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L의 사랑, 일곱번째
7. 마을 하나가 아이를 키우듯이...
장사하는 사람들끼리는 나름의 애환을 이해한다. 심보가 나쁜 손님을 받고 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장사가 잘 되면 몸이 고단하고, 장사가 안되면 마음이 심란하고, 좋은 물건을 받으려고 도매상과 기싸움을 하기도 하고, 벌고 벌어도 집에 있는 아이들 입에 붙일 것도 빠듯한 상황은 다들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다. 같은 전쟁터에 선 전우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시장에서 상인들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인지 까지는 몰라도, 어느 집 애가 공부를 제일 잘하고 효자 효녀인지는 다 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P와 P의 형은 나름 시장에서 유명인사였다. 그 시절 대학 가는 아이들도 많지 않은 데다 장남, 차남 둘 다 국립대에 진학했다는 것 만으로 고생한 어머니에 대한 효도는 다 한 것이다. 남편 잃고 삼 남매를 혼자 키우는 채소 가게 사장님은 아들들만 보면 허리가 펴지고, 어깨가 넓어졌다.
가게에서 손님을 기다리다가도 잠깐 짬이 나면 시장 골목 끝에 있는 집에 가서 반찬을 해놓고 왔다. 맞은편 과일가게나 옆에 나란히 붙은 생선가게에 잠깐 봐 달라고 맡겨 놓으면 사장이 없어도 알아서 돈을 받고 물건을 팔아주곤 했다. 매일 보는 사이들이니 갈치 한 마리가 얼만지, 마늘 한 광주리가 얼만지 정도는 아는 것이다.
정육점에서 제일 저렴한 다진 고기 한 줌을 사 와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는 건어물집 맞은편 두부가게에서 방금 만든 따끈한 두부를 한모 받아왔다. 두부를 달랑달랑 들고 집에 가서 부엌 문을 열어보니 아침에 먹고 나간 그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냄비 바닥에 다진 고기를 탈탈 털어 깔고, 그 위에 숭덩숭덩 두부를 잘라 얹고, 다진 마늘 한 숟갈, 설탕 한 숟갈, 간장 한 바퀴 두르고, 물을 쪼르륵 붓고는 바닥에서 짜글짜글 소리가 날 때까지 끓였다. 냄비가 끓는 동안 설거지도 하고 틈틈이 바닥도 닦으면서. 다 됐다 싶을 때쯤 대파를 어슷 썰어 두부 위에 얹어 놓고 깨를 솔솔 뿌려주면 엄마표 두부조림 완성이다. 은근히 입맛이 까다로운 P도 이 두부조림이면 밥을 두 공기씩 먹고는 했다. 요즘 유난히 어머니 마음을 쓰이게 하는 미운 자식을 위한 떡 하나인 셈이다.
때마침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렸다. 이 집은 원래 작은 구멍가게였던 건물을 대충 개조해 놓은 탓에 소리가 많이 나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해서 누가 집에 오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고?
내다.
내다 카면 누군지 아노?
무뚝뚝한 P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엄마 얼굴을 흘끔 봤다. 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들이다.
두부조림이야?
얼른 씻고 밥 무라. 오늘은 웬 일로 술도 안 먹고 일찍 왔노?
또 P는 말도 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 눔 자식이 엄마 말에 대답도 안 하고...' 괘씸해도 어쩌겠는가. 핼쑥해 보이는 얼굴에 먼저 마음이 쓰이는 게 어머니인 것을. 자식이 아니라 상전을 모시고 사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나온 P는 밥을 푸더니 상에 두부조림만 놓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김치도 안 꺼내 묵나?
귀찮은데 그냥 먹지 뭐. 두부조림 맛있네.
맛있다는 말에 또 사르르 마음이 풀린다. 다시 가게에 나가 보려고 신발을 꿰어 신는데 얼굴 보면 말하려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우리 아드님의 여자 친구.
니 그 아가씨 있제? 이름이 L이라 카든데.
엄마가 걔를 어떻게 알아?
와, 그... 어제 니 가방 갖다 준 친구 와가지고, 니 자꾸 술 먹고 돌아다닌다고 카니께 니 갸랑 사귀다가 차였다 카대? 니는 여자 친구 만나면 애미한테 인사도 시키 주고 해야제. 와 말도 안하노?
차이긴 뭐, 아 신경 쓰지 마. 그놈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다녀.
엄마가 아까 전화했다.
