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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29. 2022

Don’t forget

어린 시절엔 딱딱한 마루에 생긴 작은 틈을 손톱으로 후벼파며 외로움을 곱씹었다. 부모님과 형은 언제나 내 삶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였다. 나는 우편배달부나 방문판매원과는 쉽게 친해질 수 있었지만, 가족과는 예외였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나는 적합하지 못한 존재인가 싶기도 했다. 내 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되었다. 찬물에 머리를 담그고 수건으로 대충 턴 다음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풀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6시쯤 형의 방문을 두드리며 아침을 챙겨 먹으라고 말한 뒤 가방과 차 키를 챙겨 들었고, 짤랑거리는 소리에 일어난 아버지는 형의 방문을 열고 커튼을 젖혔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소음,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짜증스럽게 받아치는 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형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나는 언제나 형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형이 나를 궁금해하는지도 궁금했다. 문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속옷만 입은 형이 보였다. 형이 내 방 쪽을 보며 서 있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 화장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형은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3년 만에 전신 마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나는 형이 돌아온 날 처음으로 형의 눈을 바라보았다. 형의 눈동자는 진갈색을 띠는 것 같기도 하고 진회색 같기도 했다. 감은 형의 눈과 짧은 속눈썹이 마치 닫혀있던 방문 같았다. 어머니는 형을 위해 일어나고 형을 위해 교회에 나가고 형을 위해 낯선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우리 집에는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내가 공부하는데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의자에 앉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때론 먹지도 차지도 않고 책을 파고들었다. 희망하는 직업란에 적었던 직업을 가지게 된 후에도 부모님은 나를 대견해한다든지 하지 않았다. 매달 생활비를 건네기 위해 내 손엔 잠을 깨기 위해 마시다 만 커피가 들려있고 창엔 잠을 설친 얼굴만이 비칠 뿐이다. 나는 집이 그립지 않고 편안히 누울 곳이 그리웠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형의 온몸을 닦고 머리를 감기는 일은 내 몫이었다. 어머니가 기저귀를 모아둔 쓰레기봉투를 내게 건넸고 나는 그것을 받아서 들고 밖으로 나갔다. 쓰레기봉투가 쌓여있는 곳에 또 하나를 올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가 대학에 합격한 날 형은 한국에 나와 있었는데 그때 아끼는 담배라며 내게 한 개비 건넸다. 나는 그 담배를 그냥 가지고 있었다. 책상 서랍, 빈 필통 속에 넣어두고 가끔 들여다보았다. 담배는 형처럼 그대로였다.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빛에도 소음에도 반응할 수 없는 존재로 언젠가 담배를 태워 없애는 일에 대해 생각했지만 나는 절대 내 손으로 그것을 어쩌지 못할 것 같았다. 언젠가 어머니가 안 계실 때 형의 손가락에 담배를 걸쳐놓고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형이 사라지더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형을 옆으로 누이자 어머니는 등에 열감을 없애기 위해 부채질하기 시작했고 나는 주름이 생기지 않게 시트를 당겨 펴고, 형의 상의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우리는 말없이 심장의 그래프, 맥박 수, 호흡수를 나타내는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듯 나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나는 있지만 있지 않은 존재였다. ‘너 때문이야.’ 어머니는 갑자기 형에게 향해있던 부채로 내 뺨을 내리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 형이 이렇게 된 건 네 저주 탓이야! 얘가 왜 여기 누워있어야 해? 사람들 말대로 너한테 붙은 귀신을 떼어내야 해! 또 아니? 형이 일어날지도 몰라.’ 어머니가 이렇게 긴 문장으로 내게 말을 한 건 몇 년 만이었다. 그런데 첫 마디가 또 나 때문이라니. 언제나 내가 문제였다. 어머니 말처럼 내게 귀신에 씌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형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형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형은 고등학생이 된 후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벗은 여자들의 사진이 가득한 잡지를 내 책상 서랍에 가득 채워놓고 부모님이 없을 때 내 방에 들어와 그것들을 몰래 보았다. ‘오늘은 1번 서랍, 오늘은 2번 서랍, 오늘은 베개 속, 오늘은 침대 아래, 오늘은 창틀’ 나는 형을 말리고 싶었다. 그렇게 힘들면 선생님이나 어머니께 얘기해보자고 했다. 형을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이든 내가 돕겠다고도-이런 방식만 아니라면 했다. 잡지를 베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형은 오늘 친구 집에서 본 영상이 있는데 재밌어서 빌려왔다고 같이 보겠느냐고 했다. 형의 눈은 놀이터에 나가 놀자고 나를 잡아끌던 그때의 눈빛과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부모님 방으로 가 비디오 전원을 켜고 테이프를 집어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본 것은 형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잔인한 마음, 욕망, 재미 따위가 뒤섞여 나에게로 향했다. ‘내가 너 믿는 거 알지? 형이 성공하면 우리 집은 더 행복해질 거야. 그러니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알았어? 네가 한마디라도 하면 여기 네 방에 있는 잡지들, 비디오테이프 다 네가 들여온 거라고 할 거야. 그게 사실이긴 하지. 그리고 네가 받아준 건 맞잖아?’ 내 몸을 만지는 손은 언제나 축축했고 그때마다 나는 소리를 참으며 울고 있었다. 문을 잠그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 형의 보조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내 방 열쇠들을 본 날부터였다. 그날 이후 나는 전등만이 켜진 방에서 엎드린 채 뒤집어진 세상을 보곤 했다. 

