보냈는데 그 마지막을 볼 수도 없게 나를 가둬두고서 배를 채우라니. 아내가 스스로 머리에 내리친 컵, 그 순간 감기던 아내의 눈이 떠오른다. 쓰러진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는데 곧 아내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나를 네 옆에 두게 해.’ 아내가 분명 말했지만 목소리는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우리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아내의 눈은 언제나 내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를 보자마자 다른 사람들을 보며 울부짖었다. 아내의 눈물만이 내 것이었다. 


[나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는 내가 줄 수 있는 온 마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남은 건 살인자라는 오명입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을 죽여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게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아내의 소원대로 제 곁에 영원히 아내가 머무르게 했습니다.]


나는 펜을 놓았다. 내 진술은 그게 전부였다. ‘작년 6월 23일 효선동 장미 단지 앞에서 사진 찍고 있던 박성영씨의 손을 억지로 붙잡았죠? 싫다고 뿌리치는데도 계속 따라다니다 경찰까지 출동했고요. 수개월 동안 하루 수십차례 전화를 하고, 집에 침입해 숨어 있다 들켰네요? 박성영씨는 결혼할 사람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남자친구다, 우리는 부부가 될 거다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바람에 두 사람은 파혼까지 했어요. 박성영씨가 썼다는 그 편지들도 모두 억지로 쓰게 한 거죠? 그 종이는 눈물에 피범벅이었어요.’ 수사관은 아내의 사진들을 내 앞에 펼쳐 놓았다. ‘등에 난 상처 보이죠. 대체 뭘로 이랬어요? 부검 결과 뇌출혈로 이미 말이나 행동에 이상이 있었을 거라는데 이웃들에겐 우울증이니 뭐니 잘 봐달라고 하고. 냉장고 옆에 걸린 비닐봉지에 찢어진 종이가 가득하더군요? 나갈 때마다 그걸 끼워놓고 감시했어요?’

아내를 처음 본 날, 아내는 다 시들어버린 장미나무 사이에 서서 지는 노을이 뿜어내던 황금빛 입김이 아내의 양 볼을 물들이던 때 장미보다 붉은 입술, 그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저 여자와 사랑하리라 다짐했었다. 점점 그 순간이 잊혀 가고 있다. 때론 흐려져서 그때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추억해야 하고, 어떤 날엔 그런 날이 우리에게도 있었나 싶어 아내를 잡았던 두 손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다. 아직도 그 온기가 남아 있는 듯 내 손끝은 무겁고 아리다. 


‘…아내의 목에 내 손이 감기고, 손톱이 파고들었는데, 순간 아내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손에 힘을 풀었다가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자 나는… 나는….’ 몸이 바닥을 향해 숙여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고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아내의 이름, 내가 죽여버린 그 이름과 내가 했던 맹세들이 허공에 떠있다가 아내의 마지막 모습처럼 고꾸라지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들을 붙잡으려 구석으로 기어갔지만 곧 내 두 팔은 붙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방에서 끌려나가면서 아내를 보았다. 거짓이야. 아내가 말했다. 아니야! 내 비명은 점점 더 커졌고 아내는 말을 잃었다. 아니야! 우리는 진짜야!! 우리는 진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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