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을 쪼개 쓰던 어느 날
마음이 바빴다. 오늘은 읍내에 있는 학교에 둘째를 데려다주고서 요가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랑이 야간 근무일 때면 통학 당번은 내가 된다. 하필 읍내는 안개가 가득했다. 왼손의 감각은 안개등을 찾는 데에 성공했다. 내 차가 달리고 있음을 마주 오는 차에게 알려야 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안갯속을 운전하는 건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되고 눈이 동그래지는 일이었다. 역시 적응이라는 건 사람을 편하게 한다. 안개가 꼈네,라고 한번 입으로 말하여 뇌에게 노크를 거는 정도의 주의를 주면 된다. 적어도 내가 사는 읍내 안에서는 말이다. 안갯속을 운전할 때, 이진아의 촉촉한 노래를 듣는다면 옷이 젖어드는 것 같다. 기대하던 촉촉한 노래는 라디오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흥얼거릴 만한 노래였다. 가사는 영 맞지 않아서 둘째가 못 알아듣게 대충 흥얼거렸다. 가족이라도 부끄러울 때가 있다.
둘째를 내려주고, 집으로 향한다. 안개는 해가 떠야 증발되려는지 계속 뿌옇다. 안개 속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으면 제법 멋지겠는데? 사십 대의 얼굴은 선명하게 찍고 싶지 않거든, 혼자 할 수 있는 잡생각 종합 세트는 15분이면 족하다. 그새 집이다.
씻고 나서려면 아침은 먹을 수가 없었다. 사실 지난밤에 배부르게 먹어서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씻고 요가원으로 출발한다. 요가 회원 중, 중년 회원은 요가원 가는 운전이 그렇게 즐겁다고 했다. 그분도 나처럼 남원에서 20분 떨어진 곳에 사신다. 난 오가는 시간이 번거롭고 시간이 아깝다. 그런데 근래 그 생각이 많이 줄어들었다. ‘번거롭고 시간이 아깝다’고 여긴 건, 요가가 그리 즐겁지 않았던 탓이란 걸 깨달았다. ‘재밌지도 않은 걸 굳이 차를 타고 다녀야 돼?’ 이런 속내였다. 요가 사 개월 차는 점점 즐기고 있다.
밥을 굶고 간 대가로 출석 첫 번째가 되었다. 주부 습진으로 건조한 손과 가을 타는 발바닥에 로션을 잔뜩 발라준다. 요가 매트를 꺼내어 나의 지정석에 깔아 둔다. 그 지정석은 선생님과 직접 눈이 마주치지 않으며 필요할 때만 힐끗거릴 수 있는 최적의 자리이다. 내가 늦게 오더라도 나의 자리를 탐하지 말아 주소서.
“선생님, 오늘의 차는 재스민 차인가요?”
나는 선생님이 끓여 둔 차 이름 맞히는 걸 좋아한다. 정답률이 높아서 매번 물어보고 있다. 선생님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소리 없이 웃는다. 그리고 정답을 말해주신다. 두구두구두구...
“목련차요. 호호호”
지인에게 선물 받은 목련차를 나는 선생님께 드렸다. 생강향이 난다며 아는 체를 잔뜩 했는데, 엉뚱한 답을 했다. 좀 무안해도 선생님을 웃게 했으니 됐다.
두 명의 신입 회원이 들어왔다. 그동안은 내가 제일 요가 초보였는데, 신난다. 신입 회원은 정신을 못 차리고 한 박자가 늦던지, 급하게 따라가느라 선생님 동작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저랬구나.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데 박력도 있어 보이는 중년 회원이다. 나의 촉을 세워보자면, 주민자치센터에서 공짜로 배우는 에어로빅이나 요가를 배우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공짜 요가는 요가가 아니다. 스트레칭이다. 사 개월 차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게 있다. 선생님 가라사대,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 동작은 요가가 아니라 스트레칭이라고 하셨다. 신입회원이 관두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제법 익숙하게 동작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도록. 이기적인 생각은 속으로만 생각하겠습니다만.
개운하게 몸을 늘이고서 다시 20분을 달린다. 낙엽은 이제 총총거리지 않는다. 더 가벼워진 채,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내달린다.
2020.11.17 요가 다니던 작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