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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Dec 20. 2023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 “위미 동백”

   

제주로 이주하기 전, 우리 꿈은 외국인 전용 펜션이었다. 제법 구체적인 계획도 갖고 있었고, 준비도 착착하면서 5년간 땅 보러 다녔다. 

처음엔 제주도 전도를 놓고 곳곳에서 머물며 부동산에 들렀고, 1년쯤 후엔 산남(山南)지역인 서귀포로 정했다. 또 1년이 지나며 서귀포 동쪽과 서쪽은 날씨를 고려해 제외하고, 마침내 서귀포 중앙부로 정했다. 제주에서 가장 따뜻한, 감귤 노지 재배가 가능한 곳이다. 3년 후엔 서귀포 신시가지를 지나서 남원까지. 이 지역이 황금 지역이라 결론 내렸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이 지역을 돌며 땅을 구했다.   

  

그중에서 나는 위미를 꼽았다. 

이름이 예쁘잖아. We Me? Oui mi? 외국인도 쉽게 기억할 거야.”     

위미와 남원지역을 무수히 돌아다니며 땅을 구했지만, 결국 우리는 서귀포 시내에 살게 되었다. 제주 와서 몇 번 구급차 타고 보니, 역시 노년에 살 땅은 대형 병원에서 10분 이내가 맞다는 걸 깨닫고, 지금 자리에 만족하고 산다. 

     

지난 주말에도 위미를 돌아다니며 남편에게 말했다.

“저 부동산 우리가 갔던 곳이지? 다운 계약서 해 달라던 곳이지?”

“저 동네에서 한 부부를 알아서 같이 술도 마시고 했지?”

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동네, 위미는 아직도 동네 모습은 바닷가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위미 포구 가까이에 높은 호텔을 짓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무척 실망했다. 

“대체 이런 바닷가 마을에 저 뜬금없이 높은 건물은 뭐야.”

바닷가에서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낮은 능선에 두드러진 건물이 볼썽사나웠다.      

올봄에는 ‘위미웨이’라는 수변 트레킹 코스가 생겼다. 가서 보니 겨울이라 그런지 걷는 사람은 없고, 덩그러니 철골 구조물만 서 있었다. 


위미가 달라지고 있다. 관광자원은 필요하다. 개발이 되고, 호텔이 생겨야 사람이 몰리고, 마을 식당도 장사가 된다. 하지만, 마을의 고유한 아름다움은 차차 사라진다. 나는 의문스럽다. 저 호텔과 인도교가 위미에 꼭 필요한가?


제주도에서 발표한 수변 트레킹 코스 'We Me Way'



유래 


위미리의 옛 이름은 쉐미, 뛔미, 뛔밋개라 부르고, 한자로 우미촌(又尾村) 또는 우미포(又尾浦)로 표기하였다. ‘우미’라는 명칭은 마을 북쪽에 큰 동산·족은동산·쇠동산이 있는데 쇠동산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태이고, 족은동산은 소의 꼬리와 닮았다고 하는 데서 연유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우미리(又美里)라 하였는데, 현재의 명칭인 위미(爲美)는 ‘우미(又美)’의 우(又)가 위(爲)로 바뀐 것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밥집, 카페, 숙소 


카름 스테이(https://www.kareumstay.com/about)는 마을여행을 안내하는 곳이다. 마을의 숙소와 가볼 곳, 먹을 곳을 소개하고 있다. 제주 관광공사에서 만든 사이트이지만, 아직은 제주 전 지역을 커버하고 있지 않다. 차차 더 충실해져 실질적인 제주 안내 사이트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도 해당 마을의 숙소를 잘 찾아보면, 눈이 번쩍 띄는 곳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미 마을에서는 동네 밥집 두 곳을 소개한다.     


팔도강산, 탐라밥상. 둘다 일인분 "정식 만원".


1. 신팔도강산      

"이 집 쌈장 맛 들이면 안 되는데."

동네 아저씨의 말처럼 30년 넘도록 밥집을 해온 주인의 된장국과 쌈장의 맛이 남다르다.

손님도 가득 차고, 연신 '배달의 민족, 주문!'이 밀려서인지 아쉽게도 옥돔구이가 식었다. 미리 많이 구워두어야 수요를 당할 수 있나보다. 


2. 탐라밥상        

팔도강산보다 실내가 깨끗하고, 갈치가 따뜻해서 나물들과 잘 먹었다. 두부조림은 엉터리. 제육볶음은 잘 안 먹는다. 고기가 딱딱하고, 달다. 그래도, 팔도나 탐라나 만 원짜리 밥상이니 그 동네 가서 수수한 밥이 먹고 싶으면 들를 법한 곳들이다.

  


동네 책방 북타임과 동백화방, 카페 라룬블루


3. 동네 책방 북타임

이런 곳이 가장 위미스럽다. 제주에는 동네 책방이 참 많다. 개성적인 책방들도 많으니, 『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책을 들고 제주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제주에 올 때마다 동네 책방 하나쯤은 꼭 들러보면 어떨까.

"위미에 오시면 북타임에 꼭 들러보세요." 


4. 동백화방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당신, 혹은 그런 화방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분이라면 추천. 화구는 화방에 갖추어져 있다. 엽서 크기 그림부터, 큰 그림까지 모두 그릴 수 있다. 화방을 방문한 날도 몇몇 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손님들. 동백수목원 곁에 있으니, 동백꽃을 구경하고 난 후 그 색감을 화폭에 떨궈보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되겠다.


5. 카페 라룬 블루 (la Lune Bleue)          

이런 식 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푸른 달'이거나 불어식 발음 '라륀 블뢰'가 되어야지. 옛날 집을 그대로 살리고, 정원의 나무 아래에도 자리가 있어 나름 분위기가 있다. 근데 저 등받이 없는 의자가 낯설고 불편한 건 내가 낡은 세대란 뜻이지? 블루베리 식빵이 쫄깃하니 맛있었다.





그리고 제주 특히 위미는 지금 동백꽃 천지. '동백수목원'이나 '동백 포레스트'에서 동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피어도, 져도 고운 꽃. 위미의 동백이다.


         

동백꽃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1연     



덤으로, 우리 집 담장의 동백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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