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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19. 2023

11. 실시간이 아닌, 기록으로 남는 강의

내 지난 시간들의 기록과 그것이 만들어낸 현재

서점이나 도서관, 모임 공간 등에서 영화 글쓰기 강의를 하거나 특정한 영화에 대해 소개 혹은 해설의 형태로 이야기를 할 때 그 활동들 대부분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성. 같은 공간에 약속된 시간에 모인 사람들을 상대로 (강의안 등) 준비한 이야기를 하거나 사람들이 일정한 주제로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도록 이끈다. 이것은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나 스스로 어떤 순간에 사진을 찍어두거나 하지 않으면 그 좋았던 시간은 마치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그러하듯 끝나고 난 뒤 점차 휘발되어 간다. 물론 그 시간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인 '클래스101'에서 처음 클래스 개설 제안이 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현장성이 중요한 이야기를 충분히 경험했으니 지금부터 이 클래스를 준비하면서 하게 될 경험은 현장성이 아니라 영상 기록으로 남는 역사성이 중요한 일이 되겠구나. 2022년 9월 초, 클래스101의 기획 PD 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이후 기획과 제작에 관한 몇 차례 대면/비대면 미팅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 촬영 준비와 두 차례에 걸친 강의 촬영을 거쳐 최종 편집과 검토를 지나 [내 취향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문화 콘텐츠 리뷰 쓰기]라는 이름의 클래스를 론칭하기까지 약 4개월이 걸렸다.


https://brunch.co.kr/@cosmos-j/1465


총 7개의 챕터 안에 28개의 세부 영상들이 담겼고 트레일러와 아웃트로를 포함하면 30개의 영상이 만들어졌다. 영상 분량은 합해서 5시간 0분 50초. 일부 스크립트를 쓰지 않고 촬영한 영상도 있으나 작성된 전체 스크립트의 분량은 약 9만 6천 자였다.


강의를 촬영 중이던 2022년 12월


기록으로 보존되지 않는 특성이 있는 실시간 말하기와 달리,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진 강의는 그 자체가 기록이라는 점 외에도 '시차'가 있다. 2022년 9월 말부터 2023년 1월 초까지 준비해서 공개된 강의가 그 이후부터 누군가에 의해 '수강'된다. 각 소주제별로 챕터와 단계를 구분하다 보니 한 호흡(혹은 시간)으로 시작해 끝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의 단계별로 흐름을 끊는 말하기를 하게 되었다는 점도 일반적인 현장 강의와는 다른 점이겠다. 삶은 '가면서 결정하는 일'들로 채워지지만 그것이 콘텐츠라면, 가기 전에 미리 결정해둬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초기 오픈 효과가 지나자 이 온라인 강의가 내게 수익적으로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글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역시 지속적인 고민과 기획을 필요로 한다. 내게는 그간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해왔던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돌아보고 재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도 온라인 강의를 론칭한 후 드는 소감 중의 하나다. 또 하나의 계단을 올라 선 '22말 23초'라고 해볼 수도 있겠다.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2022년 9월에 앞서 그로부터 약 1년 전에도 클래스101에서 클래스 개설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사전 수요 조사'의 형태로 강의에 대한 기대 수요가 일정 수치 이상을 기록해야 실제로 클래스 개설로 이어졌는데, 그 수요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었다. 클래스101이 콘텐츠 개별 구매 중심에서 월간/연간 구독형으로 사업 모델을 재편하면서 내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모임이나 강의 등 '프로그램'을 한 번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당장 눈에 보이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지속적으로, 개연하고도 핍진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시간이 아닌 기록으로 남는 강의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내 지난 시간들의 기록과 그것이 만들어낸 현재를 조금 더 긍정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는지. 클래스 론칭이 마무리되고 약 3개월 뒤 이런 기록을 남겼다.


(...) 3개월 정도만 더 지나면 ‘영화기록’을 처음 시작한 날로부터 10년이 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경험해 본 것 같지만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전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 (2023.04.02.)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국내 포스터
그 무렵 본 영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10.12 국내 개봉)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에서 "모든 거절과 실망들이 당신을 지금 여기로 이끌었다"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에블린'(양자경)이 다른 세계 속 수많은 '에블린'들과 달리 많은 것들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통념과 계량화에 의한 실패였다 할지라도, 에블린은 자신이 해내지 못한 어떤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들로 인해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해낼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라는 말 덕분에. 이 말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평범한 발화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세계 속 모든 '당신'들을 경험하고 난 뒤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겠다. '에블린'의 모든 언행들이 오직 딸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일상을 전부 지켜내고자 하는 그 마음 때문에. 삶이 다녀간 수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당신은 오직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것이 단지 몇 겹의 영수증 뭉치와 숫자와 층위로 설명될 수 있을까? 수많은 하지 못한 것들은 앞으로 할 수 있을 것들이 된다. 실패의 누적이, 그다음이 실패가 아닐 확률을 점차 100퍼센트에 수렴하게 만들 테니까. (...)

아래 전용 링크를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내 취향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문화 콘텐츠 리뷰 쓰기] 강의를 비롯한 클래스101 콘텐츠를 모두 구독할 수 있다.


https://101creator.page.link/xh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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