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시작에 관한 꽤 아름다운 이야기
미술의 시작과 관련해선 오랜 기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특히 한동안은 고대 로마의 문인이자 정치인이었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 23-79)의 낭만적인 기록이 곧잘 인용되곤 했는데요. 그는 자신의 책 <박물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전설을 소개했습니다.
기원전 600년 경, 고대 그리스 지역인 코린토스에 한 커플이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매우 사랑하는 사이였는데요. 어느 날 남자가 전쟁터로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죠. 이별 전날 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잠든 연인의 옆에 등불을 비추곤 벽면에 생긴 그림자를 따라 선을 그어 놓은 것이죠. 딸의 사랑을 애틋하게 여긴 그녀의 아버지는 청년의 모습을 흙으로 빚어 형상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그리스인들은 딸이 그날 그린 선을 회화의 시작으로, 아버지가 만든 형상을 최초의 점토 초상으로 여겼습니다. 아쉽게도 이 선과 점토 모형은 침략군에 의해 파괴되어 남아있지 않았지만 말이죠.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전설을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큰 인식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죠. 바로 선사시대의 동굴 그림이 발견되었기 때문인데요. 때는 1879년,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Don Marcelino Sanz de Sautuola, 1831-1888)는 딸과 함께 알타미라 동굴을 탐사하던 도중 신기한 광경을 발견합니다.
바로 천장에 그려진 선사시대인들의 소 그림을 찾아낸 것이죠. 그는 자신의 놀라운 발견을 학회에 보고했지만 돌아온 것은 부정적인 대답뿐이었습니다. 1만 5,000년 전의 그림치곤 솜씨가 너무나 훌륭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학자들은 미개한 당시의 고대인들이 이런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자들은 그가 발견한 그림이 가짜라고 주장했고, 1880년에 열린 선사문화 워크숍에서는 그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조롱하기도 했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사우투올라가 돈을 벌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사기죄로 그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와 비슷한 시대의 그림들이 여러 동굴에서 연달아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남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이 대표적인 예죠. 결국 학자들도 사우투올라의 발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고로 지난 2018년에는 한 연구팀에 의해 현생 인류가 아닌 네안데르탈인들이 약 6만 4,000년 전에 그림을 그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더 오래전부터 그림, 그러니까 ‘미술’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그런다면 그들은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요? 사람들은 이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이 배불리 먹은 뒤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는 낙서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것이 오로지 예술을 위한 순수한 그림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죠. 샤먼이 일종의 환각 또는 접신 상태에서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가설 중, 오늘날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주술설’이라 불리는 내용입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그림이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일종의 주술 의식에 해당한다는 거죠.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이들이 동굴 벽면에 짐승 그림을 그려 놓고 그곳에 창을 던지면 실제로 짐승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으리라 추측합니다.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실제 사냥에 대한 두려움도 없앨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죠. 하지만 이 주장은 당시 사람들이 잡아먹었던 짐승과 그림 속 짐승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등 여러 이견이 제시되고 있어 확정된 사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명확히 아는 데에도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죠. 대체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신간 <세상 인문학적인 미술사>에 담긴 내용을 일부 편집하여 업로드한 내용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