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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15. 2019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

다들 주변에 이런 분 안 계시지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


 사전적 의미로는 내가 먼저 예의를 지키며 고운 말을 사용해야 상대방도 나에게 친절을 베푼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속담을 잘 살펴보면 항상 고운 말도 고운 행동도 내가 먼저 해야 남도 그렇게 한다라고 가르친다.

   그냥 가끔 자의적 판단으로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고울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먼저 필요에 의해서 먼저 부탁하거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절대적인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가끔 이 속담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먼저 이야길 꺼낸 상대방이  나에게 고운 말을 쓰지 않았을 때는 내가 뱉는 말도 거친 말, 나쁜 말이 되어도 된다는 의미 부여가 가능한가 고민된다.


   난 아파트에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큰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이웃으로 산다는 건 많은걸 배려하고,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듯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못내 인사를 받는가 하면, 그조차도 불편한 내색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도 물으시는 감사한 분들도 더러 있다. 가벼운 인사에도 서로 불편해하는 모습에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고, 이젠 스스로조차 인사에 인색해져 가는 걸 느낀다.

  

   거절당하고, 불편해할까 봐.....


  우리 아래층의 어떤 분은 베란다에서 흡연을 하신다. 겨울을 제외하고 베란다 창문을 대부분 열고 사는 우리 가족들은 예고치 않은 간접흡연의 고통에 꽤나 시달려왔다. 집사람이 몇 번을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부탁도 해봤지만 단지 얘기한 그때뿐 아저씨의 베란다 일탈은 계속되었고, 우연히 아래층 아저씨와 마주친 일이 있었다.  

  집사람은 아래층 아저씨의 흡연에 대한 불만을 투덜대던 나를 불안해하였던 터라 마주친 아저씨와 이야기하려는 날 보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말문을 여는 날 보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조심스러운 경고를 했다.

경고에 움찔한 나는 집사람의 의도대로 적어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흡연을 베란다에서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했으나  돌아온 아저씨의 말 한마디는 정말 가관이었다.


"에이, 우리 집서 내가 피우는데. 그리고 난 베란다 맨 오른쪽에서만 피니까 맨 오른쪽 베란다 창문만 안 열면 괜찮을 거요."


   나는 잠시 이 아저씨가 한 말이 한국말인지, 외계어인지 헷갈렸다. 정말 아주 짧은 찰나에 순간적으로 나쁜 말을 뱉으려 했지만, 집사람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배려란 걸 아예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분이라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지만 너무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혀서 그냥 그 자릴 피했다.  단순히 오가는 말이 곱다고 예의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 말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된다. 오늘도 내가 하는 말속에 그런 따뜻함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는지 상기해본다. 가는 말, 오는 말의 순서가 중요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출근길 아침이다.


  참고로 그 이후 아파트 관리실에서 '실내 흡연 금지' 홍보를 대대적(?)으로 한 덕에 베란다 흡연은 많이 줄어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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