일곱 번째 날로 기억한다. 그날 형은 허리춤에 뭔가 감춘 상태였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다 기절해 버렸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의사 선생님께 형과의 일을 털어놓았지만, 곧 어머니의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나는 타락한, 머릿속에 온통 저질인 생각밖에 없고 모범생인 형을 질투해서 거짓말을 한 아이였다. 나는 아버지께 형의 잡지로 온몸을 두들겨 맞고 방에 갇혔다. 그날 거꾸로 달린 손잡이를 붙잡고 밤새 울며 형의 보조 가방에 있던 수십 개의 열쇠 중 하나라도 훔쳐 놓을 걸 후회했다.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형의 거짓말만 믿고 왜 내 말은 믿어주지 않냐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왜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설령 내가 그런 인간이었다 하더라도 왜 그냥 나를 놓아버렸을까. 묻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얼마 후 나는 방 밖에 나올 수는 있었지만 이름은 불리지 못한 채 살았다.

어머니는 소파에 누워 뉴스를 보다 잠이 들었다. 나는 한참 동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하나요? 왜 믿지 못할까요? 나는 거짓말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어머니가 항상 마시는 찻물에 수면제를 타둔 터라 아침까지는 깨지 않을 거였다. 나는 형의 방으로 갔다. 형이 고개를 들 수 있다면 소파에 누운 어머니를 볼 수 있을 테지만 형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못되었다. 어머니가 화장대에서 쓰던 둥근 의자는 제자리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침대맡에 당연하게 놓인 그 둥근 의자에 앉아 형의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을 바라보았다. ‘형은 듣고 있을 거야. 그렇지? 내가 여기 앉은 이유는 형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야. 어머니는 형과 나를 떼어놓으려고만 하니까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어. 형이 떠나던 날 내가 그랬잖아. 형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형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형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진실 같았던 거짓이 날 덮치고 죽이려고 해. 형이 산산이 조각나버렸으면 좋겠어. 형체를 찾아볼 수 없게 갈기갈기 찢어져서 다신 내 옆에 올 수 없게. 그럼 나도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형을 내 머릿속에서 내보낼 거라는 거야. 나 정말 형을 용서하지 않기로 했거든.’


나의 감정은 거센 파도가 치는 해변에 놓인 바위가 그러했듯 시간이 흐르자 반으로 쪼개져 둘이 되고 어느샌가 셋이, 넷이 되었다. 그렇게 다듬어지고 작아져 결국엔 손안에 모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것이 원래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일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방 앞에 서서 밖에서 잠글 수 있었던 그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열쇠 구멍에 집어넣고 잠갔다가 풀었다가 다시 잠갔다가 풀었다. 오래 빨지 않은 이불 위에 몸을 누이고 그토록 원했던 잠을 청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어머니는 그날 이후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기뻐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소리 내 울었고 어머니의 뒤로 보이는 의아한 표정을 하고 우리를 보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내 팔을 뒤로 당기고 나를 체포하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잠든 사이, 형은 영원히 사라졌다. 형이 누워있는 침상에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열쇠들이 흩어져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아버지는 어린 날의 나를 목말 태우러 올 때처럼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내 뺨을 내리쳤고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많은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 왜 그랬냐고.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나는 답했다.


“당신은 그대로 살아있잖아요. 나는 햇살이 피부에 닿는 따스함, 바람에 실린 사람들의 목소리도. 한겨울, 따뜻한 물 한잔에 소름이 내려앉는 느낌도 알 수 없었어요. 나는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소리를 질렀어요. 피부가 다 닳을 때까지 벽을 기어오르는 느낌이었어요. 형이 담배를 건넸던 날, 내 방 책상 위에 뭐가 올려져 있었던 줄 아세요? 여자 속옷이었어요. 그걸 속옷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조금만 잡아당겨도 찢어질 것만 같았죠. 나는 형에게 치욕을 주고 싶었어요. 자신이 선물한 속옷을 입고 한 손에는 재활용 공이 아니라 딜도를 들고 있는 형의 모습을 상상했죠. 나는 때를 기다렸고, 결국 좋은 때를 만났죠.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모습을 봤으니 저는 이제 제가 살고 싶었던 인생을 살게 되겠죠. 제가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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