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스퀘어피자, 강릉

네모난, 정직하고 진한,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

by 김고로

피자는 대체적으로 둥글다, 꼭 둥글어야 한다는 법칙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먹던 옛사람들의 방식이 내려온 것이 지금까지 익숙하니까 지켜졌겠지만, 서로 나눠먹기에 편하다면 둥그렇든, 세모이든, 네모이든, 별 모양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적어도 음식은 맛있으면 그만이다.


전 세계 피자 스타일의 반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 피자, 그 미국 피자에서도 4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것이 뉴욕식, 그리고 시카고식.. 잘 알려지지 않은 필라델피아식과 오늘 얘기하고 싶은 디트로이트식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알아본 바로는 디트로이트는 공업과 자동차산업이 발달했는데, 자동차 수리에 쓰던 네모난 공구 선반에 피자를 구워 먹던 것이 디트로이트식 피자로 발달했다고 하는데, 마침 택지에는 디트로이트식의 피자를 판매하는 1년 된 작은 피자집이 있다.


디트로이트식의 피자는 대체로 직사각형의 네모난 피자인데, 그 이름대로 '스퀘어 피자'... rectangle보다는 square가 더 친숙한 단어니까 상호나 메뉴명으로는 그게 낫겠지... 마침 화요일이라 자주 가는 단골 피자집도 쉬는 날이겠다, 이 네모난 피자가 많이 궁금하기도 했겠다, 이쁜 여자를 데리고 매장으로 향했다. 굉장히 작은 매장에 오픈 키친, 단순하지만 '힙'하게 인테리어를 해놓은 매장.


"뭐 먹을거야?"


"처음 왔으니까 이 곳의 대표메뉴를 먹을래. 디트로이트 오리지널이랑 양송이 튀김."


"닭날개도."


"그래."


이곳에서 제일 대표메뉴로 밀고 있는 두가지 메뉴만 먹으려고 헀지만 '이쁜 여자'가 닭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그녀의 제안사항도 받아들여서 사이드 메뉴를 두개 주문한다. 사장님께서 혼자서 하시기 때문에 테이블은 겨우 두세개 정도 밖에 없는 1인 매장, 주방이 속살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그 안에서 사장님은 오븐과 작업대, 튀김기 등을 부지런히 돌아다니시면서 요리를 하신다. 중간 중간 포장과 배달 주문도 자주 들어오고 마치 열과 압력과 사람으로 압축되어 정신 없이 돌아가는 디트로이트 공업지대의 1인 피자 식당을 홀로 표현하고 계시듯.


강릉 맛집 피자 스퀘어피자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피자 양송이 튀김 1.jpg 스퀘어피자 디트로이트 오리지널


나의 팔뚝만한 길이의 스테인리스 쟁반과 굵고 넓은 망 위로 피자가 올려져 나온다. 스퀘어피자의 '디트로이트 오리지널'이다. 진득하고 넓게 뿌려져 매콤새콤한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수제 토마토 소스가 널찍한 고속도로의 중앙선처럼 피자 위를 장식한다. 그 옆으로 알싸하고 부드러우며 고소한 화이트 렌치 소스가 도로의 경계선과 주차가능 구역을 나누듯이 점선처럼 뿌려지고 그 아래에 베이컨, 살라미, 두터운 치즈와 할라피뇨가 깔렸다.


도우의 엣지에는 도로 위의 거친 아스팔트처럼, 빵 아래까지 바삭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치즈가 거의 도우 아래까지 내려왔다. 마치 차의 창문을 내리고 거기에 어깨와 팔까지 올린 검은 피부의 사내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검은 썬글라스를 쓰고 있다가 살짝 이마까지 올리고는 눈썹을 씰룩, 흰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는 '어이, 거기 앉아있는 형씨랑 이쁜 아가씨, 나를 어서 먹지 않으면 후회할거라고?'라며 웃고는 쾌활하게 액셀을 밟고 달려나가듯.


A4용지보다 조금 더 커보이는 크기의 피자가 의심스러워 옆에서 피자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스퀘어 피자의 도우는 내가 아는 어느 단골집의 도우와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 그리고 특별하다. 피자의 크기로 보자면 '이걸로 배가 차나..?'라고 생각할만하지만 막상 먹기 시작하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우가 생각보다 두텁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여느 미국식 피자들보다 더, 1.5~2배는 두텁다. 하지만 이 도우가 갓 나온 브리오슈처럼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다, 절대 단단하지 않다. 게다가 피자를 구우면서 넉넉히 넣은 치즈가 (그래, 위에서 얘기한 그 흑인 형씨 같다고 한 그 치즈가) 함께 흘러내리며 도우의 겉면에 그을린 모습이 '어서 나를 물어! 과감하게 물어 뜯으라고!' 외친다. 나와 '이쁜 여자'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피자 한 쪽을 들어 앞부터 입으로 가져간다.


