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lyfield
2025년 7월 1일은 캐나다의 159번째 Canada Day이다.
캐나다 데이(Canada Day)는 1867년 연방 제정에 맞춰 7월 1일에 개최되었고, 첫 공식 휴일 지정은 1879년이었으며, 이후 1982년 'Dominion Day'에서 'Canada Day'로 개명되었다.
캐나다 데이(Canada Day)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의 글 '불어로 살아남기'에 실린 Fête du Canada 편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겠다. https://brunch.co.kr/@coreadian/50
일기예보는 한낮의 무더위를 예측했고, 늦은 오후에는 비가 내릴 것이라 보도했다.
어차피 멀리 나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것도 아니고, 거리도 데이트립(Day trip)으로 갈 수 있는 근교라 굳이 날씨에 구애받을 일 없는 여행이라 생각하고 떠났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곳은 넓은 호수에서 보트 놀이를 하는 동영상으로 너무 신나 보였다. 보트에서 먹는 피크닉 베스킷도 이국적으로 보여서 한 번 가보면 좋을 듯해서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가보기로 했다.
장소의 정식 명칭은 살라베리-드-밸리필드(Salaberry-de-Valleyfield)로 캐나다 퀘벡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2021년 기준 인구는 42,410명 정도의 작은 소도시이다. 역사적인 다운타운은 이 지역의 주요 관광 중심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운전해서 40-50분 정도 가는 거리라 많은 정보 없이 가볍게 가 보고 싶었다.
고속도로도 다행히 휴일치고는 분비지 않았다.
가는 길에 가족들이 좋아하는 일명 마약햄버거 집- (우리 집 식구들만의 명칭이다.)에서 점심으로 먹을 그 집 시그니처 햄버거와 서브마린, 핫도그를 사서 길을 떠났다.
먹구름은 물먹은 담요처럼 낮게 내려앉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면서 한 두 방울 비가 내린다.
그러다 멈추고, 다시 내리고,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날씨는 점점 개어가고 있다.
호수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어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는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찾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았다.
휴일에는 식당문을 더 활짝 여는 한국과는 참 다른 풍경이다.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가?
구글에서 알려주는 몇 군데 카페를 찾아갔지만 모두 문이 닫히고, 길을 걷다가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길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들어간 카페는 80대쯤 보이는 할머니 혼자서 일하고 계신 곳이었다.
카페 안 이곳저곳은 세월을 훌쩍 넘은 잡지들과 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은 커피 머신과 보기만 해도 정겨운 옛날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좋게 말해 레트로 감성이지,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동네 커피집이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영어로 주문을 하자 난감해하셨다. 다행히 딸아이가 프랑스어로 주문을 하자 안도하시면서 몇 번이나 확인을 하셨다.
deux petits cafés noirs
un expresso
un café glacé moyen
블랙커피를 먹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우신지 계속해서 우유와 설탕을 왜 안 넣느냐며, 설탕이 필요 없냐고 두세 번 되물어보신다.
혹시라도 이 이방인들의 주문을 자신이 잘못 받으셨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셨다.
아이스커피를 건네주실 때에도 커피는 따뜻하게 마셔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얼음이 충분하냐고 물으셨다. 얼음은 벌써 따뜻한 커피에 녹아버려 존재확인이 어려웠다.
우리는 얼음을 더 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Peux-tu me donner plus de glace?
할머니는 당연하다며 얼음을 더 넣어 주셨지만, 아이스커피라 말하기에는 얼음이 너무 적었다.
메뉴판에는 없는 아이스커피를 만드시느라 분주하셨던 할머니가 안쓰러워 그냥 받아 들고 나왔다.
돈을 계산할 때도 조그만 수첩에 우리가 주문한 것을 직접 가격과 함께 쓰셨다.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라 정겹다.
진열대에 놓은 페이스츄리(pâtisserie) 도 할머니께서 직접 홈메이드로 만드신 것 같다.
도시 카페에서 크루아상이 4$이 훌쩍 넘는데 여기서는 거이 반값인 $2.50이다.
시골 인심이 느껴진다.
그렇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커피를 들고 마을 중심부에 있는 공원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어서 공원 안은 쾌적했고, 피크닉 테이블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은 한가로웠다.
가끔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아시아인이 비교적 적은 마을에 찾아온 이방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듯했다.
공원 중앙에 커다란 나무 밑의 빨간 의자는 사람들이 휴식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휴식이라는 콘셉트는 좋은듯하다
가톨릭이 주된 종교인 퀘벡은 마을 어디를 가도 성당이 있다. 마을 한편에 자리 잡은 Basilique-Cathédrale Sainte-Cécile de Valleyfield 성당은 단순한 교회를 넘어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자, 기도의 장소, 헌신의 공간,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교회 근처에는 교황 비오 9세(Pius IX)의 흉상이 있는데, 그는 가장 오래 재위한 교황(총 31년 7개월)으로 알려져 있으며, 교황 무오류성을 선언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870) 한 가톨릭 교회의 제255대 교황으로, 1846년부터 1878년까지 재위했다. 그의 통치는 19세기 유럽의 격동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걸로 유명다.
무더운 한 여름 오후를 즐기기엔 커뮤니티 수영장(community pool)만큼 좋은 곳은 없다.
일단 주민이라면 무료다. 사용료가 있다 해도 4-5$이면 충분하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겁고, 부모들도 다른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잘 훈련되고, 자격증 있는 구조원(Life Guard)도 있으니 안전하기도 하고...
성인이 된 아이들과 이곳을 지나치면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 부모들끼리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 조용히 선베드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놀았던 것을 회상하며, 추억을 이야기하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뾰족하게 올라온 쌍둥이 교회 종탑과 거기에 걸린 하늘이 한 장의 엽서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호반의 도시 춘천이 떠오르는 벨리필드(Vallyfield)에서의 한나절 여행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물씬 올라오게 한다.
일상은 익숙해서 좋고, 한 나절 짧은 여행은 그 익숙함에서 일탈을 할 수 있어 좋다.
일상과 일탈은 이 문처럼 한 발작 차이인 듯싶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도 가 볼만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들이 녹아든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은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몬트리올을 방문하게 되신다면, 주변의 작은 마을로 조금은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집에 도착하니 '우르르 쾅쾅' 우리를 기다려주었다는 듯이 소나기가 내린다.
오늘 밤 캐나다데이 불꽃놀이는 못 볼 것 같다.
#캐나다데이#휴일#데이트립#비#작은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