뭐?
먹던 두부가 콧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지금 뭐라고?
니 그래 자꾸 술 먹고 가방 이자뿌고 그러면 엄마가 신경 쓰이서. 그냥 한 번만 더 만나 보라꼬....
아! 엄마는 진짜!
아이고. 이놈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놀라서 심장이 벌렁벌렁 댄다. 이놈아 애미 심장 떨어지긋다.
P는 어머니의 말이 하나도 안 들렸다. '아니 쪽팔리게 진짜. 아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래? 두부조림이고 뭐고...' 속에서 불길이 확 치솟는 것 같다. P는 먹던 상을 치워 놓고 가방을 챙겼다.
니 밥묵다 말고 어데가노?
아 몰라. 됐어.
밥 안 묵어?
씩씩 거리면서 집을 뛰쳐나가는데 두부가게 아저씨가 한마디, 기름집 이모가 한마디, 생선가게 아줌마가 한마디,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한다. '너 준다고 방금 엄마가 두부 사갔는데?' '아까 들어가더니 왜 또 나가?' '어유 대학 다니더니 얼굴이 반쪽이 됐네? 요새 술 많이 먹어서 그러지?' '일찍 일찍 다녀 인마!'
P는 대꾸도 없이 꾸벅꾸벅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어린애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더니, P가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도 시장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아빠 없이 주눅 든 15살짜리로 보이는 모양이다.
오래간만에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 했는데 결국 뛰쳐나와서 간 곳이 학교 동아리 방이다. 괜히 버스비만 날렸네. 어제 마신 술도 덜 깼는데 어머니한테 성질부리고 나온 것도 마음이 쓰인다. 거기다 여자 친구에게 차였다는 걸 들킨 쪽팔림은 추가. 이런 건 좀 알고도 모른 척해줬으면 좋겠다. 동아리 방에 앉아 눈이나 좀 붙일까 하는 참에 후배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군기가 바짝 든 후배들이 우물쭈물하는데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이 자식들 숫기가 없네.
다음 달 첫째 주에 고등학교 연합 등산 대회 있는데 마지막 날에 우리도 가는 거 알지? 가서 후배들 보고 다 같이 뒤풀이 참석한다고 애들한테 전해라. 빠지는 놈들은 나한테 따로 와서 보고하라고 하고.
P는 후배들 앞에선 꽤 폼을 잡는 선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생 때 등산대회에서 꽤 두각을 나타내서 대학교 다니던 선배들과 미리 안면을 트기도 했고, 그 덕에 대학교에 와선 1학년 때부터 산악회 회장을 맡아 왔기 때문이었다. P가 고등학생 때 등산대회에 참가하면 2박 3일 동안 등산도 하면서 텐트 치고 야영도 하고, 마지막 날은 10kg 장비를 지고 16km를 달리듯이 걸어야 했다. 4인 1조로 뛰면서 한 명씩 뒤쳐지면 서로 장비를 들어주기도 하고 앞에서 끌어 주기도 하면서 1등으로 들어왔다.
그런 땀 흘린 기억들은 강한 유대감으로 남아서 동기들 간,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으로 이어졌다. 물론 뒤풀이 때 몰래 한잔씩 하는 술도 큰 몫을 했지만. 가끔 겨울 산행을 하면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위스키 한잔씩을 주곤 했다. 몸을 데운다는 명목으로 미리미리 술을 가르친 셈이다. 그 때문에 산악회 사람들은 다들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다. 아니,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만 산악회에 남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후배들에게 전달 사항을 전하고 동아리 방에서 나오다가, 복도에서 마주친 과 동기들과 모여서 술을 마시러 갔다. '요 앞에 생긴 포장마차에 돼지 껍데기가 맛있다던데.' '난 그거 뭔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P에게는 친구들의 말이 멀게 들렸다. '일정 전달했고, 선배들 한테 전화 돌렸고, 모아놓은 회비에서 회식비 따로 빼뒀고... 근데 뭐가 이렇게 찝찝하지?'
P는 할 일이 있으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많은 것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L도 고등학생 때 산악회였고, 본인이 1등 한 등산대회에 함께 참여했으며, 다음 달에 있을 등산대회에 자신과 똑같이 선배 자격으로 올 거라는 걸 생각 못 하는 것이다. 둘은 좋든 싫든, 편하든 어색하든 어차피 또 만나게 될 상황이었다. 폭풍전야와 같은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