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 겨울의 문장들
“군밤”
소설(小雪)이 코 앞으로 다가섰으니
머지않아 삭풍도 나뭇가지 끝에서
선무당처럼 춤을 추고
떡가루를 빻아 놓은 듯 함박눈도 내리겠지......
구운 밤!
눈 내리는 겨울밤 화롯불에 구워 먹는 군밤은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꿀맛이다.
겨울밤 군것질거리로 군밤만 한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겨울밤 군밤 생각에 입가득 침이 고여서
밤을 사러 갔다.
그런데 지난여름 긴 장마 탓인지 밤 값이 금값이다.
그래도 밤 한 말을 사 들고 집을 나서는데
젊은 시절, 첫눈 내리던 날 밤 친구네 사랑방에서
화롯불에 알밤을 구워 먹으려다 화로를 엎었던
일이 떠오른다.
하마터면 집에 불이 날 뻔했던,
그래서 군밤은 맛도 못 봤던 웃지 못할 옛일.
나는 오늘도 그 시절로 내 마음을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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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아버지는 ‘
‘소설’이 다가온다고 하셨다.
소설, 겨울이 문턱을 넘는 시간.
그 시절 사랑방에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앉아
화롯불에 군밤을 굽던 이야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게도 아버지에게도
따뜻한 추억이 되었다.
군밤, 그 단어 하나만으로 겨울의 냄새가 난다.
군밤을 굽다 뒤집은 화로, 아슬아슬했던 기억.
그러나 그 기억조차 따뜻한 이유는,
그때의 사람과 웃음, 계절 때문 아닐까.
아버지의 글을 읽으면 음식이
단지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기억을 데우고 마음을 덥히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