푹신!


혓바닥에 홍수처럼, 폭포처럼 와르르 부어지는 토마토 베이스 레드소스의 강렬한 새콤함과 감칠맛, 짭짤함이 푹신한 도우를 씹는 입안 전체를 감싸듯이 들어오면 쫄깃한 치즈의 바삭함과 푹신하고 구수한 도우가 치아 사이사이로 스멀거리면서 퍼지고 거기에 바삭, 아삭, 사각거리면서 씹히는 살라미와 베이컨 그리고 새콤하고 톡쏘며 상큼한 할라피뇨, 마늘 풍미가 알싸하고 촉촉하며 고소하게 마무리를 짓는 화이트 랜치 소스의 맛.


"와, 이쒸!"


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면서 피자에 신이 잔뜩 난 삿대질을 시전한다. '이쁜 여자'도 곧 이어 한입을 먹고는,


"느끼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느끼하지 않아. 느끼해지려고 하면 할라피뇨랑 랜치소스가 딱 잡아주니 좋아."


그녀가 얘기한대로, 마늘 풍미가 가득한 랜치 소스와 새콤 상큼한 할라피뇨 조각들이 느끼하거나, 기름지다고 느껴질 만한 여지를 싹 접어버린다. 그리고 이제 매력적인 엣지 부분으로 우리는 달려간다.


바삭!


바사삭!!


검게 그을려 보이던 치즈가 씹히면서 거칠고 귀까지 들려오는 바삭한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그리고 씹을 때마다 '바삭 바삭' 소리를 내 귀에 속삭이며 나의 멱살을 잡고 피자 슬라이스를 계속 먹어야한다고 협박하는 맛이다. 피자의 끝을 먹을 때마다 이 엣지가 바스러지며 사라지는 바삭한 소리를 들으려고 눈을 감고 도우 엣지의 소리에 집중한다. 바삭한 소리와 함께 바싹 구워진 치즈의 훈연 맛과 고소한 맛이 입안에 폭발한다, 속력이 괴물 같은 자동차의 엔진처럼 '부르르릉!!!', 배기관의 소리처럼 '꽝!' 단단하고 부드럽게 구워진 치즈의 식감을 나의 입안에 터트린다.


강릉 맛집 피자 스퀘어피자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피자 양송이 튀김.jpg 양송이튀김, 디트로이트 오리지널, 버팔로윙


우리의 즐거운 디트로이트 피자 질주를 보시던 사장님께서는, 디트로이트식의 피자는 도우가 두텁기 때문에 고객님들마다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신다. 나는 사실 '이렇게 맛있는데 호불호가 있다니.... 신기하군'하며 그 말씀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말로 두텁고 단단한 도우의 피자는 씹으면서 턱과 입이 아플 정도지만, 스퀘어 피자의 도우는 그렇지 않다. 상큼함, 매콤함, 감칠맛, 부드러움, 촉촉함, 바삭함으로 이어지는 주인장의 치밀한 식감과 맛에 대한 계획이 피자 위에서 펼쳐진다. 한입 물고 나서는 순식간에 대여섯 조각을 먹어치웠다. 레드소스의 특별한 감칠맛과 촉촉함도 좋았지만, 도우와 치즈가 어우러진 바삭함과 폭신함이 다 했다.


사이드 메뉴로 주문했던 양송이튀김, 요 녀석도 스퀘어피자에서 주문하지 않으면 후회하는 별미 중에 별미. 무조건 시켜먹어라. 두 번 먹어라. 양송이 튀김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튀김이다. 버섯이라는 식재료 자체가 가열하면 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하지만 이 기술적으로 잘 튀겨진... 얇고 바삭하게 빵가루가 겉에 묻혀진 이 버섯튀김은 바삭하고, 양송이의 풍미와 육질이 입안에서 아삭 혹은 으적거리고, 씹을 때마다 버섯에서 새어 나오는 양송이의 수분이 환상적이다. 거기에 요구르트의 상큼하고 부드러운 맛이 담긴 하얀색의 소스가 가미되면 튀김요리의 느끼함은 없다, 거의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식감과 맛, 향을 잘 모아서 잡아놓은 현재 요리 트렌드에 부합하는 피자이다. 강릉을 대표하는 피자집이 어디인가?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아는 여느 피자집에 견주어 절대 뒤치지 않을 피자집이다. 그리고 피자 도우, 혼자서 주방을 분주히 오가며 일하시는 사장님의 연구와 노력이 담긴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피자집만큼이나 자주 올 것 같다, 앞으로. '사장님, 오래오래 장사하세요'라는 내가 요식업 사장님들께 할 수 있는 극찬으로 인사를 드리고 방문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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