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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곰 Mar 20. 2024

너무 뻔하지만, 어쩔 수 없이 좋은 점.

하나의 상황을 놓고 누구는 좋다고 할 것이고 누구는 싫다고 할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빵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좋다고 하는 것을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고 내가 싫다고 하는 것을 누군가는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라고? 나는 이 당연한 것에 의문을 꽤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다양함이 중요하게 존중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수많은 다양함 속에서 진리를 찾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둘의 경계를 어느 정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제목을 좋은 점으로 정하고 나니 오랜 고민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서 서론이 길어졌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의 취향이 담긴 글이다.




와인


뉴질랜드는 '와인 생산국'이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와인 생산국'. 뉴질랜드 어디에서나 손쉽게 다양한 와인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유통이 줄어드니 가격도 매력적이다. 한국에서 파는 뉴질랜드 와인의 가격을 비교해 보니 사실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수많은 와인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나는 주로 쇼비뇽 블랑을 마시는데 산미가 가득한 과일향을 품고 있는 맛이 깔끔해서 좋다. 와인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비싼 와인을 많이 접해보지도 못했다. 그냥 술 한두 잔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음주자라고 하면 적절하다. 아몬드나 치즈에 많이 마시던 와인을 이젠 김치찌개나 돼지 볶음이랑도 마신다. 혼자 마시는 술은 가벼운 게 좋다. 술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 술에 취해봤자 인생을 주거니 받거니 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내 흥에 맞춰줄 사람도 없다. 취해봤자 나만 손해다. 


뉴질랜드에 와서 꽤 많은 와인을 마셔봤는데 주로 10-30달러 사이의 와인을 마신다. 가격대가 고만고만하다 보니 딱히 확 내 마음을 잡아 끈 와인이 있다기보다는 모두 비슷한 맛을 내는 와인들이다. 그래서 행사하는 와인을 주로 선택한다. 뉴질랜드는 '와인 생산국'이기 때문에 항상 행사하는 와인이 있다. 와인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싸고 맛까지 있으니, 중독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와인을 구입했을 때가 기억난다. 큰 마트였는데, 술은 계산대 직원이 직접 승인을 할 수 없다. 계산대에서 종을 치면 매니저인듯한 사람이 계산대로 온다. 매니저는 옆에 서있는 내 딸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누구야?'

'??? 응?'

'옆에 있는 사람은 너와 관계가 어떻게 되지?'

'내 딸인데, 왜 그래?'


나는 이 대화를 나눴을 때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내 딸을 보고 누구냐고 묻는 그 질문이 마트에서 묻는 질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게다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던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안부도 아니다. 나는 꽤 당황했다. 그는 무심히 나를 보더니 카드키를 이용해 승인을 해줬고 그제야 와인은 내 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됐다. 다른 경우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다. 두 번 신분증을 확인받았다. 일본 마트에 갔을 때는 더 심했다. 일본 마트에 사케가 있어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을 하려고 하니 나에게 술을 팔 수가 없단다. 내 신분증을 보여줘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 그들의 말은,


'뉴질랜드는 미성년과 함께 온 사람에게 술을 팔 수가 없다. '였다. 


아차,


한국에서 한 번도 딸과 마트에 가서 와인이나 맥주를 살 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동안 딸을 데리고 내가 술을 사는 모습을 꽤 많이 보였다. 그들은 엄마가 와인을 즐기는 것을 이미 안다. 아이들은 이미 다 자라서 나와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아침부터 술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취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음주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임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단점을 최대한 방어한 선택이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조금 더 앞서있던 것 같다. 당연하게, 술을 구입하는 모습 자체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마트에서 사케를 샀냐고?

샀다.

나는 사케를 위해 그들과 꽤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못하는 영어가 술술 나왔다. 그 사케를 마시는 동안 그 직원과 나눈 대화와 뉴질랜드의 문화를 생각했다. 술을 끊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번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비추어지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래도 뉴질랜드에 여행 오시는 분들은 와이너리에 꼭 방문해서 와인을 즐겨보시길 추천한다. 





담배 금지법
 

술 구입도 까다롭게 관리하듯, 뉴질랜드는 여러 법안을 통해 한 발 앞서고 있는 나라다. 뉴질랜드의 공식 언어는 3개이다.


영어, 마오리어, 그리고 수화.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척 감탄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버스 안내 방송은 마오리어로 먼저, 그다음 영어로 나온다. 거리나 해변, 동네 이름이 마오리 말로 된 곳이 무척 많다. 아마 영어로 된 지명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오리 언어를 배우고 전통 춤인 하카(HAKA)도 배운다. 뉴질랜드 럭비팀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실력을 자랑하고 있는데 경기 시작 전 항상 HAKA를 선보인다. HAKA는 War cry(전쟁의 눈물)이라는 뜻으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이들 학교에서도 체육 대회를 하거나 스포츠를 시작하기 전에 춤을 추는데, 실제로 보면 정말 멋있다.


