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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11. 2021

한 직장을 십 년 다녔더니 이런 일도 생긴다

한 후배의 퇴사를 두 번이나 보면서 든 생각

얼마 전 다른 부서에 볼일이 있어서 해당 부서에 갔다가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후배를 우연히 마주쳤다. 후배는 날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하먼저 말을 꺼냈다.


 "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 오늘 퇴사해요"

 "이렇게 갑자기? 이직하는 거야?

 "네, 안 그래도 인사드리러 찾아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뵙네요"

 "축하할 일인 거지? 그나저나 난 최 부장 퇴사를 여기서 두 번이나 지켜보네. 내가 이 회사를 오래 다니긴 했나 봐"


내가 지금 회사로 이직한 건 10년 전이다. 10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부서를 셋업 하던 시기여서 난 부서 없이 두 달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냥 책과 씨름하고, 테스트 장비를 만지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기엔 스스로가 갑갑해서 견디질 못하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 옆 부서의 팀장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옆 부서의 엔지니어들을 따라 고객사를 함께 다녔다. 그렇게 함께 다녔던 몇 명의 엔지니어 중에 한 명이 오늘 퇴사 인사를 내게  했던 최부장이었다. 난 그와 고객사 몇 군데를 함께 다니며 당시 다른 직원들에 비해 조금은 가까워졌었다.


10년 전 내가 처음 그 후배를 만났을 때만 해도 후배는 대리 직급이었다. 하지만 이젠 올해 부장 진급을 하면서 직급도 나와 같아졌다. 아마 후배는 차장 직급으로 자신과 함께 고객사에 지원 나가던 내가 꽤나 불편했을 테고, 넘쳐나는 내 호기심의 희생양이었을 때였다. 그렇게 여러 번 업무를 함께하며 우린 아주 조금은 가까워졌다. 하지만 곧 새로운 부서 세팅이 끝나고 팀장 발령을 받고선 더 이상 후배와 함께 고객사를 다니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후배는 회사를 떠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무렵부터는 난 후배를 잊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 난 다른 부서로 직무 이동을 했고, 바뀐 직무에 적응이 되었을 때쯤 회사를 떠났던 그 후배가 다시 회사에 재입사했다. 그렇게 그 후배는 몇 년을 다니다 오늘 또 한 번 퇴사를 하게 됐다. 후배가 퇴사, 재입사, 재 퇴사를 거듭하는 시간 동안 난 지금의 직장에서 어느덧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긴 시간이라는 생각 속에 한 곳에 정체되어 있는 나를 한 번 돌아봤다. 후배의 이직과 퇴사라는 변화를 거듭하는 시간들이 나에게는 한 곳에 머무른 시간이었음을 알기에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는 말뿐이었던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직장 내에서였지만 난 후배가 입사, 퇴사를 거듭하는 그 시간 동안 내게도 여러 번의 부서 이동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희망했던, 희망하지 않았던 변화의 흐름에 나도 어쩌면 정체되어 있지는 않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감당이 안 되는 변화도 여러 차례 맞았었다. 다만 그냥 감내하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직장을 다니며 지금도 기억나는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떠오른다. 입사하고 몇 년이 흘렀을 때쯤 회사에서 한 분의 정년퇴직 행사를 해 준 적이 있었다. 같은 회사가 아닌 그룹 계열사 직원이었지만 그룹 내 IT 관련 계열사들끼리 함께 행사를 하던 때라 계열사 직원들도 모두 함께 자리를 했다.


정년퇴직하는 분의 가족들을 함께 불러 자녀들의 감사 편지 낭독시간, 사장님의 감사패 전달 등 내게는 너무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당시 듣기로는 그룹 IT 계열사 1호 정년 퇴직자여서 회사 차원에서도 의미가 깊어 기념행사를 한다는 얘길 들었다. 그때 그분의 나이가 50대 중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내게는 50대 중반 나이에 20년을 넘게 다닌 회사를 퇴사하면 어떤 기분일까, 퇴사하면 이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등의 생각으로 부러움보다는 걱정스러움, 아쉬움 등의 감정이 교차했었다.


그분의 정년퇴직식 이후 여러 해가 지났다. 요즘 난 회사와 관리자에 대한 불만으로 항상 퇴사의 기로에 갈등하고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정년퇴직을 하신 분처럼 한 회사에서 퇴사하고 싶은 바람도 조금 있다. 나이가 들면 생각도 많아진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남자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어떤 날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 생활을 오랫동안 안주하길 원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조금 더 멀리, 높은 곳을 꿈꾸기도 한다.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을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난 아직 하늘의 명이 아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조차 헷갈려한다. 누군가가 바라는 길보다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싶다. 누군가에게 근사해 보이는 직업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삶엔 정답은 없다. 꾸준히 답을 찾고, 깨달으면서, 때로는 뒤늦게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게 삶이고, 인생이다. 앞으로 내가 정년까지 한 회사를 다니게 될지, 아니면 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그건 시간이 더 지나고, 앞으로를 살아가면서 알게 될 답이지 싶다. 인생에 대해 누군가가 알려줄 모범 답안은 없는 듯하다. 내 삶에서 정답은 나만이 찾을 수 있으니까.



오늘 난 재직 중인 회사에서 한 후배의 한 번의 재입사, 두 번의 퇴사를 지켜봤다. 후배의 두 번의 퇴사가 가져온 여러 가지 생각이 어느새 삶에 대한 고민에까지 흘러갔다. 그런 걸 보니 내게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스쳐간 시간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을 다녔으니 당연히 스토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오분의 일, 이십 퍼센트가 넘는 지분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마냥 밀쳐낼 수는 없는 시간이다. 지랄 맞은 시간이라고 스스로 욕해도 내 삶의 한 페이지였음을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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