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4시 반에 일어나다. 5시에 현장을 한번 둘러보고, 5시 반에 아침식사를 하러 가야 6시 전에 교대시간을 맞출 수 있다. 교대자가 정시에 딱 뭐춰 오거나, 5분이라도 늦게 나타나는 게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늘 좀 일찍 나가는 편이다.
아침 식사는 야간 근무자들에겐 저녁식사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과하고 거북스러운 메뉴가 나올 때가 많다. 오늘은 모처럼 반가운 메뉴가 나왔다. 콩지(닭죽)이다.
22년도에 영국해상에 해상풍력 자켓기초를 설치하러 나갔을 때었다. 40시간 동안 정신줄을 놓지 않고, 긴장감 속에 작업을 지휘한 적이 있었다.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몸이 견뎌주질 못했다. 감기에 오한이 겹치며 탈진상태로 메딕에게 찾아 간 일이 있었다. 미련한 짓이었다. Seagreen 풍력 현장. 그래도 그 현장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설치된 가장 큰 고정식 자켓 해상풍력 기초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부질없는 위안을 삼아 본다.
힘도 없고 입맛도 없었던 그때 유일하게 속에서 받아준 음식이 콩지였다.
곱게 불어 녹아 있는 듯한 찹쌀은 얇게 발라진 닭가슴살과 함께 걸쭉한 국물을 내고, 푹 삶아진 통마늘은 사르르 녹아 맛에 풍미를 더한다. 거기에 가끔씩 씹히는 생강의 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뜨거운 닭죽 한 그릇에 삶은 달걀 2개를 먹으면 아침식사로 그만이다.
어릴 적 음식을 먹다가 행여나 마늘이나 생각이라도 살짝 씹히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못 먹겠다고 뱉어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그 맛과 향이 어찌 그리 좋은지.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싫었던 것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 같다. 싫어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그냥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만다. 나이가 드는 것이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아침에도 콩지가 나왔으면 좋겠다. - 2024.10 북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