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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May 29. 2019

헤겔, 중국집의 변증법적 발전을 주목하다

철학의 식탁 열두 번째 이야기

얼마 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친구는 종종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데 새로 생긴 중국집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처음에 짜장면을 시켜먹었는데 양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다음에 시킬 때는 양이 늘어서 온 거야. 그리고 짬뽕을 시켰는데 내 입맛에는 너무 맵더라고. 그런데 다음번에는 덜 맵게 배달돼서 온 거 있지."


소름 끼치게 놀라운(?) 이 중국집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냥 주방장 아저씨의 기분이 '오늘은 왠지 면 좀 더 넣어주고 싶은 날이네'라거나 '어쩐지 이번 짬뽕은 맵게 만들고 싶지 않아'라는 거 였을까? 아니면 배달 담당자가 배달올 때나 그릇 가지러 올 때 독심술이라도 써서 친구의 마음을 간파했던 걸까?


아니, 그럴리가 있나. 사실 비결은 간단하다. 친구는 주문할 때 주로 배달앱을 사용하는데 이 중국집이 썩 마음에 들어 적극적으로 리뷰를 남겼다고 한다.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짜장면 양이 적었던 게 조금 아쉬워요', '이번에는 짬뽕을 시켰는데 제 입맛에는 조금 매웠던 것 같아요. 군만두 서비스 감사해요!'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중국집에서는 친구의 리뷰를 일일이 확인해서 음식을 만들 때 반영했던 거다.


이 집은 보다 많은 고객들이 공통적인 의견을 남기면 적극적으로 레시피를 변경하기도 한단다. '탕수육 소스가 너무 새콤하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소스에 들어가는 레몬양을 줄였습니다', '저희가 직접 만드는 군만두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네요. 앞으로는 짜장면 한 그릇만 주문하셔도 꼭 서비스를 드리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발전하는 세계를 설명하는 철학, 변증법

끊임없이 발전하는 게 어찌 이 중국집뿐이랴. 우리는 늘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또다시 무언가를 개선해 나가며 삶을 살아간다.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늘 발전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며, 회사에서도 늘 새로운 제도 혹은 시스템을 도입하여 조금 더 높은 수익성을 얻어내기 위해 분투한다. 이처럼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흔히 ‘변증법’이라고 불리는 헤겔의 이론은 인간 사회의 이러한 역사성과 발전성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개념은 모순되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개념은 '정'이라고 불리며, 이에 모순되는 개념은 '반'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둘은 보다 종합적인 주장인 합에 의해 통합되는 과정을 거친다. (참고로 헤겔 자신은 이를 정반합이라 부르지 않고 즉자, 대자, 즉자대자 등으로 이름지었다.)


가령 '자유'라는 정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반대쪽에는 '속박', '규제', '구속' 등의 개념이 존재할 것이다. 이 둘은 상호 모순으로 인해 서로 충돌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합으로서 '법'이라는 체계가 세워지게 된다. 물론 합의 과정에 이른다고 해서 모든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매번 법 체계의 불완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정반합의 과정은 더 높은 수준에서 계속 되풀이되며, 끊임 없이 그 사이에서 도출되는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간 의식 속에서도 이어지는 정반합의 과정

헤겔은 변증법적 과정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가령 중세시대와 지금의 사고방식을 비교해보자. 당대인들은 신이 존재하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며, 인간의 모든 삶과 역사는 신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신의 세계를 상정하든 상정하지 않든 우리는 모두 현세의 행복을 추구한다. 현재를 조금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종종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 변화를 통해 표면화되기도 한다. 헤겔이 예로 든 사건은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하나의 시대적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그에 따르면 이러한 시기엔 정신의 혁신적 변화가 어느 개인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당시 그가 주목한 인물은 바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헤겔은 그를 '절대정신'이라 부르며 시대 발전의 종점 단계를 그가 다다르게 할 것이라 믿었다. 물론 나폴레옹에 대한 그러한 평가가 지금도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인간 발전의 역사성을 파고든 철학자, 헤겔

헤겔의 철학은 무엇보다 인간 발전의 역사성을 주목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대는 이성이 인류를 끊임 없이 발전시켜나갈 것이라는 계몽 사상이 각광받는 시기였다. 과학문명과 이성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마치 제이(J) 커브를 그리듯 인간에게는 장밋빛 미래만이 남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헤겔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전개해가는 과정이다. 전제군주만이 자유로웠던 고대부터, 소수의 사람만 자유로웠던 중세와 근대를 거쳐,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현대로 옮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일방향적인 발전이 아닌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질테고 말이다.


헤겔의 이러한 사상은 후대 사상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는 그의 정반합적 사고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로 이양될 수밖에 없다는 유물론적 변증법을 발전시켰으며, 실존주의자들은 절대정신이 어느 개인을 통해 발현된다는 개념이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며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가 각자의 입장이 어떻든, 현대 철학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철학 역시 마치 그의 사상처럼 변증법을 바탕으로 끊임 없는 극복과 발전의 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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