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불고기는 항상 맛이 좋았다, 친가였던 부산의 구서동 할머니 댁에 수원에 사는 손주들이 명절에 올 때 즈음이면 그녀는 근처 시장에 가서 최고 등급의 한우 등심만을 얇게 저며 오셨었다. 일 년에 겨우 많으면 두, 세 번 오는 큰 아들 내외와 자녀들, 그리고 부산에 사는 당신 자녀들과 손주들을 먹이려 그녀는 명절이 되거나 여름휴가 기간이 되면 아침부터 분주하게 시장과 부엌을 오가며 움직이셨다.
당신의 멀리 사는 손주는, 당신의 음식을 유독 좋아했다. 며느리를 닮아서 그런지, 입맛도 꽤나 미식가인 손주는 이미 어릴 적 기억이 생각나던 그때부터 첫 입에 당신의 음식이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고, 그것들은 모두 그녀의 손맛에서 나온다는 것도 차차 자라 가면서 알았기 때문에.
철마다, 때마다 나오는 제철 재료로 떡과 양갱, 그리고 단술(식혜의 경상도 방언)을 직접 만들고, 할아버지께서 함께 살아계셨을 때에는 낚시로 잡아오는 잡어를 젓갈처럼 넣어서 푹 삭혀서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오던 경상도식 짠지(묵은지의 경상도 방언)도 밥상마다 빠트리지 않고 내오셨다.
한우 등심으로 만들었던 야들야들한 불고기에는 많은 재료들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미 고기의 품질 자체가 워낙 좋았기에,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이미 좋은 음식이 완성된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셨기에, 그녀는 불고기에 조선간장, 설탕, 마늘 외에는 넣는 것이 없었다.
진하게 간장의 검은색이 되도록 어두운 고동빛이 도는 색과 윤기가 흐르는 불고기를 커다랗게 집어 참새 부리와도 같은 작은 입에 무지막지하게 맛있다며 쑤셔 넣는 손주를 보면서
"천천히 무라, 천천히, 누가 안 쫓아온다"라며 웃으며 탕국(소고기, 해물, 무 등을 넣어 맑게 끓이는 경상도식 맑은 국)을 건네주셨다.
한우 등심이 야들야들하고 쫄깃하며 부드러운 것은 둘째치고 알싸할 것만 같은 마늘은 이미 크림처럼 녹는 작은 조각들이 되어서 향긋한 마늘향만을 입안에 선사했고 설탕으로 연육 작용이 매우 잘 되었는지 기분 좋은 육질만을 남기는 살코기들 사이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단맛과 짭짤한 간장이 감칠맛을 터뜨렸기에 할머니의 불고기는 자녀들은 물론 손주들까지, 우리 가족 모두의 인기 메뉴였다. 마늘, 설탕, 간장 만이 들어가는 아주 단순한 양념장이지만 그 요리법을 배워간 작은 며느리도 지금까지 그 맛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지는 못할 정도로 할머니의 손맛은 특별했다.
그녀의 별미는 고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삼색나물 중에서도 보들거리고 단맛이 나는 도라지 나물이 훌륭했는데 도라지의 쓴맛은 어디 가고 즐겁게 씹는 맛과 도라지의 향만을 가져 살짝 짭짤한 맛을 자랑했다. 어느 날, 할머니께 비법을 물으니 할머니는,
"설탕물에 오~~~ 래 넣어두면 된다."라고만 하셨다.
보통 도라지의 쓴맛을 빼기 위해 수시간 정도를 설탕물에 담가두는데 할머니의 말씀으로 짐작하기로는 거의 한나절 이상은 담가두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삭하거나 질겅거리는 식감은 많이 사라지지만 시금치, 고사리나물과 함께 그녀의 도라지나물은 제사 후 식탁에서 금방 동이 나는 반찬 중 하나였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그녀는, 여느 할머니들처럼 손주들의 배를 가득 채우기 위해, 견과류와 건포도, 대추가 들어간 찰떡 그리고 직접 담근 밤, 팥, 호박 양갱 그리고 식혜까지 다과 상을 내오셨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김家들이 뜨듯한 바닥에 누워서 커다란 배를 어루만지며 낮잠을 자는 명절 풍경은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할머니께서 연세를 더하시며 기력이 쇠하시니, 할머니께서는 그 비법을 부산에 함께 근처 사시는 작은 며느리에게 대부분 전수하셨고 나는 그저 작은 어머니(작은 며느리)께 그 비법을 말로만 들어서 얻을 수 있었다. 정말 훌륭한 음식이자, 우리 집안의 진정한 유산으로 삼을 만한 가치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할머니의 요리법들을 기억하고 싶다. 불고기, 도라지나물 그리고 할머니께서 단 한번 요리를 하셨던 고추장찌개까지.
할머니의 미식, 요리에 대한 그 정신과 마음, 그 맛. 그것들은 절대 잊히지 않으리라,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함께 나의 주변 사람들과 우리 이후의 세대에게 맛과 구전을 통하여 전해지면서 영원히 그 맛이 살아가기를 바라며 이 짧은 글을 마치는 바이다.
최근 소천하신 할머니께,
한 번도 내가 맛과 음식에 대한 글을 쓴다고는 한 적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할머니의 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이 글을 바친다.
2022. 10월의 어느 휴일 오후, co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