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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18. 2023

10. 브런치 작가로 살아남기

어쩌다 영화 글을 쓰게 되었다 보니,

운 좋게도 브런치 작가 활동을 비교적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브런치팀으로부터 작가 승인 이메일을 받은 것이 2015년 9월 4일의 일이다. (브런치(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은 2015년 6월에 생겼다) 그 이전에 2년이 조금 넘도록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고 1년 반 가까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해 왔으며 ‘영화리뷰’를 쓰겠다는 확고한 활동 분야 내지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작가 승인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고 추측하건대 작가 수가 수 만 명에 이르는 지금(2023년)보다 그때 작가로 승인받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같은 해 열린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그때 은상은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고 약간의 상금을 주는 시상이었다. 그럼에도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분류된 덕분에 구독자 수에 있어서는 (이모티콘 이벤트 등) 혜택을 보았던 면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지금도 다른 작가들에 비해 유리한 무엇인가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지난 글에서 쓴 바와 같이, 구독자 수 자체가 모든 것을 정하지 않을뿐더러 각 글의 조회수나 유입 등은 다른 요소의 영향도 받는다) 작가로서 활동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성장해야 한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내 브런치 계정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은 브런치 계정의 존재 자체이기도 했다. 2017년부터 있었던 ‘브런치 무비패스’(신청하여 선정된 작가에 한해 6개월간 일정 횟수의 영화 시사회 초대 기회를 부여하는 패스였다)에 1회부터 5회까지 모두 선정되었고, 서울환경영화제 등에도 초청받아 다녀올 수 있었다. 브런치에서 영화를 다루는 작가가 나만 있는 게 아닌데, 다행히 내가 글을 그렇게 못 쓰는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2021년 초에는 브런치와 넷플릭스의 제휴로 마련된 프로모션인 ’넷플릭스 스토리텔러‘에 지원해 선정 작가 50인에 포함되었고, 3개월 간 넷플릭스 콘텐츠 리뷰 글들을 발행한 결과 최종 1인을 뽑는 ’최우수 작가‘가 됐다. (왜, ‘최우수 작가’로 선정됐다는 내용은 작가소개 페이지에 표시해주지 않는 건가요!) 내향형이지만 자랑할 건 자랑해야 하겠기에 당시에도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cosmos-j/1286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선정으로 받은 굿즈와 노트 등


위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활동 기간 중 넷플릭스 콘텐츠 리뷰 열여섯 편을 쓴 게 전부가 아니었다. 다른 청탁 원고 작성이나 모임 준비 등은 물론이고 회사 업무도 계속됐다. 회사에서는 예를 들어 3월 말 정기주주총회 시즌이었고 회사 주가에 영향을 주는 대내외적 이슈들도 몇 가지 있었다. 그렇지만 브런치에 뭔가를 쓰는 동안에는 ‘브런치 작가’라는 정체성을 장착했다.


‘브런치 작가로 살아남기’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면 그게 단지 계속 쓰기만 해서 가능했을까. 내게는 상술한 바와 같은 기회 요인과 요행도 따랐다. 브런치 무비패스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같이 영화라는 내 분야를 살릴 활동이 없었다면 내 브런치는 그저 그런 영화 글 올라오는 계정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계속 글을 쓰다 보니 더 많고 다양한 영화를 만날 기회가 찾아오거나 브런치 생태계 안에서 내 이름을 내세울 만한 자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출판으로 이어지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는 1회 이후 수상 기회를 얻지 못했다. 팔리는 글, 혹은 ‘책‘이 될 만한 글의 관점에서는 부족했거나 나보다 더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이 있어왔다는 뜻이다. ‘살아남기’가 전부가 아니라면 내게는 그 이후, 그러니까 ‘작가로 성공하기‘나 ’돈 많이 버는 작가 되기‘ 같은 것이 남았다. 그렇지만 어차피 책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한 글만 써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먼 예시를 들자면 J. K. 롤링의 재산이 10억 달러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조지 루카스의 알려진 재산은 50억 달러가 넘는다. 나도 글을 쓸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들었어야 하는데…(아닙니다) 대신 글도 열심히 쓰고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고 회사도 열심히 다녀서 N잡러가 되자. 이것이 이 글이 향하려던 결론이었나. 일단 더 쓰면서 생각해 보겠다.


영화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포스터
그 무렵 본 영화 -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2018.10.26 넷플릭스 공개)

(…) 제대로 된 영화 수업도 영화 학교도 없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감독 산디 탄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저 수많은 영화를 보고 머리속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오래 전, 직접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불확실함을 꿈꾼다는 건 그런 것이다. 당장 실체가 없고 앞으로 있을지의 여부조차 모르지만 그것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 자체가 현재를 살게 한다.

잃어버린 그 필름들은 단지 필름이 아니라, 한 사람의 꿈이었고 그것을 향한 탐닉과 애정이 가득 담긴 집합체였다. 그런 것이 어떤 사람의 사리사욕에 의해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 다만 <셔커스 -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죄를 심판하거나 추궁하는 대신 자신이 25년 전 무엇을 꿈꾸었는지 머리와 마음 안에 깊이 있던 것을 영화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 필름이 사라진 일의 내막에는 좀 더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당신도 그런 꿈이 하나 있지 않았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모든 일들을 겪고 세월이 흘러 자기만의 방식으로 꿈을 되찾은 영화감독의 이야기는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모두가 꿈꾼 흔적을 여기 소환한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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