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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남마담, 부산

부산 광복동 고갈비의 전설, 지워지지 않는 노장의 고등어 향기

by 김고로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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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동의 '문현할매곱창'에서 운 좋은 점심 식사를 한껏 즐긴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잠시 차 한잔 이후에 낮술 한잔을 걸치기 위해 광복동으로 향했다. 부산의 광복동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열리기 시작했던 BIFF거리, L백화점, 보수동 책방골목, 용두산공원, 국제시장, 자갈치 등이 주변과 중심에 모두 맞물려있는 부산 관광 중심 중 하나이고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는 동네.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자주 방문하는 번화가이기 때문에 설날 연휴에 방문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광복동 거리에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몰려있음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십 년 전 좁은 골목에 고등어를 연탄에 직화로 구워주던 고등어구이가 유명했던 '고갈비'거리, 전성기에는 12개의 고갈비집이 번성했으나 세월의 타격을 정면으로 맞은 지금은 결국 2개의 고갈비집만 남았다. 김고로가 광복동 고갈비 거리에 가서 고갈비를 먹겠다고 하자, 부산에서 나고 자라신 김고로의 아버님께서는 본인이 대학생 시절의 얘기를 해주셨었다.


"내가 대학생 때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부산에 놀러 왔었는데, 친구가 갈비 먹으러 가자고 하데. 그래서 내가 '야,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갈비를 먹냐?' 하니 그냥 따라만 오라고 해서 따라갔었는데, 그게 광복동 고갈비 집이더라. 그때 갔었던 '남마담' 집이 아직도 있으니, 거기 가거라. 거기 잘한다."


김고로의 아버님께서 대학생 시절 친구와 고갈비를 먹으며 소주를 마셨던 추억을 얘기해 주시니, 아직까지도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남마담'이라는 고등어구이 집이 김고로는 심히 궁금했다. 이번 부산 식도락은 노포 등을 직접 찾아가 보겠다는 마음으로 문현곱창구이와 광복동의 고갈비 골목을 방문했으나,


"어... 지금은 안 하네? 그리고 매주 첫째와 셋째 화요일은 쉬신다는데?"


"허얼... 오늘 셋째 화요일이잖아."


모텔과 주차타워, 식당들의 환기구들과 환풍기들의 바람소리가 골목길을 쓸고 다니는 찬바람과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가는 광복동의 뒷골목. 좁고 기다란,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구식 건물에 밝은 군청색과 흰색의 조화로 된 간판들, 알루미늄 사시로 된 외관 인테리어, 이제는 기름때와 손때가 많이 묻어 그을린 옷까지 입고 광택이 많이 사라진 철판구이기계, 좁은 문 위에 '추억의 2F방'이라고 쓰인 글씨를 보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다락방에서 고갈비를 먹었다'라는 말의 '다락방'은 아직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분명 가게가 망한 것은 아니고, 아직 하고 있지 않은 시간일 뿐이지만, 오늘은 분명 안 하는 모습이다.


"음... 어쩔까..? 진짜로 하는지 안 하는지 좀 기다려볼까? 평소에는 오후 3시부터 영업하신다는데."


"음.... 그래, 기다려보자. 그리고 다시 와서 확인하고, 그래도 안 하면 어쩔 수 없지."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남마담'에게 나중에 다시 보자는 아쉬움을 남기고는 광복동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초록색과 흰색 배경의 별과 사이렌이 상징인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오후 3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명절 연휴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다 보니, 카페에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렇게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주문한 찻잔의 바닥이 보이고,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두어 번 바뀌는 시간이 지나서, 그들은 부산에서 고갈비를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자신들의 운을 시험하러 다시 남마담 앞으로 향했다.


그들이 오후 3시 반이 다 되어서 고갈비 골목으로 가자, 이전에는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던 '남마담'의 가게 안 쪽이 무언가가 환한 형광등의 불빛과 사람의 말소리가 느껴졌다. 부산의 고갈비를 먹고 싶어 하던 이쁜 그녀의 얼굴이 화악, 환하게 밝아지면서 가게 앞으로 다가가 알루미늄 샤시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간다.


"영업하시나요?"


"네, 해요. 들어와요."


"앞에 첫째, 셋째 화요일은 안 한다고 붙어 있어서 안 하시는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고 우리 거의 매일 합니더."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그것은 상관없다. 그들이 방문하고 싶은 고갈비 집이 오늘은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1974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고등어 2마리가 그려져 있는 메뉴판과 고등어의 효용, 어느 유명 작가분이 그려주신 남마담의 사장님과 손님들에 대한 그림과 다른 유명 작가님이 써주신 듯한 싸인과 시 구절들, 지금은 이전보다는 조금 덜 젊어지셨으나 한창 영업을 하실 때의 모습이나 어느 잡지에도 인터뷰로 출연하신 적이 있는 잡지의 한 조각 등... 천장과 벽의 색이 바랜만큼이나 이 가게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고로는 고갈비와 달걀말이를 하나씩 주문하고는 궁금한 마음에,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 다락방을 보러 간다, 난간을 잡지 않으면 올라가기 쉽지 않은 좁고 높은 계단을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동작으로 올라가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추억과 사랑이 가득한 넓은 다락방이 나타난다.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고, 난방도 하지 않아서 냉랭한 공기가 가득한 2층이었지만 손님들이 많이 올 때면 알코올과 고등어의 향기가 넘치는 방임이 분명하다.


