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남
“네 장모님, 지금 ㅇㅇ(아내 이름) 만났어요. 오늘 회사에서 상 받았대서 축하 겸 같이 저녁 어떠세요?”
아내와 남자가 뒤를 돌아봤고 내 얼굴을 본 아내의 눈이 똥그래졌다.
“어..? 뭐야?”
“제가 이따 전화 드릴게요.”
실제로는 장모님한테 전화하지 않았었고 이렇게 해야 아내가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최근 아내가 이렇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본다.
“어떻게 왔어?”
“나와.”
아내는 상간남을 잠깐 쳐다봤고 나 역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은 있었으나 어떠한 액션도 없었다. 방금 쳐다본 것 외에는 나는 아예 상간남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하자. 내 딴에는 그게 더 상대를 당황스럽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뭔 눈치를 봐? 나와.”
아내는 결국 내쪽으로 왔고 우리는 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뒤로 상간남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떻게 왔어?”
“어떻게 안게 중요 해? 일단 가자.”
곧 차가 보였고 형은 테라스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 문 좀 열어줘.”
“아니 이게 우리 차도 아니고.. ㅇㅇ오빠는(동기 형) 여기 어떻게 온 거야?”
형이 리모컨으로 차를 열어주었고 아내를 뒷자리에 태웠다. 갑자기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만날게. 잘못했어.”
이제서야? 이미 모든 믿음을, 아니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중에도 한 줌이라도 잡으려던 내 믿음을 이렇게 산산조각 내놓고 이제서야? 지금 하는 말은 진심이니 아니면 당황해서 뱉은 말이니.
그 때 아내의 휴대폰이 울렸다. 상간남의 전화다. 휴대폰을 뺏어서 내가 받았고 받자마자 상간남이 말을 뱉었다.
“일단은 제가 보고 있거든요?”
“보고 있어요?”
고개를 돌리자 저 먼치에 상간남이 서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
내가 아니라 상간남이 한 말이다. 잠깐 옆으로 형의 모습이 보였다. 형은 상황을 눈치챘는지 날 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 형.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멈춰.
“당당하시네? 그러시죠.”
전화를 아내에게 넘기고 상간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상간남도 내게 다가왔다. 둘의 사이는 점점 좁아졌고 추운 날씨임에도 한 발 한 발 걸어갈 때마다 안에서 용암이 끓어올라 입고있는 정장 상의를 벗고 싶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둘이 짰나 싶을 정도로 첫마디가 똑같네.
“어떻게 알았는 지가 중요해요?”
“중요하죠.”
“하하 굉장히 교양 있으시네.”
“감사합니다.”
비꼰 말에 비꼬아 답이 온다. 아까는 의도적으로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바로 앞에 있으니눈에 들어온다. 젠장… 차라리 잘생기길 기도했다. 아예 의지도 꺾이게. 앞의 남자는 내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기껏 날 버리고 외도한 게 이런 자식이라니.. 그게 더 속이 쓰렸다.
“저는 당신과 할 말 없구요. 제가 당신 집 주소를 몰라요. 그래서 소장을 집으로 못 보내니 회사에서 받으실 겁니다. 오늘 외국 가신다니까, 누군가는 받으시겠죠?”
상대는 답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일단은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알아볼 겁니다.”
“그건 소장 받고 변호사 선임하시면 알게 될 거니까 걱정마시죠. 그리구요?”
“전 더 얘기할 거는 없고, ㅇㅇ이랑(아내) 얘기 좀 할게요.”
이게 뭔 말이야.
”무슨 소리시죠?”
“왜요. 회사 적으로 만나서 얘기 좀 하려는 건데,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 뱉고 있는 말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저는 어차피 나왔다가 얘기하고 나서 여기서 잘 거니까, 저는. 왜, 여기서 같이 잔다는 거, 이런 거 생각하신 거 아니시죠?”
똑 같은 년놈들끼리 만났구나.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지금 이 상황에 현기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잡으면 왠지 지는 것 같아 참고 최대한 가소롭다는 웃음을 지었다. 오늘 상간남 따위는 신경도 안쓴다는 스탠스로 가려고 왔기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한심하듯이 바라보고 있을 때 아내가 차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가기 전에 한 소리는 해주고 싶었다.
“참 남의 가정 망가뜨리기 쉽네요?”
내 말에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그만 가자.”
상간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쪽 스스로를 돌아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돌아봐? 내가 돌아봐야 한다고? 대체 무슨 소린데 이건?
“나 안 만날 게. 이제 그만 할 게. 그만 할 게.”
아내는 상간남을 아예 보지도 않으며 말했다.
누가 자꾸 머리를 망치로 내려 찍는 듯이 두통이 심해졌다.
“저 남자는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고, 일단 차에 타자.”
아내와 나는 상간남을 두고 차로 들어갔고 이윽고 형이 와서 운전석에 앉았다.
“형 미안한데 나가서 택시 다니는 좀 큰 길에 내려줘.”
형을 보내고 바로 뒤에 오는 택시를 잡아 탔다.
“어디로 갈 건데?”
“어디로 모실까요?”
아내와 기사님이 동시에 물어봤다. 뻔하지 어디겠어.
난 기사님께 처갓집 주소를 불러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