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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10. 2019

비판은 제대로 해야만 가치 있게 성립한다

다시, 또 영화 한줄평에 관하여


(본 글은 10월 31일에 개봉한 영화 <오늘, 우리>에 대해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왓챠'에 남긴 한줄평에 남겨졌던 어떤 코멘트에 관한 글입니다.)


출처: 왓챠


모든 의견을 그 자체로 다 존중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는 말을 꽤 오래 전부터 써왔는데 한 번 더 적어야겠다. 굳이 한줄평의 정의나 범위에 이르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비판의 요건은 논리성 내지는 합리성이다. 코멘트는 어김없이 삭제되었지만, 그 내용에 대해 반문할 수 있는 말은 넘치도록 많다. 예컨대 이동진 평론가가 여성 연출자의 영화에 대해 평가가 박하거나, 여성 연출자의 영화에 대해 한줄평을 '성의 없이' 쓴다는 주장에 수긍할 수 있는 근거나 설명이 충분한가? (여담으로 한줄평이란 '읽는 사람 입맛에 맞으면서 그 영화에 대한 필자의 모든 견해와 감상을 충분히 담으면서도 짧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동진 평론가가 남성 연출자의 영화에 한줄평을 '더 성의 있게' 쓰거나 영화를 더 후하게 평가한다고 말할 수는 있는가? '영화평론가면 영화평을 하세요'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영화평'이란 대체 무엇인가? GV나 방송 등의 행사나 매체에서 그가 그 영화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들어보거나 검색해보았는가? 이것 말고도 열 가지도 더 말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 당연히, 이건 특정 평론가나 기자의 평가나 성향에 대해 선호하거나 동조하는지의 여부나 정도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


정말 사소하고 뜬금없는 얘기지만 요즘 마케팅에서도 '2535 여성' 같은 식의 시장 세분화는 안 통한다. (그것만으로 소비자에 대해 말할 수 있는게 별로 없기 때문에.) 본인 입맛에 한줄평이 마음에 안 들었거나 그 한줄평을 남긴 사람이 남성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오직 자신이 느낀 대로만 말하기 전에, '아님 말고' 식으로 표현부터 하기 전에, 선행해야 할 건 자기 주장이 엄밀한지 혹은 그 말에 책임을 지거나 소신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다. 위 문제의 덧글을 썼던 사람 중 한 사람은 영화 <조커>에 대한 한줄평에 대해서도 '평론가가 쓸 만한 언어는 아니지 않나요?' 식의 말을 했다. 그 사람은 유명 영화평론가의 한줄평이 영화 '흥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줄평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도 이야기했다. (이 '흥행과 비평의 상관 관계 혹은 인과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반박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코멘트가 자신의 발언에 얼마나 책임감을 갖춘 상태에서 나온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대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대응하도록 만들어놓고 자신은 아무 입장 표명이나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과연 존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모든 대화가 생산적이거나 가치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본인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 역시 말의 책임이고 글의 무게다. 이런 경우 때문에 연예인이나 유명인은 언제나 약자인 것이기도 하다. 읽으려는 노력도 생각도 없이 단어 사용이나 표현을 문제 삼거나, 제대로 알아보거나 조사하지도 않고 평론가의 직업적 자질이나 성향에 대해 재단하거나. 그런 일이 '표현의 자유'나 '취향 존중'을 들먹이면서 너무나도 자주 일어난다.


어느 영화번역가는 자신이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에 쓰였던, 고어에 가까운 뉘앙스를 반영해 택한 단어 번역 하나 때문에 '트위터'에서 어떤 이에게 '번역가 여성혐오적이다'라는 비판 정도를 넘어서 욕설을 들었고 거기에 정성을 들여 충분한 해명까지 했다. 상대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만들고 어떤 경우 감정까지 상하게 만들면서 본인은 '아님 말고' 식의 태도거나 자기 말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을 나는 애써 존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개된 채널에 글을 쓴다는 사람이 이런 이야길 하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글 같은 건 존재할 리도 없고 단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숙고하고 다듬어 표현하는 수밖에는 글 쓰는 사람의 도리가 없어서.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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