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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21. 2020

사랑을 쟁취했다고
그 사람까지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당신의 사랑은 불안함을 깔고 앉아 있나요?

  

남자 친구와 함께 미용실에 들렀던 적이 있다. 일부러 시간을 맞춘 건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머리를 손봐야 하는 날이 비슷해졌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남자 친구는 다니던 미용실이 이전하는 바람에 새로운 미용실을 찾고 있었다. 당시 나는 자주 가는 미용실의 담당 선생님에게 꽤나 만족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내가 다니는 미용실을 추천했다. 그는 좋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미용실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소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왜 그런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미용실, 옷 가게, 카페, 베이커리 등 여초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억울한 경험담 말이다. 온라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저런 일이 실생활에서 정말 일어나고 있단 말이야?’라는 의심부터 들 만큼 상식 밖의 이야기에 놀랄 때가 많다. 대부분은 ‘저는 그저 제 할 일만 했을 뿐인데, 여자 친구가 왜 내 남자 친구를 빤히 뚫어져라 쳐다보느냐며 욕을 하네요.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그냥 죄송하다고만 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고 화가 나네요.’ 같은 식의 이야기다. 하다 못해 서비스업 종사자의 친절에까지 꼬투리를 잡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갑질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다시 나의 경험담으로 돌아가면, 그날 미용실에 도착한 후 우리는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시술을 받았다. 담당 선생님 한 분과 그분의 보조 한 분이 시술을 도와주셨고 우리는 시술 도중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간혹 한 마디씩 간단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여느 미용실에서 그러하듯이 긴 시술 시간 동안 머리를 만져주시는 분들과 이것저것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남자 친구는 일이 있어 시술이 끝나자마자 먼저 갔고 나는 한 시간 정도 더 미용실에 머물렀다. 나까지 모든 시술을 마친 후 두 명 분의 비용을 결제하려고 할 때, 보조 선생님이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어머, 두 분이 커플이셨어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제가 남자 친구분 지루하실까 봐 일부러 말도 많이 걸고 이것저것 여쭤봤었는데… 괜찮으셨을까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나는 이 상황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그녀에게 직업적으로 요구되는 것을 프로페셔널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2~3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있어야 하는 손님이 지루할까 봐 대화를 주도하면서 진심 어린 눈 맞춤을 하고, 성실하게 머리를 감겨주고 스타일을 정돈해준 것이 여자 친구의 기분을 나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할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보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벌벌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투철한 직업정신으로부터 발휘된 친절에 대해 갑질을 일삼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길래 저럴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고 미용실을 나오는 길에, 늘 해오던 생각을 더욱 확고히 했다. 어떤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회생활, 인간관계, 사생활까지 내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는 것. 나는 그 사람과 ‘사랑’이라는 하나의 관계에 있어서만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될 뿐이지, 그 외의 모든 것들에 있어서는 나 또한 그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인들 중 한 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내게 쿨한 척한다고, 그러다가 배신당하고 피눈물 흘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며 충고하기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반문하겠다. 상대방의 자유를 빼앗아 쟁취한 사랑 앞에서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 자위하며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진정한 사랑은 상대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상황까지 존중할 수 있어야 가능해지는 게 아니냐고. 그렇기에 나는 “괜찮으셨을까요?”라고 묻는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물론이죠. 저는 전. 혀. 상관없어요. 오히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좋았는 걸요? 또 올게요!”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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