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작가 Feb 20. 2024

내 안의 낯선 그림자를 만나게 되는 책

그림책-아리에트와 그림자들

옛날 옛날에 사자가 살았는데요, 어느 날 사자가 죽고 그림자만 홀로 남겨집니다.

사자의 그림자는 길을 떠났고 한참을 걷다가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아리에트를 봅니다.

사자의 그림자는 아리에트의 그림자가 되기로 합니다.

물웅덩이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아리에트에게 뛰어듭니다.

물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며 아리에트는 뭔가 힘이 솟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아리에트는 학교에서 정말 재미있게 놀았고 수업 시간에 나서서 말하는 일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하루를 보낸 아리에트가 집에 돌아갈 때, 사자의 그림자도 함께였습니다. 다음날도 아리에트와 사자의 그림자는 맹수처럼 휘젓고 놀고 이빨을 드러내며 친구들에게 겁을 주기도 합니다. 수업 시간에 으르렁거리며 울부짖다가 야단맞기도 합니다. 신나게 놀 때는 사자의 그림자와 함께였지만 야단맞는 건 아리에트 혼자였죠.


아리에트는 자신과 닮은 데가 별로 없는 사자의 그림자를 보고 잊고 있던 자신과 닮은 그림자를 찾아다닙니다. 온 사방으로 예전의 그림자를 찾아다니다 아주 작은 거울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다시 만납니다. 이제 아리에트에게는 두 개의 그림자가 생깁니다. 아리에트와 그림자들은 셋이 함께 사는 방법을 하나씩 깨쳐가며 엄청 재미있게 놀게 됩니다.


아리에트에게 낯선 사자의 그림자는 떠나고 원래 아리에트의 그림자만 남을 줄 알았는데 사자의 그림자와 셋이 잘 산다는 뜻밖의 유쾌한 결말이라니요. 왠지 해피엔딩 느낌이어서 웃음이 납니다. 게다가 그림의 색감은 어찌나 화려한지 강렬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자의 그림자가 뿜어내는 이글이글거리는 에너지가 보입니다


사자의 그림자를 만나기 전, 아리에트는 수업시간에 나서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고,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도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사자의 그림자가 아리에트에게 오고 나서 아리에트는 서둘러 학교에 가고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친구들과 재미있게 놉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과 닮은 예전의 그림자를 찾게 되는데요, 큰 거울을 통해 보이는 크고 에너지 넘치는 사자의 그림자와 달리 예전의 그림자는 침대 아래의 아주 작은 거울에서 만나게 됩니다.

 낯선 그림자가 함께 있어 겉으로 크게 보일 때도 있지만

 나와 닮은 익숙한 그림자도 작게 내 안에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문득, 사람들의 똑같은 머리색깔이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염색을 한다는 건 밝은 갈색, 금발 느낌의 탈색 정도였기 때문에 초록색으로 염색을 한다는 건 일반인들 중에는 흔치 않은 경우였죠.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머리 색깔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 사람 머리 색깔 봐, 와~ 초록색으로 염색한 사람 처음 봐.”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초록색 머리 색깔이 독특하게 보였던 걸까요? 지나가던 어떤 사람은 외국 사람인지 물어본 적도 있었고, 길에서 처음 본 사람도 “직업이 디자이너인가요?” 하고 말을 걸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초록색 머리를 하고 나서부터 이전의 나와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낯선 에너지였습니다.

짧은 초록색 머리를 하고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를 입고 클럽에 가곤 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엄청난 볼륨과 리듬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춤추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동호회 활동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습니다.

그때 만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초록머리’였고 그 이후의 닉네임도 계속 초록머리입니다.


여전히 조용하게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신나는 음악도 좋아합니다.

차분한 편이지만 아리에트처럼 사자의 흥이 넘칠 때도 있습니다.

아리에트처럼 몇 개의 그림자가 같이 살고 있는 걸까요?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찾는 질문들, 나를 들여다보며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고 진짜 ‘나’에 대해 잘 알고 싶어지나 봅니다.  


요즘 MBTI 열풍이라 할 만큼 성격 유형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신과 타인의 유형을 묻고 성향을 파악하고 판단합니다. 어떤 부분은 맞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맞지 않는 게 있는데도 몇 가지 만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여러 가지 그림자가 있고 크기와 종류도 다른데 말이죠.


그림자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나와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낯선 그림자도 있습니다.

내 안의 낯선 그림자는 전환점이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익숙한 나의 그림자와, 낯선 그림자가 함께 있기에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두렵지만, 같은 이유로 인생이 더 재미있어지는 게 아닐까요?

평소의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성장하기도 하니까요.


나와 닮은 그림자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나와 닮지 않은, 낯선 그림자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전 04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기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