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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찢어본 사람 셋이서 템플스테이 다녀온 이야기

by core Mar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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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엔 신기하게도 같은 경험이 있는 친구(a.k.a 파혼 슨배님)들이 두 명 있다. 내가 소식을 전하자 그들은 위로보단 격하게 반가워(?)했다. 그간 혼자 외로웠는데 이제 함께할 사람이 생겼다며. 고맙다 친구들아. 하하하.


한 명은 고등학교 친구 A이고 다른 한 명은 나의 동갑내기 사촌 B이다. A와 B는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를 매개로 셋이 함께 템플스테이를 가게 되었다.




전말은 이렇다. 어렵게 결론이 난 뒤, 나는 ‘망경산사'에 가고 싶어졌다. 회사 생활에 지쳤을 때 찾았던 바로 그 절이다. (지난번 후기 참고) 피폐해진 그 무렵의 나에겐 산사의 고요와 법당의 온기가 절실했다.


그러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템플스테이 이야기가 나왔다. '마음을 환기하러 절이나 다녀오려고 한다'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A가 자기도 함께 가고 싶다고 합류 요청을 했다. 경험자끼리라니. 이건 못 참지. 우린 신나서 그 자리에서 예약을 갈겼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을까. 사촌 B와 만난 술자리. 파혼남 2인이서 템플스테이를 가게 되었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전했다. 사촌 B는 술 한 잔을 들이켜더니 '파혼녀 1인 추가요'를 외치며 쿨하게 합류를 결정했다. 그렇게 급 결성된 남녀 혼성 3인조. 92년생 동갑내기 세 명. 이름하여 청첩장 찢어본 사람들의 모임. 청찢모.


이보다 더 극적인 공통점이 있을까. A와 B는 처음 만났지만 어색함 없이 빠르게 친해졌다. 눈빛 교환만으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셋은 이미 영월로 향하는 차 안에서 세상 가장 돈독한 의형제가 되어 있었다.

끄-덕끄-덕

 



근 2년 만에 찾은 산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들어와 펼쳐지는 해발 800m 고지의 고즈넉한 사찰. 나물밭도, 장독대도, 쾌청한 산공기도 여전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인자한 스님들의 미소도 여전하셨다. 1박만 있는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여전히 포근한 법당 풍경여전히 포근한 법당 풍경


스님과의 차담, 2차까지 이어진 대화

망경산사 템플스테이에는 저녁 식사 후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있다. 그날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각종 고민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스님께 여쭈었다.


Q. 최근에 이러이러한 경험이 있는데, 앞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 어떤 마음으로 만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상대방을 만날 때 재고 따지고 계산하는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스님은 헤어진 상황에 대해 몇 가지 물으시더니, ‘오히려 잘 된 일이다’라며 위로해 주셨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살면서) 한번 부딪히고 깨어지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깨뜨리고 깨우쳐준 것은 정말 귀중한 경험이에요. 그와의 헤어짐 덕분에 나의 단점을 직시하고 고칠 점들을 알게 되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스님은 내 얼굴을 보시더니,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 것이 태가 난다며 원망이나 미움이 없는 얼굴이라 다행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때 좀 울컥했다)


인간이라면 본래 따지고 계산하기 마련이라, 그걸 아예 하지 않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약 그걸 아예 하지 않고 싶다면 나처럼 출가를 하는 길밖에 없죠. (웃음) 다만, 재고 따지더라도 상대에게 베풀 줄은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베풀 수 있는 범위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스님의 평온한 얼굴과 답을 들으며, 속으로 ‘진심으로 출가하는 것도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랬다간 집에 못 갈까 봐.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새벽 다섯 시의 밤하늘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새벽 다섯 시의 밤하늘


새벽 다섯 시의 108배

108배는 생각보다 쉽다. 그냥 절을 108번 반복하면 된다. 친절하게 스피커로 횟수를 카운트해 준다. (마치 헬스 어플처럼 말이다) 그냥 횟수만 카운트하는 게 아니라 108개의 서로 다른 기도문이 흘러나온다. 한 번 절할 때마다 한 구절을 마음속으로 읊는 방식이다.


108배를 하며 느꼈다.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해서 움직일 때, 동시에 하나의 문장을 되뇔 때 사람은 경건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평소 우리의 몸은 얼마나 무질서하게 움직이는가. (혹은 하염없이 정지해 있는가). 우리의 정신은 얼마나 많은 대상에 걸쳐 널브러져 있는가. 108배는 구겨진 영혼과 육체를 깔끔하게 다려주는 다리미 같았다.


