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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17. 2023

09. 저를, 아시나요?

얼마만큼 닿는지 모르는 채 쓰는 일

글을 몇 년 동안 공개된 플랫폼에 쓰다 보면 누군가는 읽기 마련이다. 문제는 ‘누가’ 읽는지 대부분 모른다는 것이다. 계정의 구독자 수나 글의 조회 수는 물론 쌓이고 쌓이면 유의미한 숫자가 되고 (사실 숫자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게 한 명이든 열 명이든 100명이든, 내가 쓰는 글에 차이는 없다.


어쨌든 계속 쓰다 보면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다. 자신도 모르는 방식으로. 앞선 글에서 쓴 것처럼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봄, 영화 모임을 하던 어느 날 저녁, 내게 또 다른 영화 모임 기획을 제안해 준 분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진행한 한 관객 대상 설문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기록자로서 좋은 건 널리 자랑하라고 어디선가 배운 탓에 당시의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생생히(?) 쓴 적 있다.


https://brunch.co.kr/@cosmos-j/1016


<씨네21> 지면 1251호는 그래서 내게 거의 가보와도 같은 소장품 중 하나로 여겨지며 책상 위 손에 잘 닿는 곳에 꽂혀 있다. 지면이 나올 무렵 <씨네21> 편집팀장님이 인스타그램 댓글을 통해 알려주셨고, 나보다 훨씬 오랜 업력과 전문성을 가진 매체와 기관에서 진행한 조사이니 만큼 그 진위(?)를 의심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아래와 같은 생각을 여전히 약간은 가지고 있다.


신뢰하거나 참고하는 영화 전문가가 있냐는 물음은 주관식이었을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결과 중 중요한 포인트는 1위가 ‘없음’이라는 것에 있다고 보지만, 아마도 얼마만큼의 사람들은 내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유명 영화평론가와 나를 헷갈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브런치가 있기 전 그러니까 블로그를 운영하던 때 국내에서 ‘천만 영화’가 될 만큼 화제작이었던 <인터스텔라>(2014)의 후기나 리뷰를 제법 여러 편의 글을 할애해서 썼다. 검색 유입에는 ‘김동진 인터스텔라’와 같은 키워드가 한동안 상위권에 있었다. 지금이라면 혹시 나를…? 싶겠지만 그때라면 블로그 검색을 한 많은 사람들이 모 평론가 님의 성을 헷갈렸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 2020년에도 그런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당연하게도 요지는 조사의 결과를 약간은 어리둥절한 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신뢰하거나 참고하는 영화 전문가 6위’라는 결과값에 겸양과 쑥스러움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사소하게 추가하고 싶은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면, 설문의 내용 중 영화 정보를 얻는 채널에 대한 물음에 인스타그램은 있었지만 브런치는 없었다는 점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중심도 아닌) 내 인스타그램이 유사 분야의 개인 채널 중에 유의미한 수의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에 ‘인스타그램 글쟁이’보다는 ‘브런치 작가’가 더 중요하게 자리한 만큼 나는 그럼에도 혹시나… 저도 이동진 평론가 님 좋아합니다,,,라고 써보는 것인데,


<씨네21> 1251호

이 글의 본론은 그게 아니다. 구독자가 1만 명이 넘어도, 조회 수가 글에 따라 다르지만 얼마만큼을 나타내든 간에, 나는 여전히 내 글을 ‘그래서 누가’ 읽는지 잘 모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브런치의 라이킷 알림도 딱히 참고가 되지는 않는다. 구독 여부와 관계없이 거의 모든 글에 라이킷을 누르는(눌러주시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 조금 더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1:1로든 댓글 등을 통해서든 내 글을 읽었다고 직접 표시해 주는 사람들의 존재다. 때로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공감했다고 알려주는 이도 있으며 글의 내용에서 비롯해 화제를 확장시켜 주는 코멘트도 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글이 아니어도 좋거나 혹은 재미있는 ‘콘텐츠’는 넘쳐나고 글이 아니라 유튜브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본다’. 유튜브 영상으로 말한다면 어떤 영상이 조회수 100만을 기록해도 그 영상의 댓글은 대략 수 천 개에서 1만 개 안팎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보거나 읽거나 들은 것을 기억하거나 간직하거나 어딘가에 공유하거나 혹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낸다.


나 말고도 ‘글 쓰는 사람’은 아주아주 정말로 더 많이 있다. 0과 1의 ‘정보’로 기록되는 인터넷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작은 숫자에 지나지 않을 ‘데이터’를 단지 하나 더 허공에 흩뿌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글을 쓰는 이라면 이따금 하게 될 것이다. 2020년에도, 2023년에도, 나는 내 글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닿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단지 내 기록을 위해 쓴다. 누군가 읽어준다면 고마울 일이지만 이 글은 미래 어느 날의 스스로에게 부치는 편지 혹은 그 무엇이 될지도 모른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그 무렵 본 영화 -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03.05 개봉)

(…) 홍콩 영화를 잘 알지 못하고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도 아닌 내가 ‘찬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소 체험하고 거기에 아파하고 좌절하면서도 그걸 선뜻 포기하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라면 나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걸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꺼내주었다.

비록 내가 믿고 싶고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이것저것', '이상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사라져버리고 변하고 되돌릴 수 없을지라도, 내가 믿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살아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을지라도,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거기 영화도 있어요.”라고 말해볼 수 있게 만든 게 결국 영화였고, 그 영화들의 세계와 감각을 사랑하며 웃고 울었던 매 순간의 '나'였듯이. (…)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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