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팔일(八佾) 제20장
공자가 말했다. “‘관저’는 즐겁지만 음탕하지 않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관저(關雎)'는 시경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노래를 말합니다. 그 첫 구절인 ‘관관저구(關關雎鳩)’를 줄여 제목으로 삼은 것입니다. 관관은 새가 짝짓기 할 때 다정하게 우는 의성어이고, 저구는 물수리(징경이)를 말하니 물수리 한 쌍이 사랑을 나누는 정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관저는 ‘물수리 한 쌍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란 뜻을 함축합니다.
여기서 미뤄볼 수 있듯 이 노래는 청춘남녀가 서로를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워하다가, 전전반측(輾轉反側)하며 애를 끓이다가, 서로 애무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끝내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을 자연에 빗대 노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가 시경의 첫머리에 놓였다는 것은 시경을 편찬한 공자가 사랑하는 남녀의 그리움과 설렘 그리고 기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도덕군자를 지향하는 주자를 필두로 하는 송유들은 이런 ‘남녀상열지사’를 공자가 그토록 좋아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사에 함축된 성적 암시를 최대한 희석시키면서 덕이 높은 군자와 그 좋은 짝이 될 요조숙녀 간의 ‘플라토닉 러브’를 노래한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에 불과합니다.
‘관저’는 8편 ‘태백’ 제15장에도 등장합니다. 노나라 악사장 지(摯)가 이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정경을 공자가 회상하며 그 벅찬 감동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충만하고 성대한 선율이 온 귀 가득 넘실거리는구나!(洋洋乎盈耳哉)” 사랑노래에 대한 찬사치곤 과하지 않나라고 언뜻 생각할 수 있습니다. 풍성한 선율로 긴 여운을 주는 현대 로맨스 영화의 주제곡이나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같은 노래를 떠올리면 또한 이해 못 할 바도 아닙니다.
일본 에도시대 유학자 오규 소라이는 태백 편뿐 아니라 이 장의 내용 또한 ‘관저’의 노래가사가 아니라 그 선율에 대한 언급이라고 주장합니다. 가사 내용을 봤을 때 ‘즐겁지만 음탕하지 않다(樂而不淫)’는 맞을지 몰라도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哀而不傷)’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가사를 음미해 보면 자나 깨나 상대를 그리워하는 안타까움과 잠 못 이뤄 뒤척이는 애끓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오매불망과 전전반측이란 사자성어의 어원이 ‘관저’ 임을 상기한다면 애이불상의 정조를 찾을 수 없다는 해석 또한 무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특히 그것이 짝사랑일 경우 근원적 외로움과 본원적 슬픔에 눈뜨게 된다는 시심(詩心)이 결여된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낙이불음의 음(淫)이 음탕하다는 뜻이 아니라 흘러넘치다는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즐겁되 그 즐거움의 정조가 너무 과도하게 표현되지 않았다는 해석입니다. 이런 해석에는 ‘관저’에 묘사된 남녀의 사랑이 노골적이라는 전제가 은연중에 깔려 있습니다. 육체적 사랑을 애써 외면하는 것만큼이나 색안경 끼고 확대 해석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관저’는 사랑의 기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물새의 울음과 수초의 움직임에 비유적으로 녹여냈습니다. 맹자나 주자 같은 도덕군자의 관점에 서면 노골적으로 비칠지 몰라도 공자와 같은 자연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말 그대로 음탕함으로 흐르지 않으면서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원초적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노래한 시가 '관저'인 것입니다.
아래 ‘관저(關雎)’의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실어놓으니 같이 한번 음미해 보시기를.
關關雎鳩 在河之洲(관관저구 재하지주)
꾸꾸루꾸 물수리 강가 모래톱에서 짝짓기 한창이네
窈窕淑女 君子好逑(요조숙녀 군자호구)
아리땁고 아가씨 군자의 좋은 짝이로세
參差荇菜 左右流之(참치행채 좌우유지)
들쑥날쑥 수초사이 이리저리 헤치듯
窈窕淑女 寤寐求之(요조숙녀 오매구지)
아리따운 아가씨 자나 깨나 애태우네
求之不得 寤寐思服(구지부득 오매사복)
애태워도 맺어질 길 못 찾아 자나 깨나 님 생각뿐
悠哉悠哉 輾轉反側(유재유재 전전반측)
이 밤 길고 길어 엎치락뒤치락 잠 못 이루네
參差荇菜 左右采之(참치행채 좌우채지)
들쑥날쑥 수초사이 이리저리 헤치듯
窈窕淑女 琴瑟友之(요조숙녀 금슬우지)
아리따운 아가씨 비파와 거문고 맞춰 노래하고
參差荇菜 左右芼之(참치행채 좌우모지)
들쑥날쑥 수초 이리저리 데치듯
窈窕淑女 鍾鼓樂之(요조숙녀 종고락지)
아리따운 아가씨 종과 북을 흥겹게 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