특히 기도문의 내용에 감탄했다. 무엇보다 굉장히 찔렸다. 스님들이 내 삶을 사찰하고 구절을 만드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108개의 구절 하나하나 버릴 게 없었다. ‘역시 새벽에 일어나길 잘했다’ 뿌듯한 마음과, 동시에 ‘이런 진리를 이제야 깨닫다니’ 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새벽을 다 보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집착하고 괴롭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며 절합니다
내 생각대로 하려는 마음 때문에 상처 준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며 절합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타인을 포용할 줄 알는 마음이 커지기 바라며 절합니다
사람을 사귀는 데 이익을 바라지 않고 의리와 겸손으로 사귀길 바라며 절합니다

더 많은 기도문 구절이 궁금하신 분은 이 영상 참고.




주지스님과 청찢모 3인주지스님과 청찢모 3인


늦은 점심, 무해한 세 명의 대화

점심 공양을 드리고 여유로운 자유시간. 우리 셋은 뜨끈한 아랫목에서 각자의 스토리를 맞대보았다. 나는 매우 신사적인 이별을 한 편이었다. 숨겨둔 빚을 결혼 몇 개월 전 알게 되었다거나, 파혼 후 직장에 찾아갈 거라고 협박을 한 이도 없었으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공손해졌다.  


우리는 무엇보다 대화할 때 안전함을 느꼈다. 서로에게 실례가 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지나친 연민의 눈빛을 받거나 약점 잡힐 우려도 없었다. 우리는 마음껏 물음표를 난사했다. 식장은 어디였어? 신혼여행지는 어디였어? 경험자만 할 수 있는 농담에 배를 잡고 구르기도 했다. 마치 친근하게 N-word를 나누는 흑형들처럼.

참고 :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건 파혼자 한정임.참고 :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건 파혼자 한정임.


유경험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 이들은 '왜'에 집착하지 않는다.


주변에 소식을 알리면, 보통 (나름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는다. “그래서 왜 헤어진 거야?” "결정적인 이유가 뭐야?" 그들 입장에선 너무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주제겠지만 당사자에겐 너무나 지긋지긋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대강 이유를 알려주고 나면 돌아오는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너무 성급했다는 의견, 사실 말은 안 했지만 처음부터 좀 우려됐다는 의견, 오히려 너무 잘 됐다는 의견. 자기가 생각했을 땐 어떤 점이 문제였고, 자기가 봤을 땐 이런 점이 이상했다는 둥.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들끼리 자꾸 추리를 하고 원인을 분석하곤 했다.


요컨대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해 보겠다는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저 또 다른 고통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삶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우린 이미 사건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건 그 자체보다 주변에 사건을 설명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어차피 이유는 하나가 아니고, 인과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서로에게 '왜'에 대해 따져 묻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영역이 있다는 게 얼마나 편안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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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과 DM하는 사이
망경산 view


지난 템플스테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산사에 있는 1박 2일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거다. (지난번엔 거의 묵언 수행에 가까웠다) 아침 산책을 할 때도, 우리끼리 식사를 하거나 낙엽 쓸기를 할 때도 소풍을 온 중학생들처럼 킥킥대며 재밌게 보냈다. 무엇보다 다들 개그 욕심이 있어 각종 드립이 난무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얼마나 요란했는지 모른다. 청찢모 3인 모두 긍정적이고 유쾌한 것은 어떤 고통을 극복한 이들의 공통점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

 

비극은 비극적일 때 가장 비극이 된다.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비참하게 무너질 때, 비극에 몰입되어 극적으로 몸부림칠 때, 비극은 가장 비극적으로 완성된다. 비극이 완성되어버리고 나면 다시 떨치고 일어날 미래는 없다. 이때 웃음은 비극에 납작하게 깔린 우리들이 거기에서 기어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지렛대다.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박사




이렇게 케미가 잘 맞는 3인방이었지만, 한 가지 주제에서는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다. "소개팅 상대에게 파혼 사실을 알린다 vs 알리지 않는다"라는 주제. 셋 다 의견이 달랐다. 알린다면 언제 알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극명하게 대립했다. 소개팅 전에 주선자를 통해? 아니면 만나다가 사귀기 전에? 아니면 사이가 깊어질 때쯤 사연 있는 남자(여자)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는 뭔가 거짓말하는 거 같아서 도무지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이런 시리즈도 쓰겠지) 의외로 말을 하는 게 오히려 상대에게 실례라는 주장도 있었다. 별로 안 궁금하고 중요하지도 않은데 괜히 말해서 신경 쓰인다고. 누가 좀 정해주실 분 구함. 댓글로 가장 합리적인 댓글을 달아주신 분께 사례합니다. 이상 템플스테이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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