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만큼 베리에이션이 다양한 음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자기 엄마의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다는 것처럼 미역국도 의외로 집집마다 다른 레시피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집에서는 기본적으로는 소고기를 넣어서 끓이지만 어렸을 때 할머니는 항상 찹쌀 반죽으로 빚은 새알심을 넣은 미역국을 끓이셨어요. 찹쌀 새알심을 넣은 미역국은 제법 묵직하고 달콤한 맛입니다. 찹쌀의 전분이 국물에 풀어져서 그렇겠지요. 그렇게 끓인 미역국을 한 그릇 먹으면 밥을 말지 않아도 꽤 든든한 느낌이에요.
작년에 새로운 미역국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다른 재료들을 넣고 미역국을 끓여 봤어요. 일단 홍합을 넣은 미역국도 맛있어요. 마른 홍합과 생 홍합을 같이 넣으면 마른 홍합에서 감칠맛이 많이 나와서 국물이 아주 시원하더군요. 미역이 바다에서 왔으니 같은 바다 출신들이랑은 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조개 종류랑도 조합이 좋고, 전복도 잘 어울려요. 전복 미역국은 마치 곰국 끊인 것 마냥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더라고요. 지난겨울에 신선한 굴을 넣고 끓인 굴 미역국도 시원하고 맛있었어요. 굴은 비린내가 나니까 식초에 살짝 무쳐두었다 미역국에 넣고 호르르 끓여서 먹으면 굴도 탱글하고 국물도 맑아서 맛있어요. 또 조개관자를 넣고 끓여 보기도 했었는데, 관자가 제법 질겨서 잘게 잘게 썰어주어야 했답니다. 생새우나 마른 새우를 넣고 미역국을 끓여도 깊은 국물 맛이 나는데, 비릴 수도 있어서 다진 마늘을 좀 넣어주어야 돼요.
저는 시도해본 적 없지만 가끔 갈치 같은 흰 살 생선을 토막 내어 미역국에 넣고 끓이는 집도 있더라고요. 음... 오징어를 넣어서 끓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오징어 미역국은 어떨까요? 방금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멸치 육수나 북어를 넣고 끓이는 미역국도 있네요.
아, 그러고 보니 독일에 있을 때 마땅히 넣을 재료가 없어서 미역국에 멸치육수를 넣은 적이 있어요. 러시아에서 온 친구가 제가 먹는 미역국을 참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검고 초록빛 나는 수프니까 그 친구 눈에는 핼러윈 파티 음식같이 보였나 봐요.
저희 어머니는 가끔씩 무를 나박나박 썰어 넣고 미역국을 끓이세요. 여기에 들깨가루를 한 스푼 넣어주면 고소하고 시원한 들깨 무 미역국이 돼요. 이 국은 소화가 참 잘 되더라고요. 어머니께서 미역국을 끓이실 때 비법이 하나 있는데 미역을 참기름에 볶은 다음 국간장을 넣고 냄비 뚜껑을 덮어서 약한 불에 졸여줍니다. 그럼 미역에서 물도 나오고 간장의 간이 잘 밴다고 하시네요.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은 미역국에 닭가슴살을 넣기도 하신다고 하고 두부만 넣고 끓인다는 사람도 있으니 미역국에 넣을 수 있는 재료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의외로 아무것도 없이 미역만 넣고 끓이는 집은 별로 없을 것 같네요. 그래서 제가 오늘 아무것도 넣지 않은 미역국을 끓여 봤습니다. 지난겨울 기장에서 올라온 마른미역으로요.
우선 미역을 불린 다음 물에 살살 헹궈주세요. 미역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은 양을 불리면 만백성을 먹일 만큼 양이 불어나니, 항상 '에게, 요걸로 국이 돼?'정도의 양만 불리면 딱 적당합니다.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주고 국간장 한 스푼, 액젓 한 스푼에 요리 에센스를 약간 넣고 뚜껑을 덮어 줍니다. 어머니께 배운 비법으로 미역에 간이 잘 배게 해주는 거죠.
여기에 맹물을 넣지 않고 쌀뜨물을 넣어줬어요. 쌀뜨물을 찌개에 넣기도 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전 알뜰한 성격이다 보니 쌀 씻을 때마다 나오는 쌀뜨물이 아깝기도 하고요. 이때 한꺼번에 확 붓지 않고 조금 넣고 끓여주고, 팔팔 끓으면 또 조금 물을 붓고 끓여주는 식으로 국을 끓입니다. 물이 들어가면 온도가 내려가니 끓었다 식었다를 반복하면서 여러 번 끓인 국의 맛이 납니다. 자고로 국과 찌개는 끓일수록 진국이 되는 거 아시죠? 시간이 부족할 때는 이런 팁을 이용하는 것도 좋아요.
그렇게 끓여준 미역국은 미역 맛이 고소하고 깔끔한 국물 맛이 납니다. 이런 국을 보면 예전에 대학교 강의에서 들었던 건축가 미스반 데어 로에가 한 말이 생각나요. Less is More라고 하는 말엔 단순한 것일수록 더 아름답다는 그의 미니멀한 취향이 드러납니다. 이것저것 풍성하게 넣은 국도 좋지만 이렇게 심플하게 끓인 국도 참 맛이 좋아요. 아버지께선 대만족 하시며 앞으로 미역국은 이렇게만 끓이라고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