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례식 때
저는 더 없이 큰 절망과 슬픔을 겪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첫번째로 일어난 감정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퇴직하신 후 더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사실 수 있는 삶이
시작되기도 전에 큰 병을 얻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옅어지고 갑작스레 들이닥친
결국에는 처절하게 자기 자신만 남았을 외로운 싸움,
막다른 길에서 부딪힌 생의 벽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그 마음 헤아리기 벅차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첫째아이가 태어난 지 1년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감정은 첫 아이 출산하고 돌이 되기 전까지
더 자주, 더 깊이, 들여다보고 마음 나누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나는 그때도 남탓을 했습니다. 못났지요,
아이를 안고 자주 친정에 가질 못했던 이유가 독박육아 때문이라니요...
혼자 아이 돌보기를 버거워했던 남편 탓을 하는 제가 더 미워져서
이 감정은 금세 접어버렸습니다.
세번째로 일어난 감정은 걱정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고 나면, 어머니께서 혼자 살아내셔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말로 어머니를 위로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누가 당장 채우고 싶다고 채워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신 어머니께서 쉬실 수 있게 도와드렸습니다.
그것이 저와 제 동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문을 온 친구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당장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갈 대책을 구하기에 바빴다고,
그러니 너 정도면 괜찮은거다. 너와 동생은 결혼도 다 했지않느냐.
저에게 이 말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한 달 쯤 지나서 이 말을 들었더라면 그 친구의 아픔에 공감도 하고
저에게도 또 다른 긍정의 의미로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어떻게 괜찮은 일이 될 수가 있을까요.
배고픈 사람처럼 힘이 되는 말을 찾으려고 애쓰는 날이 있다면
바로 이런 슬픈 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날은 장례식을 찾아 온 누구라도,
얼굴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그런날이었습니다만
이런 힘들고 괴로운 일 앞에 선뜻 내밀 수 있는 긍정의 말이란
아무리 상대방이 듣기 좋게 말을 고르고 고른다고 해도
진심으로 와 닿지 않겠다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힘을 낼 수 있는 진짜 긍정의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이지만
그동안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던 어머니께 고생이 많았다는 말,
당분간 딸 둘이서 번갈아가며 친정을 들르자는,
당장 내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들...
어찌되었든 우리는 내일도 살아가야하기에
눈물을 걷어내고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던 것이지요.
누군가 위로라며 건넨 긍정의 말 한마디가, 오히려 상처가 된 경우가 있었나요? 긍정의 말인데, 왜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을까요?
내가 나에게 하는 긍정의 말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그 말은 나에게 정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었나요?
힘든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나의 마음이 편안해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어떤일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