지난 정권 때 2009년생부터 담배를 평생 법으로 구입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새로운 소식에 의하면 이 법안은 곧 취소될지도 모른다. 작년, 선거를 통해 바뀐 정권은 이 법안을 취소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 이후 소식은 찾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법을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둘째가 2009년생이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다. 네가 뉴질랜드 시민이라면 담배를 평생 구입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담배를 판 업자에게 부과되는 벌금은 1억이 넘는다고 한다. 아예 담배를 뉴질랜드 안에서 없애려는 시도인 것이다. 국민의 건강이 세금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없는 것에는 자유의 권리를 내세울 이유도 없는 것이다. 


지금 뉴질랜드는 담배 한 갑에 40달러 정도 한다. 우리나라의 6배가 넘는다. 

그리고 정당의 의견 충돌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커피


한국에서 폴바셋 라테를 좋아했다. 원래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시는데 겨울이 되면 꼭 폴바셋 라테가 생각났다. 폴바셋은 호주 사람이다. 뉴질랜드는 호주의 이웃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같은 커피를 마신다.

뉴질랜드에 오고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이곳은 아메리카노보다 Long Black을 많이 마신다. 작은 커피잔에 에스프레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이다. 나는 단 맛보다 쓴 맛을 좋아한다. 롱블랙은 내 입맛에 딱 좋았다.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시키면 매장에서 마실건지 가지고 갈 건지를 물어본다. 매장에서 마실 거라고 하면 번호를 하나 받는다. 자리에 앉아 번호를 테이블 위에 놓으면 커피를 가져다준다. 이 아무 일도 아닌 상황이 나는 무척 흥미로웠다. 셀프서비스가 대중적인 한국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게다가 커피는 머그잔이 아닌 잔 받침이 있는 귀여운 커피잔에 나온다. 앙증맞은 스푼도 함께 말이다. 커피를 다 마시면 먹은 그릇은 그 자리에 두고 그냥 가면 된다. 처음엔 습관이 되어 커피잔을 들고 반납대를 찾아 서성거리기도 했다. 지금은 익숙해졌고 친절하고 여유 있는 이 상황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한국인이 롱블랙을 마시게 되면서 생긴 문제점은 커피의 양이다. 적은 양의 롱블랙은 세입이면 끝이다. 아껴먹다 보면 금세 차가워진다. 카페에 가면 혼자 책을 읽거나 멍 때리다가 오기 때문에 한잔을 더 시켜마시곤 한다. 카페인 중독이 안되려야 안될 수가 없다. 이렇게 저렇게 중독되는 것이 늘어난다.




자연

제일 좋은 점이다. 뉴질랜드는 자연이 다했다. 이곳은 어딜 바라봐도 아름답다. 해가 뜨는 아침이면 생명이 살아남이 느껴지는 곳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도 좋고, 하얀 뭉게구름이 많은 날도 좋다. 이곳에 와서 구름이 예쁘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 뉴질랜드의 구름이 특별해서라기보다 한국에서 구름볼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한국은 높은 고층 빌딩이 많은 반면 땅 넓고 인구는 적은 뉴질랜드엔 주택이 대부분이다.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해지는 석양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매일 석양을 보며  살고 있는데 매일 커다란 보석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캄캄한 밤엔 하늘에 수많은 별이 뜬다. 이곳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 고요함과 찾아온 어둠은 별을 더 빛나게 한다. 집 근처에 바다가 있는데 해안 절벽은 정말 절경이다. 어디 유명한 관광지에나 가서 볼만한 풍경이 삶 속에 펼쳐져있는 곳이 바로 뉴질랜드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겨울 날씨 덕에 이곳은 일 년 내내 푸른 나라다. 겨울의 메마름이 싫은 나는 푸른 기운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나는 뉴질랜드의 북섬에 살고 있는데 남섬의 자연은 북섬의 것보다 몇 배의 감동이라고 한다. 


자연과 더불어 좋은 점 하나는 한적함이다. 우리나라의 2.5배 정도 넓은 땅을 가진 뉴질랜드의 인구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한적할 수밖에 없다. 넓은 땅에 적은 인구가 살고 있으니 여유는 덩달아 찾아온다. 북적이는 사람을 보는 게 쉽지 않다. 제일 많은 사람은 본 건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하는 날이었다. 심지어 그날도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막히지 않고 수월했다. 바쁜 도시에서 살던 나는 어쩌다 찾아온 고요함이 참 좋다. 가끔은 너무 고요해서 외롭기도 하지만 다시 북적이는 곳으로 가게 될 테니 지금은 이 고요를 충분히 즐기자는 생각이다. 


뉴질랜드에서 느낀 좋은 점들이 많은데, 글이 너무 길어져 그만 줄여야겠다. 두서없이 쓴 글은 꼭 이렇게 엉터리로 마무리가 된다. 정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앞에 있는 지붕에서 새가 운다. 글을 쓰는 동안 새를 10마리 정도 만난 것 같다. 정원에 있는 열매를 먹으러 와서는 땅을 헤집고 무언가를 한참 찾다가 간다. 평범한 일상이 아직도 감격으로 다가오는 도시 촌사람은 오늘도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자연과 함께 사는 일은 어쩌면 쉽지 않지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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