고갈비와 달걀말이를 기다리는 사이, 맥주 1병을 주문하니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전 심심함을 달래기 위함인지, 깍두기와 미역줄기와 콩절임을 찬으로 내어주신다. 각자 다른 맛으로 입맛을 살리고 달콤함 콩절임이 제법 맛이 좋다, 강원도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반찬이기에 다른 반찬들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남마담의 사장님과 함께 보조를 하시는 분이 가게 내부에서 장 봐오신 식재료들을 정리하고 달걀말이 팬으로 두텁고 큰 달걀말이를 준비하시고, 남마담의 사장님께서는 골목으로 나가셔서 이제는 연탄구이가 아닌 철과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진 생선구이 기계 위에서 커다란 고등어를 꺼내어 구우신다. 고갈비는 기계의 예열시간을 포함해서 굽는 시간이 제법 필요하기에 달걀말이가 먼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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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로가 익숙한 달걀말이는 달걀에 다진 대파가 가득한 모습이지만, 남마담의 달걀말이는 깍둑 썰린 햄과 양파가 잔뜩 들어간 두꺼운 달걀말이다. 양파가 달콤하고 햄이 달걀과 함께 탱글거리며 씹힌다, 고소함은 보너스라 어디서나 좋은 술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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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말이를 두세 개 집어먹으면서 맥주 한잔을 가볍게 마시니 커다란 고등어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갈비가 아름다운 색채와 빛을 드러내며 식탁 위로 오른다. 아직 젓가락으로 건드리지도 않았지만 이미 바삭바삭하고 구수한 고등어의 질감과 냄새가 눈에 보이는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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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뜨끈할 때 먼저 드셔요."


달걀말이보다는 고등어가 뜨거울 때 먼저 드시라는 사장님의 말씀, 생선구이는 식어갈수록 비린내가 더 많이 나는 음식이라 따뜻할 때 먹는 것이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고등어가 이렇게 노릇하게 구워질 수가 있지?"


"배랑 등까지 완전 단단하게 익었어."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젓가락으로 배와 등을 찌르고 째면서 고등어의 배와 몸통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는다.


바사사삭


구워진 고등어의 껍질이 갈라질 때마다 잘 튀겨진 튀김의 튀김옷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오메가 3이 가득 담긴 기름기 흐르는 하얀 속살이 분리되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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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삭


쫄깃쫄깃


속살 겉에 붙은 단단한 껍질이 과자처럼 씹히면서 고등어의 녹진하고 고소한 기름맛이 어금니 주변으로 왈칵 쏟아져 나오며 입안이 고등어의 맛으로 가득 차오른다.


"와, 고등어를 이렇게 구울 수도 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고등어구이는 처음이다."


"으음! 정말 바삭하고 고소해."


김고로가 고갈비를 먹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 전날 고등어연구소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연탄에 직화로 굽던 비교적 옛 방식의 고등어구이가 아닌, 완벽한 전처리와 비린내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모두 잡아내기 위한 반찬과 식재료의 조합, 소바와 솥밥 등 다른 식문화와의 결합과 현대적인 조리법의 연구등이 모두 더해진 최신 방식의 고등어가 깔끔하고 상큼하게 고등어의 맛이라면, 전통적인 조리법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는 고갈비의 맛은 어떨지, 비교하면서 맛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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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가 꼬리부터 머리까지 그 어떤 곳도 바삭함과 노릇함을 놓치지 않은 고갈비, 생선구이 기계로 구워낸 고갈비도 이렇게나 맛있는데, 고갈비 집이 12개나 있었을 시절 연탄에 석쇠 위에서 직화로 구워진 생선은 어떠한 맛을 내었을까.


껍질이 붙어있지 않아도 등과 몸통, 배의 거뭇하고 하얀 속살들이 탄력 있게 씹히고 다시 고등어가 살아나서 튀어 오르는 듯한 식감에, 술집이라서 하얀 쌀밥은 없어 곁들일 수가 없지만 시원하고 청량감 넘치는 맥주를 계속 들이키게 만드는 고등어구이라니.


"내가 먹었던 고등어구이 중에 제일 맛있어."


해산물을 좋아하는 이쁜 그녀는 전날 고등어연구소에서 먹었던 고등어 요리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먹는 고등어가 기다린 시간과 기대만큼이나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고등어를 위, 아래, 앞, 뒤로 돌려가며 뼈를 바르고 살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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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있는 볼살과 커다란 가운데 뼈에 부채처럼 사이사이 붙어있는 고갈비의 '갈빗대'마저도 아쉬우니 앞니로 거침없이 물어뜯어서 모두 해체한다. 어두육미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김고로에게 고등어는 갈빗대가 제일 맛있다. 고소하고 쫄깃하며 적당히 단단한 살이 뼈에서 분리될 때마다 쾌감이 짭짤함의 시너지가 훌륭하기에.


낮술이니까 맥주 1병과 안주 2개로 아주 넉넉한 낮술 시간을 즐긴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다시 광복동의 골목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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