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도 안 보는 여자~~

by 예쁜손

나의 우울증 역사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사십 대 초반부터니 십 년을 넘긴 시간 동안, 어떨 때는 잔잔하게 또 어떨 때는 태풍의 눈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예전에 자궁내막암으로 치료받으면서 읽은 책이 있다. 암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할수록 암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말~~ 그런 이치라면 난 우울증을 이제는 오래된 벗처럼 여기고 다독거리며 살아야 되는 거 아닐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마음에 감사와 휴식을 부어 주는 일을 찾고 , 컨디션이 좋을 때는 평범한 일상들을 즐기고...

지금이야 오랜 경험에 의해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앞이 캄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혼 후, 친정으로 들어온 지 1년 쫌 넘어서다. 이 맘 때의 가을로 기억된다. 결혼 생활을 정리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허무했다.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아서... 사랑하는 아들은 군에 가 있을 때였고. 20년 이상 산 고향 같은 도시를 떠나 낯선 도시로 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내막암으로 자궁, 난소까지 절제한 탓에 난 여성호르몬이 끊긴 상태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온몸은 부서질 듯 아펐고, 지독한 편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엄마가 아파트 단지 내 장이 섰다고 나가자 하시는데, 나갈 힘이 없다. 내 속도 모르고 게으르게 매일 누워만 있다고 타박하신다. 모로 누워 눈물만 흘렸다.

난 집 앞 슈퍼에 나갈 때도 옷을 갖춰 입고 나가는 편이었다. 여행지 가서도 매일 머리를 감고...

그런데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씻지도 꾸미지도 않고 당연히 내 모습이 보기 싫어 거울을 보지 않았다. 상태가 심해지니 오히려 혼자 병원 가기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켜보던 여동생이 나를 데리고 응급실에, 정신과에 동행해 주었다.

처음 몇 주는 일주일 단위로 다녔고 약이 안 받아 부작용을 겪으면 다른 약으로 처방받으며 내게 맞는 약을 찾아갔다. 내가 실험용 쥐가 된 느낌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병원에 본격적으로 다니게 된 것은... 아픔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 저 나름이 상처를 지니고 사는 게 인생인데 , 나의 마음이 감기는 지독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참 가장 최근 위험했던 여름도 있었다. 2년쯤 인 것 같다. 통장에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벌이는 시원찮았다. 갑자기 미래에 대한 절망감과 두려움이 몰려오는데 걷잡을 수 없었다. 신호는 무기력함으로, 그때도 내 얼굴을 보기 싫어 거울을 피했다. 좋아하는 옷들도 시큰둥 , 옷은 그냥 내 몸을 가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현실감은 떨어졌고 꿈속을 헤매는 느낌.

13층에서 내려 다 보면 지면으로 빨려 들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터널의 가장 중심부를 통과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담당의의 입원 권유에 당장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나는 예상 병원비를 물어봤다.

난 내가 가장이며, 내가 보호자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의사의 만유를 뿌리치고 겨우 응급실서 링거를 맞고 처방받은 약을 들고 집으로 왔다. 그녀에게 일주일 뒤 꼭 오리란 약속을 하고...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니라고 여겨지는 일들이 대부분이라는데... 나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쓸어내리고 떠오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많다. 내가 그렇게 엄살쟁이는 아닌데 ㅎ

몇 번의 트라우마를 겪다 보니 무언가 예후, 조짐이 보이면 지레 안절부절못하는 경향이 생겼다.

난 요즘 거울을 잘 안 보고 싶다. 그런데 예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 권투 선수들이 시합에 맞서 몸이 맵 집을 키운다고 들었다.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다 보니 마음에 조금은 근육도 붙고 맵 집도 생긴 것 같다.

10년 전 2년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나가겠지... 그래 어떤 방법이 로든 풀어 나가면 될 것이다.


아, 거울 보기 무섭다. 마음은 청춘인데, 거울 속엔 초로의 웬 중년 여성이 서 있다.

노래 가사처럼 세월이 야속하구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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